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NEs Eye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평 Jul 26. 2016

칼의 노래 / 김훈

보이지 않는 것은 논하지 않는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들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글은 죽고, 버려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원한 건축을 꿈꾸듯, 영원한 글을 꿈꾼다.




소설가 김훈



"글은 대개 낡아지는 거예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지금 백 명이 넘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상을 받은 작가들이 다 살아있지 않아요. 낡고 퇴색했고, 우리와 관련이 없는 작품도 많아요. 그 책들을 다 읽을 필요는 없죠. 우리 한국문학사에서 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얼마나 될까요? 수천 편일 거예요. 그 역시 다 읽을 필요가 없어요. 모두 풍화가 되고 없어지는 거예요. 내가 쓴 글 또한 같은 운명입니다. 자꾸만 새롭게 써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느냐, 그게 문제죠."


"기계, 매체를 통해서는 안 합니다. 나는 시끄럽게 막 떠드는 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소음이죠. 소통을 하려면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어야 해요. 한 존재로서 적절한  거리로 떨어져 있어야만 이성적 사유나 판단이 가능해요. 뒹굴고 부둥켜안는 게 소통이라고 한다면, 이런 점에서 저는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겠죠."


-yes 24와 인터뷰 중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지 않는다. 철학자, 과학자, 사회학자, 환경운동가, 건축가 등 모든 분야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만, 만화가/소설가/시인의 인터뷰는 찾아보지 않는다. 눈에 들어와서 읽고 싶은 마음이 동하면 어쩔 수 없지만, 굳이 덕질 하듯이 찾아보지 않는다. 다른 건 덕질 하듯 찾아보는데 유난히 그렇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흑산'... 모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마초적이지 않냐는 의견 또한 동감한다.

그것이 불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소설가 김훈의 글을 다시 읽게 된 것은 그가 쓴 세월호 특별 기고 때문이었다.

슬픈 것은 그의 글이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칼의 노래>를 아직도 읽고 있다.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 잡고 쉴 새 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처럼 보였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고정된 적을 조준하는 일은 어려웠고 나를 고정시키고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도 어려웠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는 더욱 어려웠으나, 모든 유효한 조준은 이동과 이동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 내가 적을 조준하는 자리는 적이 나를 조준하는 표적이었다. 함대가 이동할 때, 적을 겨누는 나의 조준선은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 생사의 멱 통은 적에게나 나에게나 똑같이 좁았다. 그 먹통에서 삶과 죽음은 포개져 있었다. 그것들은 식별되지 않았다. 죽음 너머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자만이 그 멱 통을 드나들 수 있을 터인데, 바다에서 죽음 너의 삶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고, 입에 담을 수도 없었다.


<칼의 노래>, 김훈


<칼의 노래>가 아직 까지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끊임없이 보이는 것에서 실존을 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설명할 수 없고, 입에 담을 수 없다. 이순신은 철저히 눈에 보이는 것을 이야기한다. 칼로 벨 수 있는 것만 벤다. 여진이 이순신의 품에 안겨 자신을 베어달라고 부탁해도, 이순신은 여진을 베지 않는다. 여진은 베어져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어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적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보이지 않는다. 이순신은 그래서 적의 종자를 벤다.


나의 독서는 ‘잡박(雜博)’이에요. ‘잡’은 계통이 없다는 것이고, ‘박’은 넓고 박식하다는 뜻도 있지만 피상적이라는 뜻도 있어요. 나의 경우에는 후자예요. 내가 읽은 책들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냐를 생각해보면, 등에 식은땀이 나는 거예요. 대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걸 반성해야 하는데.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죠. 『자전거 여행』을 쓸 때, 시골에서 농부들을 많이 만났어요. 한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는데, 그들은 자신과 이웃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자신과 환경과의 관계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어요. 자기가 키우는 소, 말과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평생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이런 분들을 만나면 책을 읽는다고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정부패, 범죄가 있잖아요? 권력형 범죄를 살펴보면 다 공부 많이 한 놈들이 한 거예요. 일류 대학 나오고 책 많이 읽은 사람이 한 거예요. 너무나 분명해요. 나는 증거를 댈 수 있어요.


yes24와의 인터뷰


이순신의 삶을 김훈이 이야기했기 때문인지, 김훈이 이순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영향을 받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참 많다. 물론 보이지 않는 것이라 글로 담을 순 없다 :) 그저 개인적인 감상이다.


하지만 소설 내내 이순신은 실재, 또는 실존을 기반으로 사고하지만, 실재에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 철저하게 리얼리스트인 그이기 때문에, 수군 한 명, 적군 한 명, 모든 것에 의미를 담기 시작하면 무인으로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적절하게, 냉정하게 그것들을 외면한다. 리얼리스트이자 휴머니스트로서의 개인보다 무인으로서의 자아가 강했다. 어쩌면 그는 근대와 중세 사이에 존재하는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근대의 작가가 중세의 인물을 이야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왠지 이순신은 그런 인물일 거 같아서 슬프다. 





