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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를 건너며

by 베티

투르쿠를 떠나는 날이다. 원래 계획했던 무민월드가 여름 시즌 개장이 끝났다는 것을 당일에 알았다. 아쉬운 마음 뒤로한 채 투르쿠를 천천히 음미하기로 한다. 투르쿠의 중심가인 널따란 마켓스퀘어엔 매일 아침 장이 열린다. 물가가 비싼 핀란드에서 값싼 싱싱한 야채와 과일들을 살 수 있는 곳이다. 한 번 외식하는 게 큰 부담이어서 교환학생 땐 이곳에서 주로 장을 보고, 집에서 요리를 했었다. 오늘도 여전히 장이 열렸다. 다만 십여 년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좀 더 모던해졌달까. 세련된 건축물이 생겼고, 노점상들도 이전만큼 많지 않다. 이전의 투박한 모습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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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를 여기저기 거닐면 십여 년 전 가게가 그 자리 그대로 있는 게 신기하다. 기괴한 복장들이 있는 코스튬 가게도 그 모습 그대로다. 핼러윈데이 때 여기서 소품을 샀더랬지. 투르쿠의 유일한 차이나마켓도 그 자리 그대로다. 괜히 마트에 들어가 그 특유의 냄새를 킁킁 맡아본다. 목적 없이 거리를 거닐지만, 골목 사이사이와 그곳에 어떤 가게들이 위치해 있는지 자연스레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억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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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이제 스톡홀름으로 가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한다. 친구들과 함께 이 유람선을 타고 함께 스톡홀름 여행을 갔던 게 생각이 난다. 그날 입었던 바람막이를 한국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정신없이 유람선에 올라타자, 슬슬 움직임이 느껴진다. 눈앞에 투르쿠는 점점 멀어진다. 언제 또 이곳을 올 수 있을까. 노년에 들어서기 전에 5년에 한 번 온다고 해도, 내 생에 채 10번도 오지 못한다는 사실에 괜히 슬퍼진다. 나중에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건강과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10번도 고사할 것이다. 저 멀리 투르쿠를 향해 손을 흔들어본다. 그리고 우린 5년 후에 이곳에 오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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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쿠의 아름다운 여름 별장들과 작은 요트들, 그리고 우리의 청춘을 안아주었던 푸르른 숲들이 발트해를 가로지른다. 우리에게 쌓인 새로운 추억들은 앞으로 살아갈 힘을 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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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유람선에서의 하루가 지나가는 게 참 아쉬웠다.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났다. 해가 슬금슬금 올라오는 새벽녘이 되자, 저 멀리 또 다른 아름다운 도시 스톡홀름이 보인다. 핀란드와 작별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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