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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Nov 07. 2023

찰나지만 찬란했던, 청춘이 깃든 곳   

십여 년 만에 학생 쉐어아파트와 학교를 거닐다 

십여 년 전 머물렀던 장소들을 다시 찾아가 본다. 찰나지만 찬란했던 나의 청춘이 깃든 곳. 오랫동안 기억 속에만 머물렀던 그곳을, 현재라는 시간을 발 딛고 마주해야 한다니 설레면서도 두렵다. 내 기억 속에 소중하게 머물러 있었던 장소들이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다면 얼마나 슬플까. 오랜 기간 동안 왜곡된 기억을 갖고 살았다면 그 보다 슬픈 일이 없을 것이다. 조심스레 포장된 기억들을 하나하나 풀어보는 날이다.

쉐어아파트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 투르크 시내와 학교로 연결해주는 이 곳. 

먹고, 자고, 쉬고 나의 삶이 담겼던 학생 기숙사 겸 쉐어어아파트로 먼저 향했다. 투르쿠 시내에서 차를 타고 20여분 간 달려가면 널따란 땅에 외로이 서있던 쉐어아파트. 주위에 있는 거라곤 마트와 숲.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도 인생이 흘러갔고, 추억이 하나 둘 만들어져 갔다. 함께 방을 썼던 스페인 룸메 베아와 러시아 룸메 어텀은 이곳에 더 이상 없다. 세월이 지나 이곳을 방문하니내 청춘 속 함께했던 이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어떤 이들은 겨우겨우 기억을 더듬어야 생각나기도 한다. 내 인생의 길에서 찰나의 순간 함께 걸었던 이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들은 작았던 아시안 소녀를 기억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 무렵 세월이 무색하게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아파트를 보니 고맙게 느껴진다. 손으로 밀어야 열리는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도 여전하다. 다.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이 아파트가 지금 보니 매우 허름해 보인다. 안쓰럽다.

그 자리 그대로 있는 붉은 벽돌의 이 낡은 이 아프트가 내 청춘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웃고 떠들고 긴 겨울엔 꼼짝없이 갇혀있던 이곳. 그 때의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학교에서의 기억은 점심시간이 거의 8할을 차지한다. 물가가 비싼 핀란드에서 살아남으려면 저렴했던 학생식당에서 점심으로 배를 든든히 채워야 했다. 그땐 왜 이렇게 밥에 집착했는지... 거의 필사적으로 학생식당 밥을 사수했던 것 같다. 학교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학생 식당에서 풍기는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았다. 이 학생식당 냄새는 시간이 지나도 똑같다. 십여 년 전처럼 학생 식당 앞에서 줄을 서본다. 이젠 주문이 자동화되어 한참을 헤맸다. 키오스크의 메뉴가 복잡해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몰라 결국엔 서 있던 학생에게 물어본다. 이전처럼 학생 할인으로 먹을 수 없고, 일반인의 가격을 지불한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다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기쁘다. 늘 필수 사이드 메뉴로 있었던 핀란드 비스킷과 버터는 그대로다. 특히 샐러드와 곁들인 샐러드 소스의 맛은 놀랍도록 그대로다. 아시아 여자 다섯 명이 미친 듯이 설레하며 점심을 먹는 모습을 학생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십여 년 전 이곳에서 공부했던 학생이라고 말하면 이들은 믿을까. 나도 지금이 믿기지 않는다. 

학교다!!
들어가자마자 나는 이 익숙한 학생식당 음식 냄새.
나도 학생인 마냥 줄을 서본다.
변하지 않는 학식. 저렴하지만 참 맛있다.

다행히도 나의 오랜 기억 속에 머물렀던 이곳들을 현실이라는 렌즈를 끼고 바라보았도 그대로였다. 나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가까워지고 있고, 세상의 때를 제대로 묻었지만 이곳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그 모습 그대로 기다려줬다. 덕분에 찰나의 추억을 소환하여 십여 년 전의 나를 재현할 수 있었다.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한 내 안의 순수함과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열망이 아직 살아있었구나. 꽁꽁 묻혀 잘 보이지 않았던 청춘의 씨앗들이 이곳에서 슬금슬검 올라오려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고개를 들어 올린 청춘의 씨앗이 자취를 감추지 않도록 잘 가꾸어보고 싶다.  

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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