그렇게 된 것은 그럴만해서이다.

누구도 물리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임진년 개전 이래, 나는 그렇게 믿었다기보다는, 그렇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숨 막혔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해보자. 사실 나는 무인 된 자의 마지막 사치로서, 나의 생애에서 이기고 지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나는 다만 무력할 수 있는 무인이기르 바랐다. 바다에서, 나의 무武의 위치는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마지막 사치는 성립될 수 없었다. 바다에서, 나의 위치는 늘 적과 맞물려 돌아갔다. 내가 함대를 포구에 정박시키고 있을 때도, 적의 함대가 이동하면 잠든 나의 함대는 저절로 이동한 셈이었다. 바다에서 나는 늘 머물 곳 없었고, 내가 몸 둘 곳 없어 뒤채는 밤에도 내 고단한 함대는 곤히 잠들었다.


<칼의 노래>


래싱은 흔들리면서 길을 가는 모든 자들의 기본 동작이다. 별것이 아니지만, 이탈자는 살길이 없다.

그래서 원양을 항해하는 선박의 갑판원들은 쉴 새 없이 갑판을 순찰하면서 컨테이너를 묶는 쇠줄(래싱바)을 스패너로 조인다. 이것이 갑판원의 기본 업무다. 컨테이너는 선체와 밀착되어 롤링과 피칭을 함께 해야 하며, 컨테이너가 정위치를 이탈해 한쪽으로 쏠리면 그 기세로 배 전체를 끌고 쓰러져서 살길은 없어진다. 운동은 복원되지 않는다. 세월호는 등짐 지는 지게문만큼도 래싱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월호가 래싱을 엉터리로 해서 침몰했다는 말도 또 다른 동어반복이다. 비를 맞으니까 옷이 젖었고, 밥을 굶었더니 배가 고프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세월호는 왜 기울었고 왜 뒤집혔는가.


<새해 특별 기고>


모든 것에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이 당연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숫자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숫자는 정확하고,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잊지 말자. 여론조사기관과 정부가 자신의 입장에 맞춰 취사선택한 숫자가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는지. 눈에 보이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미 그곳에 실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실재를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나를 이길 조건은 나에게 있을 것이라고 바란 것은, 보이는 것만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삶을 지배하는 주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작중 묘사된 이순신의 전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걷어내는 것이었다. 몇 백 척의 적선들 앞에서, 적의 위세를 걷어내고, 아군의 두려움을 걷어내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물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이순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벨 수 없다고 말한다. 철저하게 보이는 것을 베어나간다. 그것이 이순신이 담대한 이유일 것이다. 이순신을 둘러싼 수많은 기대와 의심, 이순신은 보이지 않는 것에 너무 큰 압박을 받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성실하게, 한 발짝 씩,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죽음과 삶의 경계에 생이 존재했다.


세월호는 가라앉을 만해서, 가라앉았다.

래싱, 과적, 불법 증축....

그것은 세월호의 실존이었고, 침몰할 수밖에 없는 세월호를 만들어 낸 것은 보이지 않은 끈적하고 검은 욕망이었다. 그리고 가라앉을 세월호를 출항시킨 것 또한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욕망이었다.




삶은 적에게나, 아군에게나

소중한 것이었다.


포로들이 흘러내리는 시신의 조각들을 삽으로 떠서 들것에 실었다. 시신을 옮기면서 포로들은 울었다. 늙은 포로도 울었고 젊은 포로도 울었다. 주려서 퀭한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늙은 포로의 울음소리는 목울대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뱃속에서 꾸룩거렸다. 늙은 포로는 메마른 소리로 울었다. 늙은 포로의 울음소리는 파충류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포로들은 모두 각자의 개별적인 울음을 울고 있었다. 그들을 울게 하는 죽음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우는 그들의 울음과 그 울음이 서식하는 그들의 몸은 개별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적은 전투대형의 날개를 펼치고 눈보라처럼 휘몰아 달려드는 적의 집단성이기에 앞서, 저마다 울음을 우는 적의 개발셩이었다. 그러나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개별성의 울음과 개별성의 몸이 어째서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었다. 적에게 물어보아도 적은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칼의 노래>



망자들이 하필 불운하게도 그 배에 타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아무런 정당성의 바탕이 없이 우연히 재수 좋아서 안 죽고 살아 있는 꼴이다. 삶은 무의미한 우연의 찌꺼기, 잉여물, 개평이거나 혹은 이 세계의 거대한 구조 밑에 깔리는 티끌처럼 하찮고 덧없다. 이 사태는 망자와 미망자(未亡者)를 합쳐서 모든 생명을 모욕하고 있고, 이 공허감은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발적이라는 공허감, 보호받을 수 없고 기댈 곳 없다는 불안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허무주의로 몰아가고, 그 집단적 허무감은 다시 정치적 공략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새해 특별 기고>


이순신은 적의 개별성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가 적의 개별성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곽재우처럼 신선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순신은 자신이 죽을 곳을 전장으로 정했다. 그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다.


