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옌데 Oct 16. 2021

그들이 굳이 몇 시간씩 웨이팅을 하는 이유

맛집을 찾아가는 즐거움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조미료에서 나온다

  본인은 본디 맛집에서 한 끼 식사를 하려고 몇 시간 동안 길바닥에서 웨이팅을 하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극혐 했었다. 이 글은 나와 비슷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나는 웨이팅을 싫어한다는 티를 팍팍  다니지는 않았다. 누구나 각자 취향껏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있을 테고, 그게 나한테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가볍게 넘어 않았고, 사실은 그들을 약간의 경멸이 섞인 시선으로 보기까지 했었다. '상술에 쉽게 넘어가는 귀 얇은 사람들'이라는 부정적 인식에다 더해서 '유치하게 먹을 것에 목매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까지 덧씌워진 탓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먹을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초등학생 때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착한 행동을 한 모범 학생들에게 '꿈딱지'라는 스티커를 친히 하사해주셨다. 꿈딱지를 특정 숫자 이상 모으면 과자 한 봉지로 교환해 줬는데, 칩을 모으면 현금으로 바꿔주는 카지노비슷한 시스템이었다. 내가 과자를 받던 날, 내 주변에 마치 벌떼처럼 몰려들어 과자 한 조각만 달라고 손바닥을 내밀며 아우성치던 아귀들의 악다구리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쉽게 잊히지가 않는다. 내 생애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맛있는 것만 보면 이성을 잃은 듯 달려드는 꼬맹이들을 볼 때마다, '촌스럽게 먹을 것에 목매지 말자'는 신조가 더 강해졌다. 성인이 되어서도 음식이란 그저 적당히 배만 채워주면 되는 거라는 생각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떤 음식이라도 딱히 호불호 없이 대충 다 잘 먹는 사람이 되었다.


   중 한 명은 나를 가리켜 <기피 식당 감별사>라고 불렀다. 비록 잘것없는  가졌지, 내가 맛없다고 평가하는 식당이 있다면 무조건 기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주식시장에 비유하자면 상한가는 전혀 못 알아보지만 하한가는 귀신같이 찾아내는 능력이랄까. 그건 내 입맛에 대한 꽤 정확한 평가다.




  그랬었던 내가, 지금은 겨우 몇 달 만에 우리 동네 마포구 맛집을 거의 다 꿰고 있는 건 물론이고 종로, 강남, 용산, 영등포, 이태원, 공덕, 성수 등등 서울 각지에 위치한 이름난 식당들과 파주, 인천, 대전, 제주의 내로라하는 유명 맛집들을 섭렵하고 있다. 이건 다 내 멋진 여자친구(현재는 아내) 덕분이다. 내 연인은 자신만의 지역별 맛집 목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 가보는 낯선 지역에서도 맛집 검색을 기가 막히게 해내는 재주를 가졌다.


  지난 몇 달간 맛집 투어를 직접 다녀본 뒤에, 나는 비로소 왜 사람들이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길에 서서 기다리는 고생을 자처하는지를 뒤늦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저 밥 한 끼를 먹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맛있는 걸 먹고 싶고, 그걸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가령, 닭갈비를 먹으러 춘천에 가는 커플에게 닭갈비는 그저 가벼운 여행을 다녀오기 위한 핑곗거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최소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맛집을 찾는 이유는 그 서너 시간 동안 서로 손을 마주 잡고 맘껏 대화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즐겁고 소중하고 기대되 때문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함께 먹는 맛있는 음식은 그날 하루를 충분히 행복하게 해 준다. 가장 원초적인 식욕과 미각을 만족시기만 해도,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더 열심히 살아갈만 가치가 있는  느껴진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오롯이 탐미하기 위해 홀로 맛집을 찾는 마니아도 있고, 커플이 아니라 마음 맞는 친구들과 가는 사람들도 다. 그들 또한 나와 비슷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식당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는다. 몇 시간의 이동 시간과 웨이팅이 헛된 고역이 아니라,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기 때문일 테다.


  그들은 예전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맛집 홍보물의 상술에 놀아난 사람들도 아니고, 먹을 것에 환장한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는 각자의 인생을 즐기는 더 다양한 방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나 놀라운 식도락의 신세계를 내게 르쳐주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해주는 내 아내에게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앞으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취향이나 행동에 함부로 박한 평가를 내리는걸 좀 더 자제해야겠다는 반성을 하며, 오늘도 나는 다음 데이트에 갈 맛집을 검색해 본다. 이제 날도 추워지고 있으니, 기왕이면 웨이팅을 위한 대기실이 구비된 식당을 찾아보고 있다. 여태껏 본 곳들 중에 손님 대기실을 갖춘 식당의 음식은 웬만해선 맛없었던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하다말고 듣던 음악 때문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