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이던가, 친한 친구가 잘 다니던 공기업을 관둔다고 했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왜 그만두냐고 물었더니, 회사가 나주로 이전을 한단다. 배와 쌀을 이야기 할 때나 듣던 나주로 회사가 이전을 한다니! 공기업을 지방으로 옮겨서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며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생각이 나는 썩 공감이 되질 않았다. 친구처럼 젊고 똘똘한 직원들 중 상당수는 회사와 함께 지방으로 향하기보다는 직장을 다시 구하더라도 서울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 무렵 처음 들었던 것 같다. 나주 “혁신 도시”라는 말을.
그래서 이번 나주 방문을 약간 기대했다. 그렇게 공기업도 옮기고 했으니 신도시 느낌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나주를 속속들이 본 것은 아니지만 오늘 CP를 차린 종합운동장 일대 (나주역 근처이기도 하다)를 보고 공기업을 지방으로 옮겨서 수도권 집중화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정 수도라는 세종만 봐도 실패라는 것은 자명하긴 하지만 더 남쪽에 있는 지방을 와보니 정말 실패다. 휑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천하장사 씨름대축제가 열리고 있는 나주
첫 구간 주자 중에는 중앙소방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소방간부후보생이 있었다. 동기 2명이 소방관 옷과 산소통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주자와 봉송 전후에 사진도 찍고 봉송 중에는 우리 스탭들과 함께 도보에서 따라 뛰었다. 내년 3월까지 교육이라고 하던데, 잘 마치고 멋진 소방관이 되시길!
소방간부후보생 셋
첫 구간 직후에는 스파이더 봉송이 있었다. 스파이더 봉송은 다른 말로는 찾아가는 성화봉송이라고 해서, 보통은 차량이 못 들어가는 지역에 성화봉을 든 주자만 뛰어서 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오늘 스파이더는 나주에 있는 봉황중학교에서 진행됐다. 봉황중학교는 삼성전자에서 운영하는 스마트 스쿨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학굔데, 전교생이 52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 봉황중 학생 중 네 명이 주자로 뛰었다. 다들 원하는 목표를 모두 이루는 학창 시절 만들기를! (쓰고 보니 나 자신이 굉장히 나이든 것처럼 느껴지네)
나주 봉황중 학생들
나주 CP를 정리하고 난 뒤에는 화순으로 갔다. 화순으로 바로 출근한 팀과 만나서 그 팀이 점심 먹는 동안 교대도 해주고, 화순 CP가 차려진 곳인 하니움문화스포츠센터 주변 구경도 했다. 지방을 다니다보니 시설이 없어서 운동을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핑계인 것 같다. 작은 도시에도 갖출 건 다 갖춘 체육시설이 꼭 있다. 물론 내가 모든 시군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보기엔 그렇단 말이다.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차(?)로 하는 청소
센터 앞은 결손 가정을 위한 김장 김치 담그기 행사가 한창이었다. 스탭 중 두 명이 그 앞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고 나는 잠깐 들렀는데 행사에 참여하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갓 담근 김치를 한 접시 가져다 주셨다. 맛있어보였지만 김치만 먹기는 조금 망설여져서 안 먹고 있었는데 곧 이어 수육을 가져다 주시는 게 아닌가!! 이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젓가락을 들고 덤볐다. 피로와 추위가 싹 녹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알고보니 김치와 수육을 가져다주신 아주머니는 화순군수 사모님이란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실한 고기와 맛있는 김치
기대했던 신도시는 볼 수 없었지만 지방의 정과 풍경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 꼭 모든 곳을 “도시”로 만들어야 하나? 그냥 지금 가진 특색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더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