시간이 약이다
4월 30일. 오늘은 나의 11주년이다.
새 삶을 살게 되었으니 일종의 생일이랄까. 아기가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우듯, 그날 이후 나도 휠체어에서의 삶을 배워가는 중이다. 여전히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매년 나아지고 있어 스스로가 대견하다!
시간이 약이다.
예전에는 이 말이 싫었다. '뭘 안다고 그렇게 얘기하세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내 상황이 되어 본 적도 없으면서 쉽게 말한다고 생각했다. 위로의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모든 걸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에 외로웠다. 주변에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참 많았는데 혼자 땅굴(?)을 팠던 것 같다.
근데 어른들 말 틀린 게 하나 없더라. 시간이 약이다. 영원히 낫지 않을 것 같던 상처는 아물어서 흉터가 되고 또 새 살이 돋아 깨끗해지고 있다. 11년이면 강산이 변하고도 또 1년이지 않은가. 예전에는 4월만 되어도 우울했는데 올해는 사고 났던 날이 4월 29일인지 30일인지조차 가물가물했다. 그냥 이쯤이었지, 하며 남편과 제주도에 놀러 왔고 맛있는 걸 먹으며 우리의 지난 1년이 얼마나 대견한지 서로를 축하해줬다. 남편은 내가 장애 때문에 안 될 거라 지레짐작하고 자주 포기하던 예전과 달리 욕망에 충실한 1년이었다고 칭찬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엄마에게 11주년 축하한다고 카톡이 와서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었구나 깨달았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몸이 아프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상황이 마음 같지 않을 때 - 누구나 겪는 순간들이다. 인생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신이 불공평하게 나한테만 힘든 일을 몰아준 게 아니다. 비극과 희극의 갈림길에서 내가 비극으로 받아들인 것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겪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어려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오늘 엄마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내게 힘이 되어준 것처럼 말이다. 매년 잊지 않고 연락을 준 사람들 덕분에 진심으로 따뜻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따뜻한 적이 있었을까.
내년 4월 30일에는 또 다르겠지, 하는 기대감이 있다. 내년에는 내 인생만 바라보는 대신, 주변에 따뜻함과 위로를 나눠주는 사람이 되길. 그리고 올해보다 더 기쁘게 축하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