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시트콤> 가지 말았어야 할 결혼식
하드코어 마흔, 돈 천원이 아쉬운 사람들
지하철 2호선이 동작역을 지났을 무렵 수진은 긴장했다. 창밖의 동작대교를 보니 강건너 남쪽, '강남'으로 향하는 것임을 체감했다.
수진은 강남이 무섭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스물 네살, 그의 첫 직장은 강남의 작은 신문사였다. 2012년 갈비탕 한그릇에 4만원이었던 식당에서 밥을 먹은 게 생생하다. 당시 수진의 급여는 85만원이었다. 매일 출근하면 일상이 될 법도 한데, 익숙해지지 않던 곳이 강남이었다.
직함은 기자였지만, 바이럴 마케팅을 해야한다며 사용해보지 않은 물건들은 물론 각종 시술 후기 콘텐츠를 작성해야 했다. 일의 보람과 자아 성장의 기쁨보단 수치심으로 얻어터진 수진의 첫 직장생활 시간이 강남 어딘가 얼룩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지하철로 여길 지나가기만 해도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진다. 대한민국은 성공의 척도를 '강남'과 얼마나 가까운가로 측정한다. 십년전보다 더 열등해져 성공과는 먼 삶을 사는 게 확정 된 수진은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이땅을 밟았다. 친하지 않은 교회 동생이 보낸 청첩장 덕분이다.
왜 결혼식을 강남에서 할까? "나 이만큼 잘 사는 결혼을 하게 됐어" 증명하려는 목적이 큰 결혼식 장소가 아닌가. 수진은 축의금을 내면서까지 축하하고 싶지 않은, 친하지 않은 이의 결혼식을 가며 이런 생각만 드는 자신이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자신이 만약 강남과 가까운 삶을 살았더라면 이런 꼬인 생각으로 누군가의 결혼식을 폄하하고 우습게 볼 건덕지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겠지. 올해 마흔의 수진은 서대문구의 한 고시원에서 거주한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결혼식 식대는 8만 7천원이었다. 축의금은 10만원, 5만원짜리 2장을 봉투에 넣고 뒷면에 또박또박 안수진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한숨이 새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수진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고민이 깊었다.
카톡으로 "언니 저 결혼해요 밥 먹으로 와요"라고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온 유선영. 5년 전 교회 청년 모임에서 같은 조를 했던 선영은 음치였고, 찬양을 큰 소리로 불러댔다. 갈라지는 허스키한 소리로 몹시 큰 소리로 찬양하는 모습은 본인의 콤플렉스조차도 뽐내고 싶어하는 미친 자기애라 느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나눌 때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유난스럽게 커다래지는 동그란 눈은 부담스러웠다. 그는 과하게 친절하다가도 어느 날은 얼굴을 봐놓고도 인사도 없이 쌩하고 가버려, 사람을 갖고 노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결혼식을 오라고 보낸 건가, 오지 말라고 보낸 건가. 수진이 처음 카톡을 봤을 때 든 생각이었다. 전화도 없이 딸랑 보내 온 카톡은 문자 맥락으로 보면 축하를 해달라는 건지, 와서 밥이나 먹고 축의금이나 내고 가라는 건지, 아님 결혼한다는 고지를 의무적으로 알리는 거니 안와도 된다는 건지 의도파악이 쉽게 되지 않았다.
수진은 뻣뻣하고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다. 그의 진심이 무엇이건 일단 오라고 보낸 초대장 아닌가. 무시가 되지 않았다. 결혼식에 가지 않으면 속이 비좁은 사람이 돼버릴 것 같았다. 남색 면소재의 발목까지 오는 여름` 원피스를 일단 입었다. 식전 2시간까지 고시원에서 넷플릭스로 영화나 볼까 고민하다 겨우 밖으로 나섰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동작대교를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향하는 곳이 강남이라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서초' 옛날부터 이곳에서 나는 쌀은 임금에게 바쳐졌다 한다. 좋은 일이 일어날 예감을 주는 풀을 '서초'라 불렀다. 아름다운 서초의 뜻, 그에 걸맞지 않은 마흔살 싸구려 원피스를 입은 안수진이 서초에 왔다.
서초역 6번 출구에서 180m근방에 웨딩홀이 있다고 길찾기 어플을 확인했다. 하지만 도착한 건물에 들어갔을 땐 "결혼식 없음, 결혼식장은 뒷건물에 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길은 막혔는데 뒷 건물을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6월의 햇빛은 뜨거웠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결혼식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주차장을 헤매고 있을 때 이런 경우가 많이 있었는지 주차 안내원이 결혼식장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겨우 도착한 결혼식장 앞에는 식 시작이 15:30분이라고 크게 써 있었다. 청첩장에는 결혼식장이 15:20분으로 표기됐다. 사람을 갖고 노는 건지 늘 의문이 들게 했던 선영이의 기질이 결혼식에도 고스란히 나타나는 거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장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진은 여길 오겠다고 한 자신의 선택을 원망했다. 신부 대기실에서 만난 선영은 수진을 향해 방긋 웃어보일 뿐 별 말이 없었다. 사진 기사가 수진과 신부 사진을 함께 찍어주겠다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자 하객이 왔다. 늘씬하고 키가 큰 단정한 매무새를 한 이였다. 명품 스카프가 눈에 띄었다. 선영은 수진과 인사를 제대로 마치지도 않은 채 그를 보더니 곧 하이톤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와줘서 고맙다며 싱글벙글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영은 수진이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건 뭐지? 뜻밖의 순간에 수진은 모멸감을 느꼈다. 혹시나 해서 조금 더 기다려보았지만, 선영은 수진으로부터 아예 고개를 돌렸고, 신부 대기실로 오는 하객은 더 많아졌다. 아, 정말 부페나 먹고 가란 뜻이었구나. 수진은 지하 2층 연회장으로 향했다. 결혼식 시작까지는 30분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 수진은 87000원 식대를 아낌 없이 먹고 바로 집으로 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뷔페마저도 실망스러웠다. 비건, 채식 뷔페라니. 콜리플라워, 쥬키니, 한전의 야채 테린 이런 신선한 야채는 수진의 취향이 아니었다. 육회와 탕수육을 결혼식에서 먹지 못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여러 모로 편견이 무너지는 날이군, 생각이 들었다.
