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여왕벌의 비행

하늘을 날아오르기 위한, 물에 잠긴 용처럼

by 이루리

새벽이 채 밝지 않은 시간. 농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항상 가볍다. 하늘에 연둣빛이 희미하게 번지면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이 어렴풋이 반짝인다. 반짝이는 이슬만큼 내 눈에도 생기가 돈다. 농장에 도착하면 코를 타고 들어오는 숲의 내음과 귀를 간질이는 벌들의 날개소리가 정겹기 때문이다. 나는 오감이 어지러운 그 순간을 사랑한다.


항상 그랬듯 아침부터 농장에 도착한 날이었다. 벌통을 살피는데 두 통의 일벌들이 분주했다. 생각하니 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한 지 일주일 정도 흐른 것. 나는 숨을 죽이고 벌통 앞에 슬며시 앉았다.


양봉가의 실력은 관찰에서 나온다. 벌들의 움직임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을 명확히 포착해야 인간의 개입을 결정할 수 있다. 여왕벌이 탄생한 지 일주일이 흘렀을 때 벌들이 분주하다는 것. 나는 가만히 입을 막고 벌통 앞에 앉았다. 어쩌면 여왕벌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인 교미 비행을 목격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올라왔다.


처음 양봉을 배울 때 “네가 여왕벌 비행을 볼 수 있을까”라며 농담하던 양봉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기가 생긴 나는 꼭 보겠다며 벼렸지만, 여왕벌은 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왕벌의 비행은 벌들의 선택과 결정에 따른다. 그들의 결정을 인간이 엿보기란 쉽지 않은 일.


잠시 후 포근한 봄 햇살이 벌집 입구를 덮었다. 바삐 움직이며 무리를 지었던 일벌 사이로 꼬리가 길쭉한 벌 한 마리가 나타났다. 여왕벌이다. 감격한 내가 숨을 들이쉬는 것도 잠시. 여왕벌은 날개를 펴 들고 시녀벌 몇 마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평소 같았으면 동영상을 찍었으련만. 입을 벌리고 가만히 바라보다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나 자신이 조금은 우스웠다. 그래도 어떠랴. 그 순간을 바라본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여왕벌 비행은 꿀벌 사회의 존립을 결정한다. 평생 알 낳는 기계와 같이 생활하며 군림하지 못한 채 이름뿐인 ‘여왕’이지만, 그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여왕이 교미 비행에 실패하면 꿀벌 사회의 미래도 없다. 벌들이 비행 시기를 신중히 다루는 이유다. 온도, 습도, 바람의 흐름까지 감지한 꿀벌들은 완벽한 날을 골라 여왕벌을 데리고 나온다.


수벌의 움직임도 민감하게 다뤄진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 여왕벌 주변에 수많은 수벌이 접근하지만, 아무나 여왕벌에게 다가갈 수 없다. 여왕벌 주위를 함께 비행하는 시녀벌들은 수벌을 선별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들의 시험을 통과한 수벌만이 ‘교미’라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삶을 마감할 수 있다.


하늘을 선회하는 여왕벌은 10~20마리의 수벌과 교미한다. 수벌로부터 받은 씨앗은 여왕벌의 저정낭(貯精囊)에 모이고, 여왕벌은 이 씨앗으로 평생 알을 낳는다. 하지만 씨앗을 모았다고 비행이 끝나는 건 아니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여왕벌의 귀갓길도 레드카펫이 깔린 건 아니다. 여왕벌을 노리는 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벌통을 잘못 찾아 들어가 이미 존재하는 여왕벌에게 죽기도 한다. 말벌이 극성일 땐, 비행하는 여왕벌을 말벌이 채간다. 이런저런 장애물을 통과해야만 여왕벌은 자신의 벌통에 들어가 진정한 여왕이 된다.

벌통의 진정한 ‘시작점’이 발화하는 순간이다.


