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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원 Jan 07. 2019

조금도 스마트하지 않은, 손목시계

씻을 때를 빼고 내 왼쪽 손목에는 항상 동그란 손목시계가 채워져 있다. 잘 때도.

워낙 익숙해서 딱히 불편하지는 않다.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편이라, 오히려 없으면 허전하다. 안경만 계속 끼다가 렌즈를 끼고 나온 날 습관적으로 안경을 고쳐 쓰려고 하는 것처럼, 정말 드물게 씻고 나오면서 다시 시계를 차는 걸 잊어버린 어느 날에는 하루 종일 빈 손목을 습관적으로 쳐다보곤 했다. 항상 시계를 차고 있으니 이런 버릇이 생긴 건지, 아니면 시간을 확인하는 버릇 탓에 시계를 차게 된 것인지, 어느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대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스마트폰이, 요즘의 내 주변에서는 스마트워치가 시간을 알려주고 있지만 정말 시간밖에 알 수 없는 이 손목시계로 시간을 보는 게 아직은 더 좋다.


그렇다고 내가 시간을 초 단위로 지키는 철두철미한 사람이냐 하면 아주... 머쓱하게도 아니다.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날들이 많았다.


잠에 유독 약하고 그중에서도 아침에 취약한 나는, 그래도 사회인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알람을 몇 겹으로-요즘은 한 5겹쯤- 설정해두는데, 그중에서 정말 내가 들어먹는 건 마지막 알람뿐이다.

사실은 첫 번째 알람을 듣는 날도 많다. 그리고 잘 때조차 푸르지 않는 손목시계는 희미한 정신으로 이게 나의 겹겹이 알람 중 과연 몇 번째 알람인가, 내가 무시해도 되는 알람인가를 판별하기 위해 쓰인다. 알람시계 역할을 하고 있는 핸드폰은 내가 일부러 침대에서 멀리 두었기 때문에(실천하는 사람이 되려면 의지를 믿을 게 아니라 환경을 만들어내라는 어느 책을 보고부터 이렇게 한다. 하지만 물론 계속 더 자려는 내 의지가 더 강하다ㅎ), 왼쪽 손목만 들면 바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손목시계는 아주 요긴하다. 여기까지 쓰니 알람을 그냥 줄이는 편이 낫겠다 싶기도 한데... 나도 대체 내가 왜 이런 수고로움만 들이면서 알람의 행렬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이해가 안 된다.



습관적으로 차게 된 건 아마 고등학교 즈음부터인 것 같은데, 시작은 카시오 시계였다. 수능시계로 산 건 아니지만 너무나 수능시계 표준에 잘 맞아서 고3 마지막까지도 유용하게 쓴, 우리나라 학생다움의 표준(내 맘). 배터리는 닳은 지 오래고 다시 충전은 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가지고 있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인가 성년의 날인가에 오빠한테 선물받았던 시계는 메탈 소재였는데, 시계 특성상 가끔씩 살이 찝힐 때가 있었다. 찬바람이 불 즈음이면 그게 진짜 아팠다. 원래가 그런 시계는 추운 날씨에 차가워서 못 차기도 하고. 반짝거리고 찰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그 시계를 차면 어쩐지 어른이 된 기분이었지만, 후드티를 입고 다니며 차려니 좀 어색해 보이기도 했고 여름 한정으로 찰 때마다 손목을 조심조심 움직이게 되어서 점차로 케이스에 모셔두게 되었다.

그 뒤론 전천후로 편하게 찰 수 있는 시계를 찾게 되었다. 계절 무관, 패션 무관, 물 좀 튀어도 신경 쓰이지 않을 그런 시계. OST 시계도, 브랜드라곤 없는 캐릭터 시계도 차 보던 중에 2년 전에 온라인에서 특별 세일을 한다고 해서 처음 보는 브랜드의 시계를 샀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아직도 뜬금없는 브랜드인 TID Watches. 고무? 실리콘? 이라 감기는 촉감도 좋고, 생활방수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수준으로 되고, 색이 진짜 잘빠졌다. 어지간한 옷에는 무난하게 어울린다. 습관적으로 차면서도 특별히 시계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이때 이후로는 시계가 조금 더 좋아졌다.


최근에는 작년에 여행에서 업어온 knot 시계를 차고 다닌다. <퇴사 준비생의 도쿄>에서 처음 보고, 여긴 가야 한다고 가게를 구글 지도에 넣어뒀다가, 친구와 무려 적금을 들어서 간 도쿄 여행에서 결국 샀다. 헤드, 스트랩 각각을 커스텀으로 골라서 조립하는 시계라 한참을 이것저것 맞춰보며 골랐다. 손목에 딱 맞춰서 차고 싶어서 시곗줄에 구멍을 하나 더 뚫으려는데 일본어는 전혀 못해서 “에... 모어(more) 호르(hole)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단어를 말하는데 찰떡같이 알아들으신 기적의 점원분이 구멍도 하나 맞춰서 더 뚫어주셨다.




이 두 시계를 두고 아침에 시계를 바꿔 찰 지 한 번씩 고민하는데, 꽤나 재밌는 시간이다. 정말 잠깐이긴 하지만 좋아하는 걸 생각하고, 본다는 건 잠깐이더라도 항상 기분 좋은 일이니까. 돌이켜보면 습관적으로 시간을 보면서 셀프로 쫓기고, ‘아 벌써...’라는 한숨 섞인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뭐 하는 건가 싶은 내 아침 풍경을 포함해서, 마음에 드는 시계를 차고서도 마음이 너무 바빠서 시계를 볼 때마다 할 일들을 맞추기 바빴던 때들. 적어도 시계를 고르는 아침에 한 번씩은, 끼워 맞추는 일상이 아니라 나한테 쓰는 시간들을 볼 수 있는 시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변에선 스마트워치가 꽤나 일상인데, 여전히 끌리진 않는다. 시간보다 많은 것을 내 손목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면 걱정병자인 나는 지금보다 더 마음이 쫓기는 날들을 보내게 될 것만 같다. 아마도 매우 높은 확률로...! (그리고 솔직히 네모난 애플워치 예쁜지 모르겠다.)


일단은 시간부터, 내 손목의 내 취향의 시계로 확인하는, 내 시간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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