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인내, 그리고..
기원전 11세기, 고대 중국 주나라 서쪽 경계였던 위수(渭水) 강가. 해묵은 갈대들이 바람에 서걱거리며 비릿한 울음을 내뱉는 곳에 한 노인이 앉아 있다. 찌그러진 갓과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강가의 억새보다 하얗게 새어버린 사람. 굽은 등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강물을 향해 휘어져 있었다.
노인의 손에 들린 대나무 낚싯대가 위태롭게 수면을 향하는데, 낚싯대 끝자락에 미끼는커녕 구부러진 낚시 바늘조차 없다. 달랑거리며 흔들리는 건 물속으로 정직하게 뻗은 바늘 한 자락. 물고기를 잡겠다는 의지보다 시간을 찌르겠다는 고집이 느껴졌다.
늘 지나다니던 어부들은 노인을 보며 혀를 찼다.
“어이, 영감님. 곧은 바늘에 어떤 멍청한 물고기가 입을 대겠소? 헛수고 말고 집에 가서 잠이나 주무시구려. 늙으려면 곱게 늙어야지, 원.”
조롱 섞인 비웃음이 강바람을 타고 노인의 귓가를 스쳤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노인의 눈은 낚싯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물결 아래 숨겨진 시대의 맥동과 바람결에 기울어진 천하의 운세를 가늠하는 중이었다. 무릎 위로 떨어지는 햇살의 각도가 가팔랐다. 시간이 깎아 먹은 체력은 가벼웠으나, 그가 견뎌온 세월의 갈증은 위수의 물로 채우지 못할 만큼 무거웠다.
노인의 이름은 강상(姜尙). 훗날 역사가 그를 태공망(太公望)이라 칭하지만, 당시 그는 ‘미친 늙은이’에 불과했다. 그의 나이 70세. 당시로서는 죽음의 문턱을 한참 넘긴 황혼의 끝자락이었으나,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칼날이 서렸다. 강상에게 70년이란 세월은 단순히 숫자로 치환될 물리적 시간만이 아니었다. 실패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층이었고, 무능이란 이름으로 낙인찍힌 채 살아온 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사였다.
강상은 젊은 시절부터 유난히 책을 좋아했다. 남들이 땅을 일구고 곡식을 갈무리할 때조차 그는 대나무 조각(竹簡)에 새겨진 고대 성현들의 문장을 탐독했다. 점차 지식이 쌓여갔다. 천문의 변화를 읽고 지리의 형세를 살피며 병법의 오묘한 이치가 머리에 들어왔다.
다만 지식으로 밥을 먹고살 순 없었다. 끼니를 잇기 위해 도축업에 뛰어들었으나 손에 가축 피만 묻힌 채 끝났고, 주막을 차려도 이상하리만큼 손님이 끊겼다. 장터에서 밀가루를 팔려고 하면 돌풍이 불어 가루를 사방으로 흩뿌리는가 하면, 어렵게 시작한 깃발 장사는 쏟아진 폭우로 폭삭 망해버렸다. 하늘이 작정하고 그를 굶기는 듯했다.
“세상은 나에게 밥벌이 재능을 한 톨도 허락하지 않는구나.”
텅 빈 광을 보며 그는 늘 중얼거렸다. 가난이 뼈를 깎는 고통이었지만, 내외로 쏟아지는 곱지 않은 시선이 더 따가웠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한 지 오래. 아내 마 씨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마 씨는 그저 평범한 삶을 꿈꾸던 여인이었을 뿐이다. 남편이 읽는 책이 천하를 평정할 비책인지, 땔감으로도 쓰지 못할 쓰레기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어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을 뿐. 결국 마 씨는 보따리를 쌌다.
“당신 같은 무능력자와는 지옥 끝까지 가도 희망이 없소.”
돌아서는 아내의 모습에 강상은 손을 뻗지 못했다. 잡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무능이 빚어낸 비극적인 현실이었기에, 치욕적인 순간이 아닌 감내의 시간으로 수용했다.