벌들의 생태를 보면 ‘시작’에 ‘설렘’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새롭다는 측면으로 보면 설레는 일이지만 시작을 위한 준비 과정을 보면 꽤 당혹스럽다. 시작하는 데 무슨 고난이 그리 많단 말인가.


사실 자연계를 보면 첫 시작이 고난인 경우가 많긴 하다. 일례로 거북이가 있다. 캐나다의 비단 거북은 태어나 하루를 꼬박 기어야 평생 살아갈 호수에 당도한다. 쉽게 ‘당도한다’고 썼지만 그 여정은 힘들기 짝이 없다. 새들에게 잡아먹히는가 하면 숲에 들어가 네 발 짐들의 밥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루를 꼬박 걸었는데 호수에 도착하지 못해 말라죽고,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악어거북에게 사냥당하기도 한다. 바다거북도 수많은 새끼 거북이 모래사장을 기어도 기껏해야 한 마리 남짓 살아남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주역』의 첫 시작인 건괘(乾卦)를 보아도 의미가 심상치 않다.


건괘(乾卦)의 내용은 용의 비행이란 이야기로 진행된다. 하늘을 날기 위한 용의 모습과, 하늘을 날아오른 용의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건괘의 첫 효는 ‘물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경고로 시작하는데, 시작을 앞두고 준비하라는 말이다. 자연을 참고하면 섣부른 시작이 낭패를 부르니 조심하라는 지혜를 담았다.


실제 인간 사회를 담은 역사나 소설에서도 섣부른 시작의 예시를 볼 수 있다. 『삼국지』의 관도대전이 하나의 예다. 관도대전을 앞두고, 큰 병력을 보유한 원소는 조조를 깔보며 자만했다. 자만심은 섣부른 판단을 부르기 마련. 조급하게 싸움터로 달려 나간 원소는 5배나 많은 군사로도 조조를 꺾지 못했고 군량을 잃었다. 원소의 군사는 사기를 잃었고, 대규모 탈영과 내부 배신으로 무너져 버렸다.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빠른 흥행을 뒤로한 채 완전히 무너지곤 한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하늘을 날아오른 자들의 최후다.


건괘의 용은 하늘로 오르기 위해 우여곡절을 겪는다. 때론 문제가 발생해 연못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기도 하고, 필요할 땐 귀인의 도움을 받는다. 이런저런 고난을 극복하고서야 용은 비로소 하늘에 올라 자신의 때를 만난다.


이처럼 ‘시작’이란 ‘극복’의 의미를 포함한다. 용기를 내어 발을 내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딛을 발에 실릴 힘을 비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왕벌이 고난의 첫 비행을 마친 후에야 꿀벌 역사의 새로운 서사를 장식하는 것처럼. 신중하지 못한 첫걸음은 다음 스텝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시작을 두려워할 건 아니다. 늘 처음은 두렵다. 벌도, 인간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길에 당당할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대신 그 순간을 지나 줄 수도 없다.


여왕벌은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날개를 펼친다. 위험을 극복하는 것 또한 자신의 역사이고 소임이라 여기는 듯하다. 이처럼 어떠한 일이든 고난이 있으리란 생각 하나로 충분한 것 아닐까. 이리저리 날뛰며 서두르는 마음을, 고난을 예측하는 생각이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날은 농장에 하루 종일 앉아 여왕벌을 기다렸다. 출발과 도착을 모두 보고 싶은 양봉인의 욕심 때문이었다. 다행히 두 마리의 여왕벌은 교미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벌통 입구에 대기하던 일벌들의 환영 인사가 바빴다. 그들은 새로운 여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듯했다. 삶의 위험을 극복하고 맞은 새로운 역사를.


오늘 당신의 삶도, 어쩌면 물속의 용처럼 막 시작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이 잠긴 자신에게 앞날을 준비할 힘을 주기를. 그리고 좌절이 아닌 비상이 기다리기를 바라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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