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썩어 문드러진 시간이 피워낸 불멸의 웃음

by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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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스페인 세비야의 왕립 감옥. 지린내와 곰팡이가 공기를 점령한 공간 한가운데, 한 남성이 웅크려 앉아 있다. 쉰 살은 훌쩍 넘어 보이는 얼굴. 희끗한 머리칼과 성글게 남은 치아가 그간 삼켜온 세월의 빈곤을 증언한다. 그를 살피는 시선을 붙잡는 곳은 왼팔. 몸에 축 늘어져 붙은 채 기능을 잃은 팔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오른손만은 분주하다. 거친 바닥 위에 움직이는 연필이 현란했다. 이를 지켜보던 간수와 동료 죄소들이 히죽 웃음을 흘린다. 감옥에서 글 쓰는 행위가 조롱받기 딱 좋은 구경거리였기 때문이다. 남성은 개의치 않는다. 세상의 평가로부터 이탈한 사람처럼 오로지 손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더러운 감옥은 그에게 낯선 공간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의 인생 자체가 신이 집요하게 밀어붙인 비극의 쓰레기장 같았기 때문이다.


1571년 레판토 해전. 세르반테스는 기독교 연합군과 오스만 제국이 격돌한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 당시 그는 누구보다 뜨거운 피를 지난 병사였다. 열병에 시달리면서도 갑판 위로 몸을 끌어올릴 정도였다. 침대에 누워 숨만 쉬느니, 조국과 신을 위해 싸우다 쓰러지겠다는 결기가 그를 지탱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가슴과 왼팔에 총상을 입었고, 그는 왼팔의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상흔이 절망의 표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영웅 서사의 일부로 상상했다. 국가가 기억할 것이며, 희생은 보상받으리라 믿었다.


만일 그가 전쟁 직후 무사히 귀국했다면, 그의 삶은 예측대로 궤도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귀국선은 해적에게 나포됐고, 그는 알제리로 끌려갔다. 이후 5년이란 지난한 시간 동안 세르반테스는 노예로 살아야 했다. 치밀한 계획 끝에 네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배신과 불운이 번갈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탈출이 좌절될 때마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 매질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세르반테스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뼈에 새긴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숭고와 비열 사이의 가느다란 줄 위에 선다는 점. 아울러 욕망과 공포가 교차하는 지점마다 상이한 인간 군상이 출현한다는 것.


쇠사슬에 묶인 알제리의 시간은 지옥이었으나, 역설적으로 작가적 정신 구조를 이끌어냈다. 인간 군상에 대한 완전한 파악이 가능했던 덕이다.


알제리의 구속은 가족이 전 재산을 털어 마련한 몸값으로 끝난다. 알제리를 떠나던 그는 고국의 환대를 기대했다. 전쟁에 참여한 후 노예 생활을 견뎌낸 그를, 꿈에 그리던 조국이 가만히 둘 리 만무했다. 철저한 그의 오해이자 착각이었다. 스페인은 병든 참전 용사를 부담으로 여겼다. 당장 그의 눈앞에 놓인 건 훈장도, 명예도 아니었다. 냉혹하고 노골적인 배고픔이었다.


그는 야망을 위해 아껴둔 펜으로 생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문학적 야망은 ‘언젠가’라는 시간 속에 던져버렸다. 세르반테스는 시류에 따라 희곡과 시를 쓰기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당대 최고의 극작가 로페 데 베가를 목표로 삼았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았다. 그가 쓴 작품에 ‘지나치게 진지하다’, ‘고루하다’라는 평이 따라붙었다. 돈이 벌릴 리 만무했다. 언제까지고 펜을 잡을 순 없었다. 결국 완전한 현실을 선택한 세르반테스.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경멸받던 직업, 징세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세르반테스 인생의 가장 음습한 시기가 펼쳐졌다. 그는 시골을 떠돌며 가난한 농부들에게 밀과 올리브를 징수해야 했다. 농부들이 고운 얼굴로 세금을 납부할 리 없었다. 매번 쏟아지는 욕설과 돌팔매에 어깨를 움츠리기 일쑤였다. 교회의 곡물을 징수하던 중 파문당했을 때 그는 비극의 주인공에 가까웠다. 신과 조국을 위해 팔을 바쳤으나, 신에게 버림받는 형국이 돼버렸다.


그나마 유지하던 징세원 생활도 오래지 않아 왜곡된 혐의로 끝났다. 장부가 틀렸다는 오해로, 그는 감옥에 갇히고 만다. 스페인 세비야의 왕립 감옥이었다.


세르반테스는 더 이상 세상에 분노하지 않았다. 끝없이 고난을 던지는 삶, 예측 불가능한 불행 앞에 분노의 무기력감을 깨달은 지 오래였다. 대신 그는 결심했다. 무례할 정도로 부조리한 세계를 정면으로 비웃어 주겠다고. 그가 감옥에서 펜을 잡은 이유였다.


