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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원 Mar 03. 2019

밥아저씨는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즐겁게 그립니다

취미로 종종 그림을 그린다. '취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데, 딱 그렇다. 즐기기 위한 것이니 내 맘대로 내가 내킬 때 주변의 사물들, 사람들, 장면들을 내 방식대로 담는다. 낙서 수준이더라도 한순간에 챡챡 눈앞의 장면을 찍어내는 사진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고, 장인이 아닌 나는 장비빨을 타기 때문에 야심차게 아이패드를 산 뒤로는 더 자주 가볍게 취미 삼아 그리고 있다.

나는 내 업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업으로 하는 일은 '일'이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마 그림이 내 업이었다면 당연히 지금처럼 즐겁기만 하진 않았겠지. 하지만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나한테 그림은 잘 안 그려져도 그냥 그뿐인 일이다. 그리는 동안 편한 시간을 보냈으면 그것으로 좋고, 마음에 들지 않게 그려져도 그저 나만 보면 되고, 기분이 나면 다시 그리면 된다. 직접 그리지 않더라도 유튜브에서 그림 영상이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업 영상들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우와우와 하면서 보다 보면 몇 시간이 금방 훌쩍 간다.


사실 무언가 그리는 것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냥 좋았다. 학교에 다닐 때도 미술 시간에는 숨통이 좀 트이는 느낌이었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책상 배열에서 벗어나서, 공부라는 느낌 없이 보내던 시간들. 어릴 때도 지금도 나는 생각이 아주, 아주 많은 편인데 그림은 타고 타고 이어지는 생각을 잠시 일시정지시키기에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려고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멈추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항상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는 부작용도 있지만...ㅎㅎ 한 장 다 그려내고 나면 알게 모르게 머릿속이 좀 비워진다고 해야 하나, 조각 모음이 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을 비울 수 있어서 좋다고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는 대상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보통 그림으로 그리려면, 평소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관찰하게 된다.

주변 사람을 그릴 때면 한참 동안을 그 사람 얼굴을 요목조목 뜯어보는데, 아마 그리는 과정을 당사자가 옆에서 본다면 민망해할지도 모른다. 이 사람 안경이 이렇게 생겼었네, 웃을 때 입매가 이렇게 되는구나, 맞아 이런 스타일의 옷을 자주 입었었지. 그렇게 자세히 보고, 그려내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왠지 그 사람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괜히 다시 만났을 때에도 달라진 게 있나 유심히 보게 되기도 한다. 경험상 사진 찍히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어도 그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보통 즐거워해주는 편이라 완성한 그림은 선물하기에도 좋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실사 그대로 찍어내듯이 그리는 재주가 없기도 하고, 적어도 나한테는 실물과 똑같은 그림이 딱히 좋은 그림인 것도 아니다. 그리는 사람이 생각하는 그 사람의 특징, 그 장면에서 기억하고 싶은 특징, 그 대상만의 어떤 것이 무엇인지 알겠는 그림이 있는데 그런 걸 보면 그림체와 상관없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찍어둔 사진을 자세히 뜯어보면서 알아내는 것일 수도 있고, 일상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라 알 수 있는 그 사람이 매번 하고 다니는 스타일일 수도 있고, 특정한 색감일 수도 있고, 그 특징이 어떤 것일지는 그리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리는 대상마다 다를 테다. 무엇이 되었든 그리는 시간은 그 특징이 뭘 지를 생각하고, 찾아내는 연습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서는 유독 그렇게 특징을 잘 찾아내서 표현하는 그림들이 좋아서, 비슷한 이유로 책에 들어간 일러스트들이 좋다.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컨텐츠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그림들을 보면 그냥 예쁘다기보다는 그림을 설명을 더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 쓸 수 있구나 싶고. 취미긴 하지만 어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어떤 것이든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무엇을 어떻게 그리든 취미 그림에는 노하우는 있을지언정, 정답은 없다. 말투, 글씨체, 취향이 사람마다 다른 것이 그 사람의 스타일이듯이 그림체도 어떤 그림체이든 이게 내 스타일이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본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취미로 하는 거면서도 숨 쉬듯이 평가가 들어갈 위험이 크니까.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보면 괜히 내 그림이 초라해 보인다거나, 무언가 정석적인 방법대로 배워야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거나. 잘 그렸다, 못 그렸다의 기준이라는 것도 내가 정하기 나름이고, 아니 애초에 그런 기준 자체도 없어도 되는 일인데도 그렇다. 하지만 예쁘고 다정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말 습관이 부러워지듯이 다른 사람의 그림체가 더 좋아 보인다거나 할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내 그림이 틀린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알맹이 없는 비교를 하다가 내 소중한 취미를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알겠지, 미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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