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의미를 향한 긴 여정의 끝에서
여름은 이른 아침에도 습기와 열기를 내뿜는다. 덕분에 여름에 바쁜 농업인은 항상 열기로 가득하다. 나도 벌통을 열고 일하다 보면 등이 땀으로 젖는다. 그럴 땐 손에 든 두고를 내려두고 잣나무 밑동에 몸을 기댄다. 여름의 습기도 잣나무가 허락한 바람 앞에 주춤하기 마련. 식어가는 땀줄기를 느끼다 보면 그간의 여정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양봉 일을 하냐’고. 표면상 호기심 같지만, 기저에 다른 의미를 숨겼다. 이 질문은 ‘너 같은 스펙으로 왜 땀내 나는 농장 일을 자처하느냐’는 힐난에 가깝다.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땐 거부감이 올라왔는데, 이젠 그 시선이 익숙하다. 아니, 어쩌면 나는 즐기고 있다.
사실 나도 남들처럼 살 수 있는 길이 있었다. 20대 후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에 입사했다. 운 좋게 성과를 잘 냈고 인정도 받았다. 그대로 다녔다면 안정적인 자리와 마르지 않는 계좌를 자랑하며 세상이 정한 ‘성공 가도’로 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입사하던 순간부터 올라온 하나의 질문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존재 의미’라는 막연하고 답답한 질문. 분주하게 일하는 하루가 쌓일수록 ‘내가 왜 여기 있나’라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었건만, 정작 내 가슴엔 공허감이 가득했다.
결국 나는 회사 문을 나와 동양철학 대학원으로 향했다. 고전에 적힌 수많은 글자가 나의 의문을 해소해 줄 수 있으리란 기대였다. 나의 착각이었다. 논어니, 맹자니 하는 책들을 읽어도 가슴의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다. 인간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말하는 『주역』을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르며 더욱 무거워진 가슴에 머리마저 묵직해졌다.
그래서였던 듯하다. 나는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스스로 박사학위를 허락하지 않았다. 답도 찾지 못한 채 전문가란 타이틀을 얻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사회에 내던졌다.
얼떨결에 중소기업에 들어가 하릴없이 일도 하고, 강사가 되어 사람들 앞에 서기도 했다. 잠시 열었던 분식집은 높은 성과를 얻었지만, 몸에 병이 들었다. 이 모든 행동에 ‘현실에 철학을 적용해 보기 위한 방편’이란 변명을 붙였지만, 아니었다.
실은 해결하지 못한 삶의 문제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 방황한 일에 가까웠다. 한참 헤매다 보니 30대 후반이 되었다. 나이가 차오르니 조급함이 생겼다. 삶이 잘못되어 간다는 무기력감에 가까운 조급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벌을 키우는 사람을 보았다. 특별히 대단한 말도, 감동적인 사연도 없었건만. 나는 벌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심과 행동의 거리가 길지 않다. 한 달 후, 나는 양봉 아카데미 수강생으로 앉아 있었다.
갑작스레 양봉 아카데미에 등록한 나를 보며 어머니는 한숨을 쉬셨다고 했다. 끝없이 방황하는 모습의 자식이 답답하셨던 모양이다. 단 한 번도 내 속을 진지하게 말한 적이 없으니 그럴만했다.
사실 양봉에 임하는 나의 동기는 이전과 달랐다. 내 관심은 바로 벌들이 가진 존재의 의미. 40여 일이란 짧은 삶에 담긴 생명의 사이클과 본질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인간 세상에서 찾지 못한 답을 동물에게서 찾으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집 텃밭에서 세 통으로 시작하여 농장을 사고 본격적으로 벌을 키운 지 3년이 지났다. 돌이키면 시간은 정말 물처럼 흘러갔다. 이제 답을 해야 할 시기다. 누군가 ‘벌 키우면서 정말 답을 찾았느냐’고 묻는다면 미소를 지을 것이다. 아직 단언하긴 어렵지만 어렴풋한 빛을 본 것 같기 때문이다.