오른손에 펜을 쥔 그는 감옥의 구석에서 시골 노인 하나를 그려내고, 기사로 둔갑시킨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과 함께 희대의 코미디가 새겨지고 있었다. 바로 『돈키호테』였다.

돈키호테를 그려내는 세르반테스의 손에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이상을 좇으며 조롱당하는 시골 노인이 자신의 분신처럼 보였다. 세르반테스는 노인의 곁에 극도로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농부 산초를 배치한다. 돈키호테가 별을 노래할 때, 산초는 끼니를 걱정한다. 세르반테스 내부에서 벌어지던 투쟁의 형상화였다. 영웅을 꿈꾸던 자아와, 세금을 걷던 자아의 끝없던 대화. 그는 자신의 실패를 애도하는 대신, 실패를 문학으로 전환해 인간의 모순을 드러낸다.


『돈키호테』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다. 독자들은 배를 잡고 웃었고, 스페인 왕조차 길가에서 울다 웃는 사람을 보며 “미치지 않았다면 돈키호테를 읽었을 것”이라며 말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왜 필자가 늦게 성공한 이들의 향연에 세르반테스를 불렀는지 충분히 짐작할 것이다. 흔히 그는 말년에 성공한 작가로 인식되니, 주제에 딱 맞는 인물이 아닌가.

안타깝지만, 틀렸다. 필자는 사실 마음 속에서 세르반테스의 소환을 오랜 기간 고민했다. 그의 삶 속에서 성공이란 단어를 찾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분명 소설은 성공했는데, 세르반테스 개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재미있는 책을 쓴 노인’으로 남았다. 죽는 날까지 가난했고, 말년에는 수도원에 들어가 신앙에 정진하며 책을 썼다. 꾸준히 글을 썼지만, 문단의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했다. 심지어 무덤마저 없다. 2015년에 그의 무덤을 발견했다며 떠들썩했지만, 진위가 불분명하다.


죽은 뒤에야 제대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그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난 18~19세기가 돼서야 사람들은 『돈키호테』에서 인간 이성의 한계와 꿈의 위대함을 읽어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을 가장 깊고 강렬한 소설이라 찬탄한다.


20세기에 이르러 『돈키호테』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덕에 더욱 유명해졌다. 프로이트는 『돈키호테』에 매혹됐다. 원문을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독학할 정도였다. 그에게 돈키호테는 광인이 아니라 억압된 욕망과 현실 원칙이 충돌하는 인간 정신의 원형이었다. 프로이트가 구축하려던 복잡다단한 마음의 지도가 이미 소설 속에 펼쳐져 있었다.


이보다 어긋난 운명이 어디 있으랴. 끝까지 이상을 놓지 않았으나, 사후에나 제대로 명예를 얻은 이상이었다. 삶에서 성공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필자가 세르반테스를 소환한 까닭은, 그의 태도에 있었다. 손에 닿을 수 없는 이상일지언정 숨 쉬는 동안 끝없이 손을 쉬지 않았던 정성과 열정. 표면적으로 실패한 삶으로 흘러가면서도 원하는 일을 이어 나갔던 성실함.


어쩌면 그에 대한 평가는 이상에 손을 떼지 않던 열정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세르반테스의 생애를 관망하며, 문득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때로 이 단어가 진실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계획은 어그러지고, 노력은 보상받기 힘들다. 남들은 앞서가는데 나만 진흙탕에 빠진 듯한 순간도 많다. 재능과 재력을 갖춘 이들이 노력하는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좌절 일변도다.

세르반테스는 그런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럼에도 한 손으로 이상과 희망의 실타래를 잡아보는 건 어떠냐고.


그의 삶이 위인전의 장식으로 화려하지 않아 더 현실적이다. 세르반테스는 밥벌이에 지치고, 억울한 누명에 쓴웃음을 지었으며, 자신의 재능을 의심했다. 하루를 버텨내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 매 순간 산초에게 지적당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돈키호테를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은 돈키호테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야 말았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돈키호테는 우리의 영혼 주변을 떠돌지 않는가.


힘이 쭉 빠지는 날, 『돈키호테』를 보며 세르반테스를 기억해 보자. 실패를 너무 미워하지도 말자. 아직 쓰이지 않은 걸작을 위한 전초전일지 모른다. 곰팡내 나는 세비야의 감옥에서 돈키호테가 태어났듯, 우리의 문드러진 시간 속에도 돈키호테가 웃을 수 있다. 놓지만 않으면, 언젠가 꽃이 되리라 믿으면서.

당신의 돈키호테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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