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핀란드 여름 오두막에서 하루 종일 머물기로 한 날이다. 정말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파라이넨 군도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 이 사랑스러운 오두막의 호스트는 스웨덴에 거주하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다. 여행 전부터, 엄청난 여행정보를 보내고, 에어비앤비 집 소개글엔 유쾌함이 묻어났다. 오두막에 도착해서 영상통화를 거니, 감당 불가능한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들려온다. 이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집구석구석을 또 안내한다. 심지어 우리를 위해 빵 반죽을 해놓고, 포도주를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열정 넘치는 호스트에게 별점 5점을 안 줄 이유가 없다.
현관도 이렇게 아늑할 일이야.
핀란드 여름 오두막에선 핀란드스러운 조식이 딱이지
이 통나무 오두막은 눈 내리는 겨울에도 오면 딱일거란 말이지. 두번 와야 할 이유가 있다.
알 수 없는 취향의 호스트의 빼곡한 책들과 주방
오두막엔 그의 생활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났다. 거의 모든 살림 기구가 빠짐없이 있다. 호수에 띄울 에어보트와 간이침대까지. 찬장에 무민이 그려진 컵이 가득하다. 핀란드인들은 보통 여름별장이 한 채씩 있는데, 긴 여름휴가 기간엔 이 별장에서 머문다. 햇볕이 귀한 이들에겐 여름을 길게 누려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서 웬만한 살림 기구는 별장에 모두 갖추어져 있다. 휴가 기간엔 별장에 머물며 사우나와 호수 수영을 번갈아 한다. 넓은 잔디밭에선 갓 잡은 생선으로 요리를 해 먹거나, 바비큐를 한다. 교환학생 시절엔 당일치기로 여름 별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일박 이상을 하며 오래 머무는 것은 처음이다.
호수가 펼쳐져 있는 핀란드의 여름 오두막
창문까지 사랑스러움
사우나도 빠질 수 없지
호스트의 여름 오두막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아늑한 이 공간엔 벽난로가 있고, 긴긴밤 우리의 수다를 위한 널찍한 식탁이 놓여 있었다. 사람 한 두 명이 들어갈 침실 두 곳은 너무나도 아늑했다. 통나무 냄새로 둘러싸인 침실과, 정원이 내다 보이는 머리맡에 놓인 작은 창문, 그리고 벽에 놓여 있는 얼마나 오랜 되었는지 가늠이 안 되는 책들까지. 중세 만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랄까.
체크무늬의 커튼과 꽃무늬 이불이 통나무 오두막과 참 잘어울린다.
조그마한 창문, 침대, 책장으로만 꽉 찬 작은 방. 동화 속 소녀가 된 기분이다.
오두막 앞엔 널따란 호수가 펼쳐져 있다. 우린 수영복을 입고 호수로 뛰어 나갔다. 핀란드의 숲과 호수, 그리고 고요함에 둘러싸인 이곳.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 같은 이곳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곳을 어떻게 알고 현지인들이 조금씩 몰려들기 시작한다. 고요한 이 호수에서 홀로 차가운 물을 가로지르며 수영을 하는 할머니가 있다. 이들에게 호수는 어떤 의미일까. 어린아이들은 호수 다이빙 스폿에서 두려움을 떨쳐내고 뛰어내린다. 나의 친구들도 하나 둘 호수에 뛰어든다. 수영을 못하는 유일한 나는 발만 동동거렸다. 언젠가 핀란드에 다시 온다면 꼭 수영을 배우고 오리라.
핀란드 오두막과 그 앞의 호수
비밀스러운 우리만의 공간인 것 같다가도, 삼삼오오 모여드는 핀란드인들을 보니 아차! 내가 이방인이었구나 싶다.
야외활동 나온 핀란드 꼬마들 너무 귀엽잖아.
수영을 마친 후 오두막 창고에 있는 자전거를 꺼내 마을 한 바퀴를 돌았다. 호스트의 키가 커서 그런지, 안장이 높기도 너무 높다. 차례가 되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자전거를 타고, 나머지 친구들은 조깅을 하며 자전거를 뒤따라 간다. 한참을 돌았을까. 호수 앞 잔디에 자리를 잡고 자연 속에서 요가를 해본다. 요가를 배우고 있는 친구의 인도 하에 우린 굳었던 몸을 하나씩 풀어낸다. 오롯이 자연에 파묻혀,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멈춰있었다. 8월이었다. 한 해의 절반을 살짝 넘긴 시기. 남은 한 해도 많지 않은 시기. 한 해를 살아내며 나도 모르게 켜켜이 쌓여있던 내 몸과 마음속의 노폐물들을 핀란드의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에 씻겨 보낸다. 그리고 남은 이 한 해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핀란드 오두막에서 보낸 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