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날리에서 레로
마날리에서 레로 가는 험준한 산길은 해에게도 외면당하여 일찍 어둡다. 우리 지프차 앞, 그 앞에 가던 트럭이 어느새 머리 위에 있다. 가파른 경사에 미끄러져 접히고 접힌 도로에서 큼지막한 돌멩이들이 최단 궤적으로 낙하한다. 윗길을 아슬하게 기어가는 자동차들이 그 궤적에 들지 않길 바랄 수 밖에 없다. 도로의 변곡점 끝에는 유조차가 뒹굴 넘어가 있다. 탱크 속에서 출렁이는 기름의 리듬에 박자를 맞추지 못한 것이다. 행여 내가 탄 차 위에 유조차가 있을까 올려다본다. 젖은 안개는 저 위에서 머릿속까지 들어와 낙하의 상상을 부추긴다. 상상은 괜찮다. 자동차나 바위만 내 머리로 굴러 떨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