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국력
남편은 가끔 나를 보고 '우리 보더콜리'라고 한다.
머리 쓰면서 일해야지, 놀기만 하면 괴로워할 사람이라고 말이다 (집에만 두면 지랄견 될 거란 뜻).
나는 진짜 보더콜리 같은 사람일까.
평생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계속 달렸고 영영 지치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원래도 체력은 좋지 않았는데, 20대의 패기였던 것 같다.
일 한지 9년 차. 지난 5월 번아웃으로 꽤 오래 고생했고 최근에도 버거울 때가 있어 몸을 사리고 있다. 요즘의 내 모습만 보면 보더콜리가 아닌 것 같다. 회사 관두고 쉬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는 보더콜리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커리어를 이어오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스스로가 낯설다.
몸이 힘들다. 쉬어야 할 타이밍에 쉬지 못하고 일이 몰아친다. 연차가 올라가면서 책임감도 점점 커진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서 다 그만두고 싶다. '미생' 대사에 나오는 피로감에 저버려 뭐든 상관없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이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어제 WBC 우승자 전주연씨의 인터뷰를 우연히 읽었다. 본인이 지쳐서 회사 관두려 할 때 대표님이 휴식이 필요하니 쉬게 해주었다는 이야기. 그 이후로 오히려 시야도 넓히고 길게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최인아 대표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초반에 김영민 교수와의 대화가 나온다. 파이어족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는 최인아 대표의 물음에 김영민 교수는 '일하지 않는 시간, 그 긴 여가의 무료함과 권태로움을 견디기 어려울 거라는. 지금은 노동의 피로에 찌들어서 일하지 않는 여가를 갈망하지만, 막상 그렇게 살아보면 그 또한 만만치 않을 거라는'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어떠한가. 지금의 내 감정은 가지지 못한 여유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일 뿐, 일시적이다.
충동적으로 그만두고 이후에 내 시간의 효용을 느끼지 못하게 되다면, 더 괴로워하겠지.
내가 쉬고 싶다고 할 때면 남편은 자기가 열심히 돈 벌겠다고 언제든 관두라 한다.
그러면서도 보더콜리는 보더콜리답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충동적인 갈망에 괴로워하기보다 보더콜리답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