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tzMe Jan 10. 2016

량첸대령의 메모

어젯밤 <특종 량첸살인기>를 보고

지하 또는 1층. 

걸려 있는  입구를 누군가 카드로 열고 들어는 바로 그 때!

찰나를 노렸다가 잽싸게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탔든지, 혹은 엘리베이터를 타지는 않았더라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계단을 날아 올라 6층까지 왔는데, 마침 출입시에나 잠시 열리는 우리 집 현관문이 다든지!
그래. 

런 이유가 아니라, 침입 경로에 대한 다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예상이다.
 계단 중간 중간 설치된 창문 또는 외부에서 우리집으로 곧장 날아들어올 창문은, 굳게 봉쇄되어 있거나 혹 열렸더라해도 더  나위 없이 촘촘한 방충망 철창이 그 사이를 완벽히 보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레가 너무 싫다. (애호가들께 죄송)
그 중에서도 특히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귀뚜라미나
행동반경이 큰, 날개 린 벌레들이 싫다.
또 날개 달린 벌레 중에서도 벌이나 파리나 풍뎅이같이 소리까지 내며 위협하는 (모기 같은 하찮은 메마른 소리 말고, 풍성한 우퍼 달린 소리) 벌레가 싫다. (매미는 울어도 위협하진 않으니 패쓰)
차라리 바퀴벌레라면 나는 죽일 수 있다. (애호가께 죄송)
나를 무는 모  물론 끔찍하지만, 오늘의 테러범만큼은 아니다.
 

혐오스러운,

꺼멓고 빵빵한, 이 더러운 파리!


 빠아아아앙.

귀에 거슬리는 매우 큰 소리.

그러나 위협적인 시끄러움에 비해, 그닥 속도는 붙지 않는 미련한 은 곡선.

어딘가 툭툭 부딪히는 그 둔탁하고 무식하기 그지 없는 소리가 내 귀에 포착되었다.
그것도

바로

나의

방에서!

상황에 직면하자 호흡을 가다듬으며 침착했다.

내 방의 모든 창문이 닫혀있는지부터 먼저 살폈다.

틈없이 봉쇄된 내 방을 확인한 후, 우선은 적이 도망 갈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민첩하게 방문을 닫고 나왔다.

방 안에서는 둥그렇고 둔하며 무식한 소리를 내는 그것이 자유의 통로를 찾기 위해 온갖 원을 그리며, 여기저기 내려앉곤 하겠지.

참았던 숨을 훅 내쉬며 나는 집안 곳곳 무색무취무향의 킬러를 찾아 헤맸으나, 아, 나 스스로를 침착하다 여긴 것이 실수였던가 보다. 킬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 호흡이 흐름을 잃고, 두서없는 흥분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쉽사리 킬러가 눈에 띄지 않자, 난 온 곳곳의 문을 다 열어 젖히며 집 안 불특정 다수에게 신경질을 뿜는다.

대체 누가 현관문을 열 때 파리를 들냐, 내 방에 파리가 들어사실이 납득 가능하 호들갑을 떨면서.

지난 봄, 어느 화분을 통해 들어온 개미를 죽이기 위해 대 활약을 했던 킬러의 자취가 문득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렇지. 그때 그 개미 우범지역이었던 베란다 화단 가자! 아, 다.

다행히 킬러, 이제는 개미도 떠나고 없는 그 구역을 아직도 늠름히 지키고 있었다.

마치 등대처럼 연하게 또 듬직하게 그곳에 있었다.

선한 빛 한 줄기를 힘차게 뿜어낼 작디 작은 구멍으로 오직 한 곳만 바라보며 의젓하게!


나는 절반쯤 영향력이 남은 그 킬러와 동행하며 다시금 내 방문 앞으로 당도했다.


흐읍.

후우우우우우우.


심호흡 했다.

그리고 침을 꿀꺽, 몇 번이나 삼켰다.

