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토 소셜링 #1.
화사한 보랏빛 비트가 얹어진 샐러드. 겉보기엔 친숙한 영철버거나 다름없는 두부 시저 랩. 알알이 영근 옥수수가 올려진 베지 보울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왜 아보카도 버거를 주문하고 말았을까? 아보카도가 들어간 음식 중 맛없던 것은 없었던 경험 때문이었까? 으깨어 다져진 아보카도 반죽을 버무린 콩고기 패티를 한 입 베어 물자, 강렬한 풀내음이 코 안 깊숙한 곳까지 퍼져왔다. 망했단 생각이 들었지만 싱긋 웃어보였다. 오늘 처음 만난 비건 음식 애호가들 앞에서 인상을 찌푸릴 수도 없었으니.
소셜 살롱 문토는 문토 소셜링이란 어플로 '소셜 게더링'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선 어플을 설치한 누구나 소규모로(4~6인 이하) 오프라인 모임을 개설할 수 있다. 그에 따라 다양한 모임들이 활달히 개설되는 중이다. 전시회 함께 갈 4인 파티, 바텐더와 함께 하는 주류 시음회, 자칭 씨네필들의 영화 모임과 심지어는 스카이 다이빙 모임까지. 교류에 목마른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임을 연다. 그중에서 내가 택한 첫 번째 모임이 이것이었다. 바로 [비건 맛집 즐기러 가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힘들었다. 취향은 존중하지만 내게는 힘든 일이었다. 콩고기 패티는 그럭저럭 먹을만했지만 소스가 없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싶었다. (서브웨이 샌드위치도 소금 후추는 있음) 입안을 질척히 채우는 아보카도 반죽 속에서 감칠맛을 어떻게 찾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소가 되어 버거를 먹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분명 버거의 실루엣은 내게 친숙한데, 이 낯선 맛은 무어란 말일지. 때문에 신기했다. 내 앞에서 보랏빛 샐러드 보울을 삭삭 야무지게 비벼서 드신 남자(J라 하겠다)분. 무려 1년을 넘게 비건 식단을 유지하고 계신다 했기에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당신을 비건으로 이끌었나요? 당신의 최애 (채식) 맛집은 어디인가요? 비거니즘의 입문은 대체 어떤 경로, 무슨 동기로?
처음 기획한 웹툰 <애니멀 히어로 : 닥터 슈바이처>는 동물 복지 사각지대에 왕진 가는 수의사 히어로물이었다.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나는 동물권 단체나 구조단체에 자문을 많이 구하곤 했다. 그때 인터뷰했던 동물권 단체의 대표님께 작은 답례로 여행에서 사 온 비누를 드려도 될지를 물은 적이 있는데, 고사하셨더래서 다른 선물로 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 비누가 야크(소의 일종)의 기름으로 만든 제품이었고, 대표님은 비건이었던 것이 고사의 이유였다. 먹는 것뿐 아니라, 동물에게서 비롯된 제품 역시도 사용하지 않는 철학이 비거니즘(Veganism)이란 것을 그때야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 앞에 앉은 J의 비거니즘은 그런 숭고한 철학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피부가 안 좋아져서. 건강식에 관심을 갖게 되다 보니 비건 식단을 알게 됐고, 실제로도 피부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에라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다른 참여원의 이유도 가벼웠다. 종종 혼자서도 비건 식당을 찾는다고 했는데, 그냥 맛이 좋아서 가는 게 전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분은 두부 시저 랩을 주문했다. 아보카도 버거를 먹었더라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내 자리 주변 식사중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각 테이블 자리를 꽉꽉 채운 사람들의 표정은 여느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더라도 저마다의 이유는 다를 수 있는 거니까. 그 이유가 무겁든 가볍든, 그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나에게는 그들의 그러한 접근이 새삼 새롭게 다가와서 이 글을 쓰는 것 같다. '나는 이래'라고 말하면 '너는 왜 그래?'라고 되묻는 환경에서 지내온 적이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에서 '나는 어느 쪽이지?'를 늘 고민했다. 늘 나의 다름을 설명하고 이유를 찾아 헤멨다. 그 때문인지 '나는 이래'라고 가볍게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 '나는 이럴 수도 있는 거잖아?' 라면서 말이다.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어'라던 이태원 클라스의 대사가 순간 생각났다.
다양한 삶의 방식과 지향점들이 존중받는 시대임을 나각하며 [비건 맛집 즐기러 가기]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나의 첫 문토 소셜링 참여도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느낌이다. 비록 음식이 입에는 맞지 않았지만 귀에 맞는 대화를 사람들과 나눴기 때문이었다. 비건이라는 소수의 취향을 즐기러 온 사람들 중, '너는 왜 그래?'란 뉘앙스의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없었다. 다음번 모임은 내가 직접 열어볼 생각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 다른 감상을 나누는 모임'으로. 다음엔 어떤 '다름'을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