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결핍이 만났을 때
[독후감] 구의 증명 (저, 최진영)
‘메기’는 이옥섭 감독이 제작한 내가 재밌게 본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생각해 봤다. 이 감독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앞 얼굴뿐만 아니라 옆구리와 뒤통수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 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에게 이런 생각을 들킨 탓인진 몰라도, 이후 알고리즘은 이옥섭 감독의 인터뷰를 심심찮게 추천을 해줬었다. 그러다 장항준 감독과 함께 한 인터뷰를 우연히 보게 된 적이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그녀의 말은 “결핍과 결핍이 만나면 절대 떨어질 일이 없어요. 그걸 너무 충족하기 때문에. 더럽고 징그러워요. 근데 그게 사랑인 것 같아요.”이다.
생각해 보면 결핍의 테두리는 매끈한 모양이 아니다.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쳐져 깨져버린 유리처럼 거칠고, 날카롭고, 불규칙하다. 그 불규칙한 테두리의 모양과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조각을 갖고 있는 상대를 만났을 때 서로의 결핍 조각은 한 모양으로 완성되어 버리고 만다.
구의 증명을 읽는 동안 이옥섭 감독의 말이 종종 글 위로 떠올랐다. 구와 담의 이야기는 애처롭고, 더럽고, 징그럽고, 진득했다. 애초에 서로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구가 있어야 담을 증명할 수 있었고, 담이 있어야 구를 증명할 수 있었다. 애초에 가진 게 별로 없이 태어난 삶이란, 앞으로 가질 것들에 대한 희망을 채 꿈꾸기도 전에 손에 쥔 얼마 없는 것들을 빼앗겨 버릴까 몸을 웅크리는 자세부터 배우는 것이었다. 구와 담은 서로를 빼앗기지 않으려 낮은 자세로 웅크리다 결국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함께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한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일본 영화가 흥행한 적이 있다. 이 뜻은 먼 옛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자신이 아픈 부위를 동물의 부위로 먹으면 나을 수 있다는 의미이자 그 부위를 먹음으로써 영혼으로 그와 함께 하고 싶다는 고백의 의미가 담겨 있다. 담이도 죽은 구의 몸을 먹음으로써 자신의 몸 안에 구를 영원히 살게 하고 싶었을 거라고 이해해 본다. 세상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 없는 구. 불쌍한 구. 가여운 구. 그런 구를 온전히 사랑하는 담. 서로의 깨진 모서리가 너무도 닮아있는 두 사람이 마침내 하나가 되며 이야기가 끝난다.
결핍과 결핍이 만난 더럽고 징그러운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이옥섭 감독의 '이 세상에 더럽고 징그럽지 않은 사랑은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구와 담의 사랑이야기는 역설적으로 평범하다. 아주 아주 평범한 사랑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