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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Dec 22. 2023

발트해를 건너며

투르쿠를 떠나는 날이다. 원래 계획했던 무민월드가 여름 시즌 개장이 끝났다는 것을 당일에 알았다. 아쉬운 마음 뒤로한 채 투르쿠를 천천히 음미하기로 한다. 투르쿠의 중심가인 널따란 마켓스퀘어엔 매일 아침 장이 열린다. 물가가 비싼 핀란드에서 값싼 싱싱한 야채와 과일들을 살 수 있는 곳이다. 한 번 외식하는 게 큰 부담이어서 교환학생 땐 이곳에서 주로 장을 보고, 집에서 요리를 했었다. 오늘도 여전히 장이 열렸다. 다만 십여 년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좀 더 모던해졌달까. 세련된 건축물이 생겼고, 노점상들도 이전만큼 많지 않다. 이전의 투박한 모습이 새삼 그리워진다.


길가를 여기저기 거닐면 십여 년 전 가게가 그 자리 그대로 있는 게 신기하다. 기괴한 복장들이 있는 코스튬 가게도 그 모습 그대로다. 핼러윈데이 때 여기서 소품을 샀더랬지. 투르쿠의 유일한 차이나마켓도 그 자리 그대로다. 괜히 마트에 들어가 그 특유의 냄새를 킁킁 맡아본다. 목적 없이 거리를 거닐지만, 골목 사이사이와 그곳에 어떤 가게들이 위치해 있는지 자연스레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억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해 질 녘 이제 스톡홀름으로 가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한다. 친구들과 함께 이 유람선을 타고 함께 스톡홀름 여행을 갔던 게 생각이 난다. 그날 입었던 바람막이를 한국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정신없이 유람선에 올라타자, 슬슬 움직임이 느껴진다. 눈앞에 투르쿠는 점점 멀어진다. 언제 또 이곳을 올 수 있을까. 노년에 들어서기 전에 5년에 한 번 온다고 해도, 내 생에 채 10번도 오지 못한다는 사실에 괜히 슬퍼진다. 나중에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건강과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10번도 고사할 것이다. 저 멀리 투르쿠를 향해 손을 흔들어본다. 그리고 우린 5년 후에 이곳에 오기로 약속한다. 

투르쿠의 아름다운 여름 별장들과 작은 요트들, 그리고 우리의 청춘을 안아주었던 푸르른 숲들이 발트해를 가로지른다. 우리에게 쌓인 새로운 추억들은 앞으로 살아갈 힘을 또 줄 것이다. 

    

거대한 유람선에서의 하루가 지나가는 게 참 아쉬웠다.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났다. 해가 슬금슬금 올라오는 새벽녘이 되자, 저 멀리 또 다른 아름다운 도시 스톡홀름이 보인다. 핀란드와 작별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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