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노렸다가 잽싸게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탔든지, 혹은 엘리베이터를 타지는 않았더라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계단을 날아 올라 6층까지 왔는데, 때마침 출입시에나 잠시 열리는 우리집 현관문이 딱 열렸다든지! 그래.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침입경로에 대한 다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예상이다. 계단 중간 중간 설치된 창문 또는 외부에서 우리집으로 곧장 날아들어올 창문은, 굳게 봉쇄되어있거나 혹 열렸더라해도 더할나위 없이 촘촘한 방충망철창이 그 사이를 완벽히 보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레가 너무 싫다. (애호가들께 죄송) 그 중에서도 특히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귀뚜라미나 행동반경이 큰, 날개 달린 벌레들이 싫다. 또 날개 달린 벌레 중에서도 벌이나 파리나 풍뎅이같이 소리까지 내며 위협하는 (모기 같은 하찮은 메마른 소리 말고, 풍성한 우퍼 달린 소리) 벌레가 싫다. (매미는 울어도 위협하진 않으니 패쓰) 차라리 바퀴벌레라면 나는 죽일 수 있다.(애호가께 죄송) 나를 무는 모기도 물론 끔찍하지만, 오늘의 테러범만큼은 아니다.
혐오스러운,
꺼멓고 빵빵한, 이 더러운 파리!
빠아아아앙.
귀에 거슬리는 매우 큰 소리.
그러나 위협적인 시끄러움에 비해, 그닥 속도는 붙지 않는 미련한 검은 곡선.
어딘가 툭툭 부딪히는 그 둔탁하고 무식하기 그지 없는 소리가 내 귀에 포착되었다. 그것도
바로
나의
방에서!
상황에 직면하자 난 호흡을 가다듬으며 침착했다.
내 방의 모든 창문이 닫혀있는지부터 먼저 살폈다.
빈틈없이 봉쇄된 내 방을 확인한 후, 우선은 적이 도망 갈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민첩하게 방문을 닫고 나왔다.
방 안에서는 둥그렇고 둔하며 무식한 소리를 내는 그것이 자유의 통로를 찾기 위해 온갖 원을 그리며, 여기저기 내려앉곤 하겠지.
참았던 숨을 훅 내쉬며 나는 집안 곳곳 무색무취무향의 킬러를 찾아 헤맸으나, 아, 나 스스로를 침착하다 여긴 것이 실수였던가 보다. 킬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 호흡이 흐름을 잃고, 두서없는 흥분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쉽사리 킬러가 눈에 띄지 않자, 난 온 곳곳의 문을 다 열어 젖히며집 안 불특정 다수에게 신경질을 뿜는다.
대체 누가 현관문을 열 때 파리를 들였냐, 내 방에 파리가 들어온 사실이 납득 가능하냐호들갑을 떨면서.
지난 봄, 어느 화분을 통해 들어온 개미를 죽이기 위해 대 활약을 했던 킬러의 자취가 문득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렇지. 그때 그 개미 우범지역이었던 베란다 화단에 가자!아, 있다.
다행히 킬러가,이제는 개미도 떠나고 없는 그 구역을 아직도 늠름히 지키고 있었다.
마치 등대처럼의연하게 또 듬직하게 그곳에 곧게 서있었다.
선한 빛 한 줄기를 힘차게 뿜어낼 작디 작은 구멍으로 오직 한 곳만 바라보며 의젓하게!
나는 절반쯤 영향력이 남은 그 킬러와 동행하며 다시금 내 방문 앞으로 당도했다.
흐읍.
후우우우우우우.
심호흡 했다.
그리고 침을 꿀꺽, 몇 번이나 삼켰다.
이윽고 킬러를 내 몸 앞에 수직으로 앞세우고 꼭 쥐었다.
서서히 남은 한 손까지 이제문고리를 향해 뻗는다. 내가 들어가는 바로 그 찰나에!
혹시 때마침 적이 문 밖으로 나온다면!
잽싸게 쏠 만발의 전투 태세를 나도 갖춘 것이다!
타칵.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열자마자 잽싸게 샤샥 들어가 문을 봉쇄했다!
잠시, 긴장 속에서 몇 초간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곧.
들린다. 빠아아아앙.
여전히 무식하고 둔탁한,
그 멍청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점점 적의 위치가 선명해진다.
이윽고
바로 그 뚱뚱한
흉물스러운 형체가! 내 눈에 포착됐다! 더럽기 그지없는
움직이는 저 검은 동그라미!
나는 그 더러운 것을 향해, 이 실제상황이 오래 가지 않길 절실히 바라며, 온 에너지를 모아 킬러를 발사했다.
눈 앞이 뿌얘지도록! 검은 점의 동선을 따라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계속!
더, 더, 더! 계속!
이윽고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됐다.
이 더러운 것은 죽음을 느끼면, 유연하지 못한, 아주 두서없는 동선으로 어딘가 자꾸 툭툭 세게 부딪히는데 이 때가 가장 공포의 순간이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교훈을 되새기며 내가 행복을 되찾기 직전이기에 가장 공포의 순간을 맞는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시 후 있을 승리를 확신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허공에 마구 두서 없는 직선을 긋고 있는,저 뚱뚱한 점이! 툭! 하고 부딪힐 불특정 사물이, 어쩌면 내 얼굴의 한 면적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 침착하자.
현명하게 판단하자. 이 쯤엔 문을 열고 어서 도피해야한다. 하지만 저것이 내 이불 속에 죽어서도 안되고, 아주 죽고 나면 위치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안전거리를 유지하고 면밀히 관찰해야한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난 두려움에 떨며 문을 열었는데, 잠시 방에서 뒷걸음질 치며 문을 여는 그 동안이 말 할 수없이 길게 느껴졌다.
휴.
역시 나는 운이 좋았다. 문을 열자마자 이 더러운 검은 점이 현관 로비로 직행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곧 로비 바닥에 등을 붙이고는 지지직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적군인 내가 유리하도록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오호라!
이 순간을 놓칠쏘냐! 난 내게 주어진 감격스런 골든타임을 결코 놓치지 않고 잽싸게 달려들어 실로 두번 다신 없을 민첩한 몸놀림으로 킬러를 다시 난사했다. 끈질긴 이 더러운 적군은 아무리 분사해도 지지직 거리며 돌더니 이윽고 온 다리를 자신의 시야에 일점투시도가 되도록 모으더니 그 중 가장 위 오른발을 자신의 얼굴쪽으로 들어올렸다. 마치 내게 인사하듯.
난 사명감을 띄고 그 따위 더러운 인사는 받지않겠다며 다시 어마어마한 량을 난사했다.
그 때 떠올랐다. 이 쾌감.
이 쾌감은....... 이 쾌감은......!
아! 이럴 수가. 나 아주 잔인하구나.
그러니까 어제, 영화 <특종:량첸살인기>를 보았다. 살인범의 첫번째 메모로, 기사화 되었던 그 문구가 떠올랐다.
그것은 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르며 느낀 점을 적은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메모였는데.
온몸을 비틀며 굳어가는 1cm가량의 파리 위에서 2/3정도를 다 써버린 킬러를 들고 내려다 보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