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와 캔 디자인이 바뀐 날을 기억한다. 대학 때 여느 날처럼 도서관 자판기에서 데자와를 뽑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자판기에 있는 포장과 내가 뽑은 데자와의 모양새가 달랐다. 나는 왜인지 당연히 이게 한 80년대에 만들어진 이후로 그 회사에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동아오츠카의 누군가가 데자와의 디자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바꿨다는 게 뭔가 충격이었다. 물론 바뀌었는데도 전혀 이 시대의 음료같이 바뀐 건 아니어서 2차 충격이긴 했다.(이와중에 실제로 데자와가 출시된건 1997년이라고)
충격을 나누고 싶어서 여기저기 얘기했는데, "그런 거에 충격받고 있다니 데자와를 얼마나 마시고 있는 거냐 그만 마셔라"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홍차와는 거의 전적으로 다른, 그러나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 액체'라는 데자와. 나는 이게 처음 마실 때부터 호여서 호불호가 갈리는 음료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워낙 호불호 갈리기가 극심하다 보니 서로 설명하다가 나온 드립 같았다.(우리나라는 이렇게 좁은 땅에 드립왕이 왜 이리 많을까) 그냥 홍차랑 비교하기도 하고, 밀크티를 종류별로 대며 비교하기도 하는데 제대로 된 밀크티를 마셔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데자와를 마신 나로서는, '진짜' 밀크티랑 어떻게 다른지를 애초에 알 수가 없었다.
밀크티라서 좋았던 게 아니고, 그냥 달달한 게 좋았다. 밍밍해서 싫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너무 센 맛이 아니어서 덜 질렸다. 흡사 MSG 같은 단맛 때문에 캔 음료는 대체로 좋아하는데, 캔커피를 마시면 뭔가 조금 찜찜하게 달라붙듯이 남는 듯한 단맛이 데자와에선 그 '밍밍함'때문인지 덜했다. 사실 이렇게 얘기하긴 하지만, 캔 음료 취향에 대단한 게 있을 리가. 그냥 맛있어서요.
마시던 음료수가 밀크티를 표방한 무언가-여서 카페에서도 밀크티를 시켜보았다. 접하게 된 순서가 뭔가 이상하지만, 하도 데자와는 밀크티가 아니라고들 하길래 궁금해서.
처음 카페에서 제대로 마셔본 밀크티는, 아주 귀엽고 예쁜 티팟에 담겨 나왔다. 집 옆 카페에 가서 시켜보았는데 (나한테는) 운 좋게도 티백으로 우리는 건데도 꽤나 달달하게 해주는 곳이었어서, '오 사실은 더 맛있는 음료였네'싶었다.
같이 나온 작고 귀여운 찻잔에 한 잔씩 호로록호로록 따라 마시면 세 잔 정도가 나왔다. 다른 음료들은 따뜻한 음료여도 그냥 잔에 내어주면서 밀크티는 꼭 티팟에 담아서 내어주는 곳이었다. 어차피 그게 그거일 텐데 티팟에 담겨 나온 걸 따라 마시면 왠지 좀 더 여유 부리는 기분이 살았다. 커피를 마시면 왠지 잠을 참으며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이건 마시고 따뜻한 집에 돌아가서 낮잠 한 숨 자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홍차에 카페인이 더 많다지만 사실 나는 어차피 커피를 마셔도 잘잔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 카페에는 보통 이야기를 나누러 가는 경우가 많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장님의 티팟 컬렉션도 너무 귀엽고 예뻐서 갈 때마다 다른 티팟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예쁘고 귀여운 건 그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데자와보다 더 맛있게 달달한 밀크티에, 그런 티팟의 호사까지 더해져서 생각날 때마다 자주 가서 밀크티를 시켜 마셨다.
그 카페가 아니더라도,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에 가면 종종 밀크티 한정으로 티팟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들이 있었다. 내가 자꾸 카페에 가면 밀크티를 시키자 나를 '밀크티' 애호가로 생각한 친구가 꼬드겨서 멀리까지 가서 마셔보기도 했지만 '고급'이고 '정통'일수록 내가 좋아하는 그 조미료같은 단맛이 떨어져서 다시 땡기진 않았다. 그게 덜할수록 고급이라는 건 알지만... 고급이면 뭘 해, 쌈마이여도 내 입에 맛있는 게 좋다. 티팟의 호사도 왠지 지나치면 괜히 부담스럽기도 했던 것 같고. 그러니까 나는 애초에 홍차의 부드러운 향을 음미하며 입맛을 발전시켜나가는 밀크티 애호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은 동네 카페로 돌아왔고, 그 카페가 다른 가게로 바뀌고 나서는 또 잠시 잊었다가, 자판기에서 데자와를 발견하는 날이면 무심결에 뽑아 마셨다.
회사 자판기에도 데자와가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달다구리가 필요하다 싶으면 빼먹는데, 참새방앗간이 따로 없다. 회의 들어가면 당 떨어질 테니까 한 캔, 일하다가 입이 심심하니까 한 캔.
사실 꼭 밀크티가 아니어도 좋다. 그다지 섬세한 혀도 아니고, 좋아하는 이유도 그때그때 만들기 나름이었다. 그냥 달달해서 좋고, 바람쐬러 나왔을 때 홀짝홀짝 마시며 심심함을 달래기 좋고, 분위기 좋은 데에서 분위기를 더 낼 수 있는 티팟의 호사를 누릴 수 있어서 좋고. 그저 그때그때 멀리까지 찾으러 가지 않아도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즐거움에 그것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캔이든, 티팟이든, 데자와든, 홍차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그 무언가든, 적어도 그런 즐거움 하나씩은 항상 가까이에 가지고 있을 수 있길.
이렇게나 썼지만 역시나, 요즘의 내가 매일같이 데자와를 마시는 건 사실 그냥 맛있어서다.
혹시 나같은 취향의 누군가가 있다면, 약간 더 고급진 그러면서도 달달한 밀크티로 오설록에서 파는 분말 밀크티가 있다. 가격이 조금 나쁘지만 맛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