그는 홀로 남겨진 방에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배고픔이 창자를 쥐어짤 때 찬물을 마셨고, 추위가 살을 파고들면 정신으로 체온을 유지했다. 세상은 늘 그를 낙오자로 밀어붙였지만, 그는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때가 오리라 확신했다. 강상은 알고 있었다. 충분한 회전으로 예열했을 때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응축의 시간이 쌓인 후에야 한 인간의 운명이 천하를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70년이란 세월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며, 전쟁의 참혹함을 예견할 치열한 내적 예열의 시간이었다.
운명의 날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날도 강상은 어김없이 손가락질 속에 바늘 하나를 띄운 채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쪽의 수풀이 들썩였다. 숲을 헤치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훗날 주나라 문왕이 될 ‘서백 창(西伯 昌)’이었다.
강상을 본 서백 창은 직감했다. 노인의 누추한 옷차림 아래 감춰진 비범한 기운을. 그는 강상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당시 두 사람이 나눴던 대화가 인상 깊다.
“영감님, 물고기가 낚입니까?”
“때를 기다리는 자에게는 물고기가 아닌 천하가 낚이는 법이지요.”
짧은 대화였지만 서백 창은 전율했다. 한마디 말이었을 뿐인데 묵직한 지혜가 준동했다. 서백 창은 무릎을 꿇었다.
“저의 선친 태공(太公)께서 그토록 기다리던 [望] 분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태공망(太公望)이라는 이름이 세상이 띄워졌다. 70년의 무시와 조롱이 한 줄기 이름으로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서백 창의 스승이 된 강상은 갈아온 칼날을 본격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노력하면서도 단순한 승리만 탐하지 않았다. 천하 경영을 백성과 나눈다는 애민(愛民)의 철학을 중심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군사 전략도 아군을 보호하고 적의 교만을 허점으로 삼아 쉽게 무너뜨렸다. 혼란의 시대에 희생을 최소화하고 대의를 이루던 고도의 지혜와 철학을 내보였던 것.
결국 강상은 주나라가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 기틀을 제공했다. 이후 주나라의 제후국인 제나라 [齊]의 시조가 된 강상. 그는 제 나라 땅에서도 파격적인 통치를 이어간다. 경직된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제 나라 땅의 토착 풍속을 존중하여 정치를 간소화했다.
70년의 빈곤을 겪어본 그였기에 백성의 목마른 지점을 잘 파악했다. 바다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살려 소금과 물고기를 유통하는 상업을 장려하고, 능력 있는 인재라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중용한다. 덕분에 제나라는 훗날 춘추·전국시대의 강력한 패권국 중 하나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강태공이 드리웠던 직선의 바늘 한 가닥은 세월을 타고 넘어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기다림은 정지인가, 아니면 치열한 내부의 움직임인가. 우리는 멈춰버린 인생의 시간을 영원한 몰락으로 착각한다. 남들보다 늦게 피는 꽃을 썩은 꽃이라 부르며 스스로 학대하기 바쁘다.
생각하면 삶의 정수는 서두른다고 드러나는 건 아닌지 모른다. 곧아야 할 낚시 바늘을 굽혀 눈앞의 작은 물고기를 탐하는 자는 결코 세월의 대어를 낚을 수 없다. 때로 곧은 바늘을 드리운 채 비웃음을 견디며, 내면의 칼을 갈아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신이 무언가 하고 있다면, 당신의 때(時)는 아직 오직 않았을 뿐 사라진 물건이 아니다. 가을철 늦게 핀 장미가 가장 붉을 때가 있고, 오랜 기간 버텨온 술의 향기가 세상을 울리는 순간도 있다. 강태공이 위수 강가에서 낚아 올린 건 주나라라는 제국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았던 인간’의 증명이었다.
오늘도 세상이란 강에 앉아 바늘을 보며 한숨짓는 이들이여, 기억하자. 굽은 등으로 견뎌낸 70여 년의 기다림이 있었기에 강태공은 한 번의 기회로 천하를 낚아챘다는 사실을. 세상의 비난과 조소로 굽어버린 우리의 등은 비굴함의 증거가 아니라 거대한 폭발을 앞둔 활시위의 팽팽함이다.
세월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하는 건 시간을 견디지 못한 우리 자신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