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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zMe Jan 25. 2016

모두 웃고 있습니까?

<모두 퀼트 하고 있습니까?>


어릴적이었어.
초등학교 2학년 때 였는데,
더 어릴 때부터도 난 이야기 하는 게 좋았거든.

그게 꼭 얘기가 재밌었단 결론과 연관 짓긴 힘들지만,

집중 해주는 또래가 많았다는 건

또래들에겐 먹혔단 말은 되는 거니까,

아주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았을까.


어느 날이었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사촌동생 혜진이에게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어.


혜진아, 있잖아.
어떤 사람이 살았어.
그 사람은 힘이 셌어.
꿈이 로보트가 되는 거였는데.
알고 보니 바로 자기 얼굴에 있는 어떤 점 하나를 누르면
로보트처럼 강해지는 거야, 막 변신도 하고.
그런데 그러면 너무 강해져서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이 막 이렇게 휘어지고 밥그릇은 깨지고, 깨지면 먹을 수 없잖아 막 밥 속에 깨진 밥그릇이 섞여 있잖아. 음... 그래서, 있잖아, 음, 아, 맞아맞아, 있잖아. 그 사람이 원래처럼 사람으로 돌아오려면 있잖아...

사실은,

나도 전혀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즉석에서 계속 계속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딱히 말은 안되지만 재미 없지는 않으려고, 자꾸만 뭔가를 생각해내서 엮고 또 엮고 또 엮고.

마치 퀼트 처럼.



오늘

노련하고 과감한 퀼트쟁이를 만났어

바로 이 사람이, 나의 초등학교2학년 시절을 떠올리게 해줬지.
기타노 다케시야.

기타노 다케시와는 오늘 초면이었어.

보자마자 대뜸
"오죠오상! 모두 하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는데,

그토록 깊이 있는 질문을 해주니

으쓱해서 피식 웃음이 나더군.

그가 내게 한 질문인 즉슨 이랬지.



오죠오상. 모두, 바쁜 현실이지만! 가끔 공상과 망상을 오가는 퀼트를 하며, 결코 웃음을 뺏기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까?


라고.


그래서 아주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지.


"그럼요그럼요그럼요그, 저는 거의 현실이 없다시피 공상퀼트를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어때요? 저도 웃는 거 몹시 좋아하는데, 겨드랑이 쇼쇼쇼! 합격! 처럼요"


끝없는 이름들이 크레딧행렬을 마친 뒤,
헐렁한 메뚜기가 등장하며, 영화는 끝났어.
퇴장하며, 아니고 등장하며 끝났어.

처량하기도 하지.


여분의 시간동안 화장실도 가지 않고,
바스락 거리며 안성탕면 하나를 꺼내어 왔지.

몹시 반듯하게 또, 경쾌하게 부수어 접시에 담고,
접시 한 쪽 귀퉁이엔 스프를 한 큰술 소복이 쌓았어.
막, 두번째 타임이 시작할 참 이었거든.



내 손엔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한
부수어둔 안성탕면이 들려 있었는데,
나를 기다리는 건,
빨강과 초록 알약을 들고 있는 모피어스의 손이었어.
난 개인적으로 빨강색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극복의 트레이닝을 시작했지, 흥겹게.




그래, 이제 완벽해졌어.

모자를 눌러쓰고 나섰어.
아랫배에 힘을 주고 호흡을 서서히 내뱉으며

왼 손을 들어올려보았지.


이 추위를,
이 바람을,

이 시간을, 세월을!
내 손바닥 하나로 다 막을 수 있을 것만 같더군.


알아.
점점 나이는 더 들어가고
하나씩 책임 져야 할 일들은 더 늘어날거라는 거.
그래서, 언제까지 이런 공상에 빠져 웃을 수 있을지, 실은 나도 궁금하긴 해.

아직

더 늙어보지는 못했으니까 말야.


하지만

만약,
내 뇌에서,

공상이 사라진다면.

그건,

진정 내게

재앙일거야.


내가 존재해야 하는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이,
차디차고 흐린, 무뚝뚝하고 컴컴한

두꺼운 철문안에 철컹 갇혀버리게 되는
끔찍한 그런 재앙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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