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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Jun 08. 2023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공항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

정신과에서 첫 진료를 마치고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어서 나의 상태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고 살았을 때는 안 보이는 것들이 내가 처한 상황이 바뀌니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공황을 경험한 사람은 너무도 많았다. 그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들(신체적인 문제라고 보고), 일을 쉬고 회복한 사람들, 몸을 돌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 모르고 지나쳐왔던 정신과 의원은 왜 이렇게 많은지, 예약하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지..


나에게 찾아온 이 불안이 빠르고 경쟁적인 사회에서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공나물시루가 되어버리는 정말 피하고 싶고 답답한 일들을 다들 모두 묵묵히 견디고 있는 것이구나.. 무심하게 휴대폰 속 혹은 이어폰 속에 집중하여 현실을 잊으려 노력하는구나 하는 생각들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에서 조금씩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던 몇몇 분들 그리고 회사 대표님에게 나의 이런 상태를 알리고 최대한 양해를 구하려고 했다. 그래야 내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고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요일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기에 주말을 푹 쉬고 나면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하고 좋게 생각해보려고 했다.


 주말은 나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정신적으로는 계속 힘들었다. 끊임없이 불안이 나의 정신을 채우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가족들과 함께 있으려고 했다.

 사실 평소에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나는 일종의 강박으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일에 대한 고민을 하거나 일을 하기도 했다. 항상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기에 주말에도 형식적인 집안일을 한 후에는 가만히 쉬기보다는 뭔가를 계속했다.

 불안이 가득 차고 자신감이 떨어져서 뭔가를 할 수 없기에 평소에 잘 못했던 가족과 교감 그리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있으려 노력했다. 점점 고집이 생기는 5살 아이의 짜증과 생떼가 내가 힘이 없으니 이 아이도 지금 감정에 휘둘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바라보게 되고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평소라면 나도 같이 짜증을 냈을 텐데...

 아이들의 무의미한 놀이(절대 무의미 하지 않지만 어른의 시각에서 보는)도 형식적으로 대해줬다면 조금 더 마음으로 놀아주려고 했다. 만약에 내 머릿속이 내 자아, 내 할 일로 가득 차 있으면 못했을 것 같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불안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서 가족과 더 연결되고 싶었다. 혼자 있게 되면 또 불안에 사로잡힐까 봐..


 주말은 잘 보냈다. 하지만 다음날 일할 걱정 때문인지 일요일 밤에 한숨도 제대로 자질 못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음에도 주말을 잘 보냈으니 더 나아졌겠지 하는 생각에 출근을 했다. 하지만 막상 사무실에 도착하고 자리에 앉으니 초조함과 불안이 가득 찼다. 더는 견디기 힘들어서 안 되겠다 생각하고 휴가를 다시 쓰고 퇴근을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일단 잘 자고 잘 먹어야겠다. 일은 일단 모르겠다. 나만 생각하자.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무작정 주변에 있는 광교산을 올랐다. 산정상에 어떻게든 올라서 내 몸을 혹사시키고 오면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잘 수 있겠지 하고 생수 한 병, 사과 반쪽을 가지고 등산을 했다.

 햇살이 밝았고 나무의 푸르름으로 산속의 공기는 너무도 좋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등산 후 한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육체적 힘듬으로 산의 풍경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오로지 정상으로 향하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왜 목적을 쫓으면 주변이 보이지 않게 되는 걸까..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런 생각은 사치였다. 일단 산정상을 찍고 오는 것만 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대략 12km, 582m의 광교산 정상에 오르자마자 다시 내려올 생각에 사로잡히고 경치를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기진맥진하게 하산하여 집 근처 된장찌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허기 인해 밥이 들어갔다. 비록 평소에 가뿐히 먹는 양을 다 먹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회사에 연락해서 이대로는 힘들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니 이번주는 재택근무를 해보라고 권유해 주셔서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날 밤은 그래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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