식전이었는데도 연회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때였다. 세번째로 접시를 담으러 갔는데 "아 씨 먹을게 없네"라고 수진과 같은 마음을 말해준 이를 마주했다.
수진과 비슷한 연배의 여자였다. 그도 혼자 왔는지 원형 테이블 하나에 혼자 앉아 있었다. 여자는 결혼식 하객 복장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흰색 원피스는 색상도 신부에게 민폐였지만, 한눈에 낡아보였고 핏은 초라해 보일만큼 펑퍼짐했고 여자의 굵은 허리와 다리라인을 부각했다. 그때 "여기 혼자 앉으시는 거죠? 저희 좀 앉을게요"라고 사람들이 여자 주위에 앉기 시작했다. 그의 밥 먹는 동작이 어설퍼졌다. 주눅 든 티를 내지 않으려 더 퍼먹으려 했지만 손가락이 살짝 떨렸고, 흘리는 음식이 점점 많아 지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여긴 먹을 게 없다고 큰 소리로 말하던 이는 어디로 사라지고, 주위의 눈치를 보며 홀로 부페를 먹는 여자에게서 수진은 자신과 비슷한 결을 느낄 수 있었다.
"유선영이랑 친하세요?" 수진은 그 여자 옆에 앉아 말을 붙였다. 여자는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상황이 불편했는지, 대답대신 토마토를 입 안에 구겨 넣었다. 이에 토마토가 꼈다. 그걸 말해주기에 그와의 친분은 성립되지 않았기에 수진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 여자가 "이럴 거면 왜 청첩장을 보냈나 싶어요. 뭔가 우습게 된 거 같아서." 그 말 한 마디를 듣자마자 수진은 선영에게 거울을 보여줬다. 그리고 휴지를 건넸다. 여자는 좀 전에 낯선 사람이 자기 옆에 앉았을 때 쭈구리가 됐던 모습과는 상반되게 아무렇지 않게 휴지와 거울을 받아들고서는 이에 낀 토마토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서주연 입니다. 예전에 유선영이랑 같은 직장 다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진은 이곳에서 모멸감을 느낀 이가 자신만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수진은 주연 역시 신부대기실에서 동일한 일을 겪었음을 알게 됐다.
"밥값 빼고 나머지 금액이라도 돌려 달라고 말할까요?"
"진짜 없어 보이네요."
"그만큼 마음이 상했다는 걸 알려야 한다는 거죠."
"그걸 말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기분이 상한 것도 억울한데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옹졸하게 느껴지게 만드네요."
"나도 같은 마음이에요. 거지같아요."
"나한텐 정말 큰 돈이에요. 축의금. 와줘서 고맙단 말도 못들을 결혼식이었다는 걸 알았으면 절대 안왔어요."
"오늘 정신없이 바빠서 그랬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주연과 수진은 이제는 더이상 넘어가지도 않는 으깬 포테이토를 억지로 삼켰다. 그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못들었을법한 또 한 사람이 보였다. 등산 가방에 등산복, 주연 수진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였다. 그는 음식을 푸자마자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먹을 거 좇도 없네. 사이다도 없어 짜증나게." 어쩜 마음 속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큰 소리로 잘 뱉을까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혹시 유선영씨 하객으로 온 거예요?"
"유선영 대학 동아리 선배에요. 이보민이구요. 서른여덟, 대학원생, 무직입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많은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알 것 같아서다. 나이 40줄에 자신을 꾸밀 줄도 모르고, 돈 만원 쓰는 것 조차 부들부들 손이 떨리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대접을 받기 보단 징글징글하단 말을 훨씬 많이 듣는 바퀴벌레같은 삶이 어떤 건지 아주 잘 알 것 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눈빛만으로 서로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다음날, 세 사람은 유선영으로부터 바쁜데 결혼식에 와줘서 고맙다는 말과 축의금을 돌려 받았다. 수진은 이게 어찌된 일인지 주연, 보민에게 물어봤다.
"우리랑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 중에 신랑 할머니가 있었나봐. 그분이 신랑한테 뭐라고 했나봐. 저렇게 어려운 분들이 전재산같은 돈을 축의금으로 내고 축하해주러 왔는데, 정말 신부가 싸가지 없이 와줘서 고맙단 말 한마디 안 한 게 사실이냐고."
"근데 그 말을 한 사람이 우리인 줄은 어떻게 알지? 우리가 통성명했을 때 할머니가 셋 이름을 일일이 다 기억해서 신랑한테 말한 걸까?"
"글쎄...유선영도 알았던 게 아닐까? 자기가 와줘서 고맙다고 말 안한 하객이 누군지, 축의금이 전재산같은 이들이 누군지 말야."
"돈을 돌려 받은 게 어째 기분이 좋지많은 않다."
"결과적으로 신부한테 민폐하객이 된 건 맞지 뭐. 신랑 가족들한테도 밉보이게 했고."
연약한 말로 누군가를 흔들 만큼은 아직 우린 건재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미안하지만 고맙다. 비건, 맛있었다. 나이 마흔에 친구가 생긴 건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