이윽고 킬러를 내 몸 앞에 수직으로 앞세우고 꼭 쥐었다.

서서히 남은 한 손까지 이제 문고리를 향해 뻗다.
내가 들어가는 바로 그 찰나에!

혹시 때마침 적이 문 밖으로 나온다면!

잽싸게 쏠 만발의 전투 태세를 나도 춘 것이다!


타칵.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마자 잽싸게 들어가 문을 봉쇄했다!

 

잠시, 긴장 속에서 몇 초간 정적이 른다.

리고 곧.

들린다.
빠아아아앙.


여전히 무식하고 둔탁한,

 멍청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점점 적의 위치가 선명해다.

이윽고 

바로 그 뚱뚱한

흉물스러운 형체가! 내 눈에 포착됐다!
더럽기 그지없는

움직이는 저 검은 동그라미!

 
나는 그 더러운 것을 향해, 이 실제상황이 오래 가지 않길 절실히 바라며, 온 에너지를 모아 킬러를 발사했다.

눈 앞이 뿌얘지도록!
검은 점의 동선을 따라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계속!

더, 더, 더! 계속!

 
이윽고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됐다.


이 더러운 것은
죽음을 느끼면, 유연하지 못한, 아주 두서없는 동선으로 어딘가 자꾸 툭툭 세게 부딪히는데
이 때가 가장 공포의 순간이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교훈을 되새기며
내가 행복을 되찾기 직전이기에 가장 공포의 순간을 맞는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시 후 있을 승리를 확신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허공에 마구 두서 없는 직선을 긋고 있는,  뚱뚱한 점이! 툭! 하고 부딪힐 불특정 사물이, 어쩌면 내 얼굴의 한 면적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 침착하자.

현명하게 판단하자.
이 쯤엔 문을 열고 어서 도피해야한다.
하지만 저것이 내 이불 속에 죽어서도 안되고, 아주 죽고 나면 위치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면밀히 관찰해야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난 두려움에 떨며 문을 열었는데, 잠시 방에서 뒷걸음질 치며 문을 여는 동안이 말 할 수없이 길게 느껴졌다.


휴.


역시 나는 운이 좋았다.
문을 열자마자 이 더러운 검은 점이 현관 로비로 직행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곧 로비 바닥에 등을 붙이고는 지지직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적군인 내가 유리하도록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오호라!

이 순간을 놓칠쏘냐!
난 내게 주어진 감격스런 골든 타임을 결코 놓치지 않고 잽싸게 달려들어 실로 두번 다신 없을 민첩한 몸놀림으로 킬러를 다시 난사했다.
끈질긴 이 더러운 적군은 아무리 분사해도 지지직 거리며 돌더니 이윽고 온 다리를 자신의 시야에 일점투시도가 되도록 모으더니 그 중 가장 위 오른발을 자신의 얼굴쪽으로 들어올렸다. 
마치 내게 인사하듯.

 
난 사명감을 띄고 그 따위 더러운 인사는 받지않겠다며 다시 어마어마한 량을 난사했다.
 

그 때 떠올랐다.
이 쾌감.

이 쾌감.......
이 쾌감은......!


아! 이럴 수가.
나 아주 잔인하구나.

그러니까 어제,
영화 <종:량첸살인기>를 보았다.
살인범의 첫번째 메모로, 기사화 되었던  그 문구가 떠올랐다.

그것은 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르며 느낀 점을 적은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메모였는데.

 
온몸을 비틀며 굳어가는 1cm가량의 파리 위에서
2/3정도를 다 써버린 킬러를 들고 내려다 보는 나.

는 정녕 그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진실로 진실로 나는 아주 잔인했다.
쾌감을
느끼다니.


이토록 햇살이 노오란 사선을 그리며 들어오는.
아름다운 오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현재.
내 방은
아주, 몹시
미끌미끌하다.

오른쪽 아래 호흡이 멈춰버린 더러운 적군이 점이 되어 찍혀있다.

author,SuJi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