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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원 Feb 17. 2019

읽는 일의 효용

책값은 어지간하면 아끼지 않는 집에서 컸다. 집에는 항상 책이 많았고, 주변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 검색대에서 책을 찾고, 검색대 옆에 놓인 이면지에 청구기호를 적어서 책장 사이사이를 다니며 책을 찾고 구석 자리에 앉아 종이냄새 속에서 책을 읽는 시간도 좋았다. 


요즘도 책은 꾸준히 사고 있는데, 이책저책 짚이는대로 읽는 습관 탓에 사놓고 제대로 안읽은 책도 허다하다. 그러면서도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방패막이삼아, 서점이 보이면 습관처럼 들어가고 알라딘 플래티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와 보니 아끼지 않고 소비하는 품목이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나의 취향을 정의해나가기 시작해도 좋겠다 싶다.)


쉬는 날 책을 읽는다고 하면 범생이 취급을 받을 때도 가끔 있는데, 딱히 대단한 책들을 읽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에세이, 잡지, 흥미 위주의 글들을 되는대로 읽는다.


무언가를 읽는 일로 안정을 찾는 편이라 내용에 관계없이, 그냥 읽는 일 자체가 좋은 날들이 있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고요를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리미리 찾아두려고 하는데, 나긋한 음악을 틀어두고 쿠션에 기대서 책을 한장한장 넘기며 읽는 일은 그 중 하나이기도 하고. 요즘은 전자책도 읽지만, 그렇게 종이책을 읽을 때의 느낌을 아직 포기할 수가 없다.


일상 에세이를 읽으면서는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위안이 가끔은 자기합리화로 이어져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때로는 그런 식으로 숨어들 곳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터뷰집은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이런 일화들을 겪어서 지금 하는 일을 찾아갔구나 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요즈음 잡지는 워낙에 다양한 주제로 나와서 이것저것 기웃거리기 좋아하는 흥미 이주민인 나로서는 항상 관심이 가는 품목이다. 영화에 대해서, 집에 대해서, 어떤 도시에 대해서,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에 대해서.



그런가 하면 말을 고르고 다듬어 엮어내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으며, 말을 다시 배우기도 한다. 소설을 읽을 때 보통 그러한데 이런 상황을, 이런 감정을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있구나 싶을 때가 많다. 소설 속 사람들은 워낙 다양해서 꼭 내 상황과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읽다보면 내가 지나온 일들을 떠올리거나 다시 이해해볼 수 있게 되는 구절들이 있었다. 

나는 자기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하는 사람이라, 표현에 서툰 나라도 읽다보면 내 나름대로의 내 주변을 이해하기 위한 말을 조금씩 더 배울 수 있겠거니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우리는 나날의 대화 속에서 섞이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지니고 살아갈 시각을 서로 견주고 나누고 때로는 거부하고 때로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열려 있었다. 그러나 모래가 내게 모든 것을 보여준 건 아니었다. 내가 그랬듯이.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달린 로프 같아서, 단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모래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다는,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준다는 안심을 준 사람이.
<내게 무해한 사람 - 모래로 지은 집>


"시험 어땠어?"
"아......, 보통 그런 거 안 묻지 않나?"
시험이나 과제, 선생님 흉, 그리고 어느 가게 케이크가 맛있다든가 새 코트를 살까 말까 망설여진다든가, 또 가끔 남자친구 이야기까지, 그런 싱거운 화제들로 우리의 대화는 이루어진다.
고리에에게는 고리에의, 후미카에게는 후미카의 ,여러 가지 혼란이 있을 것이다. 또는 갈등, 혹은 열망. 그런 걸 깨끗하게 포장해 사람들 앞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만 보인다. 나도 마찬가지다.
<기쁨의 노래>

그렇게 읽은 책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책 추천은 좀 까다로운 일인데, 책 읽는 것 자체를 재미없어 하는 경우도 많고(사실 이 경우는 거의 추천하지 않지만), 잘 읽더라도 어느정도 알기 전까지는 과연 이 책을 재미있어 할 지에 대해 확신을 갖기 어려운 탓이다. 그러니 추천 성공률이 꽤나 낮은 편이다. 그래도 종종 책을 읽으며 이거 재밌어 할 것 같은데-하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때면 다 읽고나서 같은 책을 사서 추천사를 쓰고 선물로 전하거나, 먼저 추천해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곰곰히 생각해서 책을 빌려주곤 한다. 반대로 선물 받거나, 추천을 받기도 한다. 

잘 맞아서 추천에 성공한다면 그 다음 번에는 책에 나온 얘기를 시작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거나, 왜 재미없었는지를 얘기하면서 몰랐던 면을 이해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어느쪽이든, 재밌는 일이다. 책도, 그 사람도 더 알 수 있는.



이 정도의 효용만으로도, 나는 아마 계속해서 읽어나갈 것이다. 쌓아둔 책들을 보니 이삿짐 쌀 생각에 골치가 아프지만 그렇더라도 책에 둘러쌓인 채로 보내는 시간과, 그걸 나누는 재미를 계속해서 가져가야 할 테니까.


+)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는, 책을 읽는 일이 어떤 쓸모가 있을 지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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