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추억여행 이후,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여행에서 얻었던 특유의 에너지는 회사에 출근하자 며칠 사이 귀신 같이 증발해 버렸다. 핀란드에 다녀왔던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몇 년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일에 파묻혀 지내다 문득문득 스트레스가 절정에 오를 때 여행 사진을 꺼내본다. 새롭게 꺼낼 볼 사진과 추억들이 업데이트되어 있음에 갑자기 감사함이 밀려온다.
여전히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운동을 한다. 지난한 삶의 루틴 안에서 가끔은 일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뭔가 성취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빠르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순간 핀란드의 호수, 숲, 신선한 공기, 그리고 우리가 묵었던 오두막, 여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객관적인 제삼자의 시선으로 스-윽 옮겨과 내 삶을 지긋이 바라본다. 일도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바라보게 한다. 삶에 집착을 조금은 털털 덜어내 본다. 다시 다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느긋느긋 하게 삶의 속도를 내본다.
핀란드에서의 소중한 경험은 잊힌 것 같다가도, 문득문득 내 삶에 불현듯 찾아온다. 그리고 지탱해 준다.
푸르렀던 핀란드에서의 여름이 지났고, 그렇게 짧은 가을이 흘렀고, 이제 겨울이다. 올 한 해 가장 잘한 것을 떠올려보니 무언가를 기필코 성취한 것이 아니었다. 파라이넨 군도의 '핀란드 여름 오두막'에 머문 것. 그곳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것.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삶을 나눈 것. 십여 년 만에 보고 싶었던 친구를 만난 것. 연어수프를 맛본 것. 발트해를 건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