여왕벌, 일벌, 그리고 숫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벌통을 살펴보면 늘 감탄했다. 그들은 타고난 환경을 불평하지 않고, 마주한 상황을 직시한다. 맡은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 인간처럼 세상의 불공평함을 탓하지 않는다. 시종 발생하는 문제에도 의연하다. 인간이라면 좌절할 법한 고난 앞에서도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 벌을 관찰하며 내 모습을 돌이켰다.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던 주체가 불분명했다. 고민의 주체는 나 자신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욕심이었을까. 분명하지 않은 것들 사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던 나는 눈앞의 현실과 나 자신을 외면한 채 먼 곳만을 바라봤다는 점이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인가 갑자기 『주역』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삶의 방향을 잡기 힘들 때 『주역』을 보라던 지도교수님 말씀이 떠올랐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밤, 대학원 시절 펼쳤던 『주역』의 구절을 눈으로 훑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외면했던 것들이 결국 벌들이 보여 준 지혜와 다름이 없다는 것. 먼 곳을 보며 헛된 의미를 좇다가 매일 펼쳐지는 삶에 뿌려진 나의 몫을 버려왔다는 것을 말이다.
그날의 깨달음으로 내 안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보이지 않는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일을 포기했다. 그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 애썼다. 덕분에 본격적으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며 나 자신의 뿌리를 세상에 내리려 움직인다.
그리고 내가 만들었던 기록을, 세상을 향한 페이지에 적어 보고 싶어졌다. 벌을 키우며 적었던 기록과 인간 세계를 64괘로 해석한 『주역』의 지혜를 같이 본다면. 그 속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진짜 삶의 힌트와 지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바로 그 소박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벌이 살아가는 세계와 내가 공부한 『주역』, 그리고 서툴렀던 나의 방황이 스며드는 자리. 어색해 보이는 세 가지 이야기의 만남이 작은 위로와 생각거리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 말이다.
2025년 10월 17일
양평 수덕재에서 이루리
■ 부록: 주역이 담긴 에세를 읽기 위한 매뉴얼
『주역』은 기본적으로 점치는 책이다. 사주팔자는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삼고 신점은 신으로부터의 계시를 받지만, 『주역』부호를 만들어 점을 친다. 부호는 총 64개가 있고, 64개의 부호에는 6개씩의 작대기(효爻라고 하지만 명칭이 중요하지 않으니 직관적으로 작대기라고 하겠다)가 있다. 다음과 같이 생겼다.
점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일련의 방식을 통해 6개의 작대기를 그려 부호를 뽑는다. 일단 부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의미로 미래를 엿보되, 또다시 일련의 방법으로 선정한 작대기 하나를 특정하여 점치기도 한다. 아마 여기까지 보면 작대기로 어떻게 점을 치나 궁금할 것이다. 각각의 작대기에는 고유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래에 건괘의 부호를 살펴보자.
작대기의 순서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건괘의 첫 번째 작대기(가장 아래)는 "물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여섯 번째 작대기(가장 위)는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이니 후회가 있으리라"는 의미가 있다. 점치는 사람은 자신이 읽어야 할 작대기의 의미를 보고 미래를 예측한다. 예를 들어, 건괘의 여섯 번째 작대기로 점을 칠 때,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이 현재 자만하고 있는 인간의 자화상이라 여기고 후회가 있을 것이니 조심하는 자세를 취해야겠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처럼 『주역』은 점치는 책이지만, 점치는 용도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주역』을 보면 예측불허한 세상의 변화와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모두 담고 있기에, 도덕적 가치나 삶의 교훈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앞으로 필자가 써내려갈 글은 '점'보다 '의미'를 염두에 두고 쓸 것이다. 그렇기에 괘사니 효사니 하는 주역 전문용어를 줄이고, 『주역』 자체의 의미와 64괘의 의미를 적절히 섞어 삶의 교훈만 취할 것이다.
혹 글을 읽으며 의문이 생길 경우 댓글로 남기면 적절히 회신하도록 하겠다. 그럼 이상으로 에세이 읽기를 위한 간단한 주역 매뉴얼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