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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Dec 17. 2023

우리가 사랑한 투르쿠

인생의 찰나를 거쳤던 한 학기의 교환학생 경험은 투르쿠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도시로 만들어줬다. 우리가 사랑한 투르쿠는 핀란드의 옛 수도라 하기엔 소박하다. 이 도시를 관통하는 아우라강은 아담하기 그지없다. 투르쿠. 발음조차 투박한 이 도시를 마음 깊은 곳에 애정을 담아 살아가는 이방인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사랑한 투르쿠. 아우라강은 여전히 이 도시를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아우라 강변 근처에 늘어선 레스토랑과 카페는 투르쿠인들의 만남의 장소다. 하루아침에 생기고 사라지는 한국의 레스토랑과 카페와 달리 이 작은 도시의 레스토랑과 카페는 몇십 년이 지나도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그중 카페아트는 투르쿠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카페 중 하나다. 내부 인테리어까지 어쩜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딱 하나 달라진 거라곤 이곳에 방문했을 때가 눈 내리는 겨울이었는데, 지금은 강가에 붉은 꽃이 찬란하게 넘실대는 여름이다. 강변 테라스에 자리를 잡아 커피와 함께 카페아트의 시그니처 메뉴인 당근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어떻게 당근케이크의 맛도 시간을 비웃듯 그대로인지. 오랜만에 고향의 맛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투르쿠에 존재하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우리에겐 너무나도 특별하고 감탄의 대상이다.  


아우라강의 강변엔 선상 레스토랑도 늘어서 있다. 교환학생 땐 감히 가지 못했던 곳. 당당하게 들어서 본다. 이 작은 도시에선 강가를 거닐다 보면, 카페를 가던, 레스토랑을 가던 지나가면서 보았던 마을 사람들을 마주치기 일쑤다. 선상 레스토랑에선 좀 전에 우리의 단체사진을 찍어준 사람들을 다시 마주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투르쿠에 여행 왔느냐고 묻고, 우리는 그렇다며 다시 한번 단체사진을 요청한다. 이방인들이 잘 찾지 않는 이 작은 핀란드 도시에, 까르르 거리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 무리가 얼마나 신기할까. 


투르쿠 현지 맛집 마미 레스토랑은, 우리가 투르크를 떠나기 전에 만찬을 했던 곳이다. 며칠 전부터 이곳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예약을 해뒀다. 당시엔 유명한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왔지만, 맛없는 핀란드 음식에 실망을 하기도 했었다. 이번엔 모아둔 곗돈이 있으니 큰맘 먹고 코스요리를 주문해 본다. 당시엔 아마도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에 사이드 음식 같은 것을 여러 개 시켜 먹었던 게 분명하다. 가히 투르쿠의 맛집이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옆 좌석에 앉았던 단란한 가정. 추측으론 노부모님을 모시고 온 아들과 며느리 같다. 찬찬히 음식을 음미하며 조곤조곤 긴 수다를 떠는 네 명의 식구가 레스토랑의 창가에 액자처럼 걸려있었다. 


5년 뒤, 10년 뒤 이곳을 다시 온다 해도 슬프지 않을 것 같다. 아우라강이 그대로 있을 터이니. 운이 좋다면 카페아트와 마미 레스토랑 또한 여전히 운영을 하고 있겠지. 언젠가 결혼하게 되면 배우자와 함께 이곳을 오겠냐는 질문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나의 청춘의 한 페이지를 배우자와 공유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의 소중한 추억은 나 혼자 간직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다. 투르쿠에 대한 애정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그를 이곳에 데려오는 건, 그에게 고통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어찌 되었던 미래의 배우자가 이곳에 온다면 카페아트의 당근케이크를 한가득 사줘야지. 우리가 사랑한 투르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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