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김득신

11만 8천 번, 노력의 횟수

by 이루리


어둠이 짙게 깔린 기와집 처마 아래, 촛불에 어둠이 물러나는 방. 남자 한 명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한숨을 나지막하게 쉬는 모양새가 남모를 시름을 표상한다.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면 걱정의 근원은 바로 아들. 생각만 해도 즐거울 존재이건만, 그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했다.


가문의 존속을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조선시대 ‘양반’은 왕에게 부여받는 신분이 아니었다. 끊기지 않는 과거 급제를 통해서만 유지됐던 신분 체계. 양반가 자제들이 어린 시절부터 과거 시험에 몰두했던 이유다.

그의 아들 김득신(金得臣)은 달랐다.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았던 탓인지 학습 능력이 미진했다. 열 살이 되어서야 겨우 글자를 깨쳤는데, 글 내용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경전을 읽으며 문리(文理)를 깨우치리라 기대하는 일조차 사치로 보였다.

가문의 사정을 알던 이들은 은근슬쩍 우려 섞인 비웃음을 머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유명했던 김시민 장군의 가문에 무녀리라니. 김득신의 아버지 김치(金緻)는 실존적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던 그는 현실을 수용하기로 결심한다. 능력이 낮더라도 노력하는 삶을 영위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김치(金緻)는 아들에게 “너의 둔함이 오히려 공부를 더 깊이 하는 밑거름이 될 게다”라며 격려했다.


사실 소년 득신도 알고 있었다. 친우들은 한 번 읽으면 기억할 문장이 자신의 머리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 남들이 자신을 둔재라 비웃는다는 점도. 아버지의 말이 평생 해야 하는 노력의 밑거름이 됐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기록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으나 충분히 감정적으로 분하고 억울할 상황이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 (Leon Festinger)는 ‘사회적 비교 이론 (Social Comparison Theory)’을 통해 인간의 비교 심리를 분석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능력과 의견을 정확하게 평가하려는 내재적 욕구가 있고, 자연스레 타인이라는 거울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내용이다.


특히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는 상향 비교 탓에, 정확한 자기 평가보다 왜곡된 자기 비하로 이어지기 쉽다고 한다. 경전에 대한 문리(文理)를 능력치의 기준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김득신이 받았을 심리적 압박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소년 득신도 곧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이미 아둔하고 멍청하게 생긴 자신을 어찌할 수 없었다.

보통 부족함을 자각하면 두 가지 상황이 펼쳐진다. 전진하려던 발걸음을 멈추거나, 쉽지 않아도 느린 발걸음을 더 많이 움직이려 노력한다. 소년 득신의 선택은 후자였다. 남들이 한 번 외울 구절을 수만 번 읽어서라도 몸에 익히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겼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김득신은 1642년 (인조 20년), 39세의 나이로 소과(小科)인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다. 남들보다 두세 배 느린 속도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노력으로 상황이 나아졌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는 더욱 글 읽는 일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김득신의 문집(文集)인 『백곡집』 10권에 수록된 「독수기(讀數記)」는 그의 노력과 고행을 보여준다. 기록에 따르면 김득신이 가장 많이 읽은 『사기(史記)』 「백이전(伯夷傳)」의 독서 횟수는 11만 8천 번에 이른다. 약 36권의 책을 수만 번씩 읽었고, 만 번 읽은 책은 거론조차 하지 않을 정도다. ‘집요하다’는 표현조차 조심스럽다.


사실 노력이 타고난 능력치 자체를 높인 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한 야사의 일화가 눈에 띈다. 말을 타고 길을 가는데 어디선가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는 하인에게 “참으로 좋은 글이다. 누가 지은 글이냐?”라고 묻는다. 하인은 웃음을 참으며 “나으리가 수만 번 읽으신 「백이전(伯夷傳)」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처럼 기억력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지만, 숱한 독서가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건드렸다. 조선시대 최고 문장가로 손꼽히는 이식(李植)이 그의 시를 극찬하는가 하면, 임금인 효종도 김득신의 시를 읽고 당나라 시와 맞먹는다며 감탄했다.


그리고 1662년 (현종 3년), 김득신은 쉰아홉이란 늦은 나이에 비로소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한다. 환갑을 목전에 둔 늙은 급제자 탄생에 조정과 지식인 사회가 들썩였다. 양반 사회에서 김득신을 비웃던 사람들의 입꼬리가 슬며시 제자리를 찾았다.


과거에 급제한 이후에도 김득신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벼슬자리에 나아갔다는 점만 다를 뿐, 그는 꾸준히 독서에 매진했다. 때로 후학들에게 격려를 잊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둔재도 해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약 8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학문은 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힘쓰는 데 달렸다(在自勤也)"는 신념을 가슴에 달고 살았다. 덕분에 현대 사회까지 전해진 11만 8천 번이란 기록은 안일하게 포기를 일삼던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무미건조하게 기록된 물리적 숫자가 아니라, 결핍에 대한 인간의 존엄한 대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만히 일상에 요동치는 마음 한 가운데, 김득신의 일화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결핍을 자각하면서도 노력할 수 있던 자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는 노둔함이란 태생적 한계를 저주하기보다, 학문에 집중하는 자신을 만들어 냈다. 세상의 천재들이 화려한 날갯짓을 펼치며 단숨에 목표로 나아가더라도, 그는 자신의 걸음 속도를 지키며 발자국 하나에 집중했다.


물론 그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김득신 사후 기록된 내용을 보면 “글에 미쳐 살았던 아둔한 사람”이란 평가가 끊이지 않는다. 종종 세상은 한 사람의 노력보다 표면적 결과에 집중한다.

평가가 비천(鄙淺)하면 어떠랴. 일생토록 타인의 거울보다 내면의 호수를 비추며 산 사람에게 후대의 평가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각박한 평가는 그가 버텨낸 인고의 시간을 더욱 빛내주는 것만 같다.

타인을 거울삼아 피로감이 깃들 때, 그의 서재 <억만재 (億萬齋)>에서 울리던 투박하고 끈질긴 독경(讀經) 소리를 떠올린다. 조급함과 효율성을 위시했던 인간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소리다.


스스로 부족함과 결핍을 자각하며 열등감이 차오를 때, 11만 8천이란 숫자를 기억해 보자. 나는 과연 11만 8천 번의 노력을 가했는가? 아니라면, 열등감을 느낄 새가 없다. 자신의 속도로 움직일 시간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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