적의 개별성이란, 결국 살아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하다는 것이다.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 삶이 없다. 이순신은 그러한 자세가 무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은 백성이었다. 전쟁이라는 것을 결국엔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었다. 


당시의 조선에 살던 무인은 그랬다.

그는 당연한 것을, 자신의 역할 때문에 외면했다.


"수학여행을 가다가 그냥, 재수가 없어서, 죽은 건데..."라는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가끔 듣는다. 적어도 동년배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물론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에 감사한다. 삶이 덧없고, 불확정적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의식 기저에 깔려있는, 인간이란 무의미한 존재라는 反-휴머니티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생명의 존귀함과 삶의 우발성은 다르게 읽혀야 한다.


사상 검증을 하고 싶진 않다.

나는 삶을 살아가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으로서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도,

휴머니티가 존재하지 않는 모든 수단과 방법에 대해 혐오를 느낀다.

휴머니티가 존재하지 않는 모든 수단과 방법은 결국 타인에 대한 폭력과 혐오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다. 신자유시대가 너무 길었을까... TV와 영화, 드라마에는 휴머니티가 존재하는데... 뉴스에서는 휴머니티가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인간에 대한 애정은, 어디서 실체를 얻어야 하는 걸까?




주어와 술어를 가지런히 조립하는 논리적 정합성만으로는 세월호 사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진상을 밝힐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이 사태를 객관화해서 3인칭 타자의 자리로 몰아가는 방식으로는 이 비극을 우리들 안으로 끌어들일 수가 없다. 나는 죽음의 숫자를 합산해서 사태의 규모와 중요성을 획정하는 계량적 합리주의에 반대한다. 나는 모든 죽음에 개별적 고통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값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과 죽음은 추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

그래서 한 개인의 횡사는 세계 전체의 무너짐과 맞먹는 것이고, 더구나 그 죽음이 국가의 폭력이나 국가의 의무 불이행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이 세계는 견딜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인데,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 이 개별적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어떤 아름다운 말도 힐링이 되지 못하고 경제로 겁을 주어도 탈상은 되지 않는다.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 거기에 이념의 날라리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사실 4·16 참사 이후에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정부의 부양책은 힘을 쓰지 못했다. 모두들 슬프고 분하면 경기는 침체되는 것이니까. 슬픔과 분노가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는 말도 결국은 동어반복이다. 어찌 헌 옷을 벗듯이, 헌신짝을 벗어버리듯이 마음의 일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인가. 돈 많고 권세 높은 자들이 큰 죄를 저질러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형량을 줄여서 선고하고, 형기 중에도 특별사면, 일반사면, 집행정지, 가석방, 병보석으로 풀어주는 무법천지를 나는 자유당 때부터 보아왔고 자유당은 지금도 특별사면 중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무너졌고 경제는 합리적이고 규범적인 토대를 상실했다.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장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어도 법이 밥을 먹여줄 리는 없고, 밥은 각자 알아서 벌어먹어야 하는 것인데, 법치주의를 포기해야만 밥을 벌어먹기가 수월해진다면 이 가엾은 중생들의 밥은 얼마나 굴욕적인 것인가?


 우리는 세월호를 도려내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세월호를 내버리고 가면 우리는 또 같은 자리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 우리는 새로 생기는 위원회를 앞세워서, 세월호를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 위원회가 동어반복으로 사태를 설명하지 말고 그 배후의 일상화된 모든 악과 비리, 무능과 무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공생관계를 밝히는 거대한 사실적 벽화를 그려주기 바란다. 그리고 유민이의 젖은 6만 원의 꿈에 보답해주기 바란다. 나는 사실 안에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사실의 힘에 의해 슬픔과 분노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동력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바르고 착한 마음을 가진 많은 유능한 인사들이 이 위원회에 참여해주기를 나는 바란다. 삶을 쇄신하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형태로 추구해야 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란 그런 게 아닐까.

세월호의 진실은 보이지 않지만,

세월호를 만들어낸 욕망은 실체화되었다.

많은 분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밝혀져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보이지 않는 것들과 싸워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옆에서, 우리를 지지하는 많은 친구와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얼마가 걸리든 보이는 것을 해나가다 보면,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그러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민웅의 인문정신 2 / 인간을 위한 정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