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양말을 찾게 된다. 새삼스레 찾기에는 매일 고르고 신고 있는 것이 양말이지만, 연말 선물을 생각하다 보면 꼭 양말이 먼저 떠오르는 탓이다. 해가 끝나갈 즈음이 되면 내가 그 해에 닿을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양말을 선물하곤 한다. 열심히 챙겨서 치르는 의식-같은 것은 당연히 아니어서, 하지 않고 지나가기도 하지만... 여유가 조금 나면 양말 가게에 들러서 누구한테 어떤 양말이 어울릴지 나름대로 궁리하며 골라 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굳이 연말 선물이 아니더라도, 양말은 보통날에 선물하기에 꽤나 유용한 품목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누구에게 양말을 줘도, '이런, 양말은 이미 집에 많은데...' 혹은 '고맙긴 한데, 이걸 어디다 써'라는 곤란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양말이란 모름지기 빨고 널고 말리고 개고 꺼내어 신는 하루하루가 지나가다 보면 꼭 한 짝을 잃어버리거나, 구멍이 나거나, 그도 아니면 고무줄이 늘어나서 하루 종일 걸을 때마다 흘러내리는 애물단지가 되는 일이 많은 물건이 아닌가. 그러니 집에 여유롭게 많이 챙겨둬서 손해 볼 일 없지 않을까... 부피가 큰 것도 아니고, 필요하기는 매일 필요하고. 그런 믿음에 더해, 가격 면에서도 주기도 받기도 부담스럽지 않은 터라 여러모로 실용적이다. (물론 양말 따위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비싼 예쁜 양말들도 세상에 많지만)
올해에도 그렇게 이 핑계 저 핑계로 양말을 골라 담던 중에 새로 나온 양말 책(!)까지 발견해서, 산 양말들을 늘어놓고 포장하며 쉬엄쉬엄 다 읽었다.
내게 양말은 이런 의미다. 예쁜 양말을 골라 신는 것만으로 평범한 일상이 단숨에 특별해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내 양말 서랍장에는 빨주노초파남보 펄 레이스 벨벳 시스루 꽃 별 구름 땡땡이 가로줄무늬 세로줄무늬 지그재그까지 다양한 색상과 독특한 소재, 아름다운 패턴으로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물들여줄 양말이 88켤레나 있다.
<아무튼, 양말>
88켤레씩이나 있지는 않지만, 선물하는 것만큼이나 내 양말도 꽤 여럿이다. 딱히 특별한 게 있거나 브랜드 양말은 아니어도 검은색, 남색, 갈색 언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 옷장 속에서 종종 눈에 띄는 강한 색, 색색의 패턴이 들어간 옷가지는 보통 양말이다.
그리고 가끔은 의외로 잘 신은 양말 한 켤레가 정말 하루의 기분을 올려주기도 한다. 올해 나의 베스트 양말은 당근 양말과 스마일 양말 - 물론 내가 그냥 맘대로 붙인 이름이다. 그냥 지하철 상가에서 오며 가며 산 양말들이다.
신고 보면 흡사 당근 두 개같이 되는 주홍색 양말은 온통 새까맣게 입고 다니던 날들에 포인트로 요긴하게 신었다. 무채색보다는 쨍한 색을 볼 때 텐션이 떨어질 일이 덜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 색을 신든 내 발에 신경 쓰는 사람이야 당연히 나뿐이지만, 그냥 왠지 기분도 덩달아 좀 더 선명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스마일 양말은 발목에서 커다랗게 웃고 있는 양말이다. 가끔 신발끈을 묶으러 수그릴 때,(올해는 유독 신발끈이 자주 풀렸다) 자리에 앉아있다가 기운이 죽어 시선이 떨어질 때면 올라간 바짓단 아래로 웃는 얼굴이 보인다. 그러면 손톱만큼이나마 조금 나은 기분이 된다. 스스로도 딱히 왜 그런가 납득은 안되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몇 번 그러고 나니, 아침에 양말을 골라 신을 때부터 한 번이라도 더 웃게 되는 날들도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벽난로 양말에 선물을 두고 가길 기대하기엔 너무 나이 들었고, 어딘가의 도비에게 내가 양말을 줘보았자 진짜 프리덤을 줄 수도 없지만, 소박하게 두 발이라도 따숩게 덮어줄 수는 있다. 내 발도, 다른 누군가의 발도. 때로는 별것 아닌 것들이 별 위안이 되니까. 바깥에 나서기 전에 골라 신을 수 있는 맘에 드는 보들보들한 양말 한 켤레같은 것들이 나에겐 그렇고, 아끼는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겨울에 쓰는 나의 사적인 호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