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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zMe Jul 22. 2016

달 때문에

용기

여름 밤.
카페 음악을 뒤로 하고 걸어 나오는데,
 옆으로 길게 줄지은 가로수 사이로

달이 보이대?


가로등이 많아서

제대로 달의 밝기를 느낄 수가 없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그자리에 서서,

가로등 불평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문득, 어둠 속에 달만 덩그라니 떠 있는 걸 여태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야.
그래도 살아온 시간이 좀 된 것 같은데 말야.

 
이럴수가, 라고 중얼거리면서 달을 찍으려 했는데,

가로등 불빛이 방해를 아주 해.
난 키가 작으니까 가로등을 프레임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 각도가 좀 더 그렇잖아?
   
그래.
어둠속의 달빛.
인공의 빛은 하나도 없고,

오직 자연만 있는 곳에서의 달.


딱히 누구나 꼭 봐야하는 건 아니겠지.
실제로 그런 곳에 덩그라니 서면 무서울 지도 모르지.
그래도 깜깜한 어둠 속!
오직 달 빛과 별 빛만을 볼 수 있다면,

사는 동안 그런 시골에 한 번 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가서 직접 느껴보고 싶어,

어둠 속 달은 얼마나 밝은지를.


그러려면 먼저,

자연만 있는 어두움을 찾아 가야 하겠지?
그 곳은, 내 상상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

좀 더 무서울 수도 있겠지?
시골이면 벌레도 많겠지?

어두움을 찾다보면, 어디 보자.

가다가 별안간 거미줄이 얼굴에 묻을 지도 모르고?
풀어 놓은 두려운 큰 개가 있을지도 모르고?
들고양이도?

아니면 먹이를 찾아 내려온 멧돼지를 마주할지도?

상상은 끝도 한도 없으니, 차라리 이 참에 귀신도 나오고?

 
휴, 난 아마도 내 특성상 그런 곳에 절대 혼자 갈 리는 없겠지.

당연히 무리 지어 가겠지?
같이 간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겁쟁이는 아니니,

게중 몇몇은 어둠의 공포에 질려있는 나를,

제대로 골탕 먹이려는 친구도 있겠지?

암. 있고 말고.

그러니 나는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그 때 만큼은 누구도 믿어선 안되겠지?
심지어 다들 나를 두고 도망가기로 미리 짰을지도 모르니까! 틀림없어!


차를 타고 가면 된다고?
알아.

하지만 달을 보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  무서운 걸?

깊은 밤, 다리에 뭐가 닿일 지 모르고 차에서 내린다고?

  
누군가 한명은 내게 말 할 지도 모르지.

무서우면, 차 안에 같이 있어줄테니 차에서 달을 보라고.

하지만 그런 자상한 말엔 또 이런 반박들을 내가 할걸?

 

차창 유리에 한 번 걸러지는 달 빛 볼 바에 여기 왜 온 거냐.

게다가 이 차는 선팅이 짙니 옅니.

이렇게 유리 통해 보는 건, 처음 여기 오려 했던 취지에 안 맞지 않냐.


상대들은 당황할 거야.

대체 뭘 어쩌란 거야? 라고 생각하며 말야.

그렇게 나는 밉상 궁상을 떨고 야단법석이겠지?

답이 안 나오도록?


그러니,

정작 갈 기회가 진짜 생긴다한들,
이런 핑계, 저런 합리화 다 시키면서

나는 실천에 옮기지 않겠지?
정작 기회가 닥치면

달 보고싶다던 생각을 부인하며, 캄캄한 무서움으로부터 도망가려고만 하겠지?

머릿 속으로 만들어내는 숱한 변명을 하면서.



보러 어둠에 가자고?

거기 아마 모기 많을 걸?
지금? 지금은 나 졸린데?

음, 내가 요새 두통이 좀 있고.
아참! 넌 내가 심장이 안 좋다는 거 잊었니.
그리고 나 원래 겁 많은 거 몰라? 까먹은 거야? 가자마자 무서워서 죽어 버리면 네가 내 인생 보상할 거야?!

넌 내가 달이나 보러가는 한가한 사람으로 보여?

쌓인 일 안 보여? 일?!!


그럴거야, 난 아마도.
그렇게 변명만 이어가다가

결국 어둠 속 달이라는 것을 볼 수 없을거야.

  

  
아참,
아니지, 아니지.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데.
꼭 내가 직접 가서 봐야해?
손가락만 까딱하면 다 되는 세상인데
뭐하러 무섭게 어두운 곳으로 가?
쉽게 손 까딱해서 어둠과 달과 별을 볼 수는 없을까?

폰으로?

모니터로?!!

홀로그램으로!
    
아.

아니구나.

그렇지 않구나.

진짜는
진짜로 보는 방법 밖엔 없잖아.
진짜는,
진짜로 보는 방법 밖에.
    

그래, 인정.
모니터로 보면 그게 어디 달빛이야?
모니터 빛이지.
그건 가짜야, 가짜.


그러고 보니
가짜는 생각보다 많이 널려 있네?

진짜인 것 처럼 둔갑을 하고?


어둠은 진짜인데

가짜인 가로등이 진짜를 못 느끼게 하고 있잖아.

어둠이란 마치 없는 것 처럼.

 

우리 주변에 그런 가짜가 많구나.

실제로 인지하는 것이 어쩌면 가짜일지도 모르는 구나.


태초부터 있던 진짜 존재하는 어떤 것.

그 '진짜'를 보기 위해선

깊이 생각하고 정성을 무척이나 들여야 하는 세상이구나.

진짜에 다가가긴 어렵구나.

 
이미 성인이 된 이후,

그제야 지름길이라도 있나 싶어 쥐어 보는 수많은 책 속에.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고.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옳고,
사랑은 이거고 정의는 이거고,
대세는 이거고,

길은 여기 있고.

답이라고 나온 것들이 많기는 하나.


쉽게 켤 수 있으니 툭하면 켜 놓은 모니터 속 풍경들도,

여긴 푸르르고

여긴 빛나고

여긴 신비로운 안개가 있고.


휴.

됐다 그래.


그게 진짜가 아니란 건 누구나 알지.
책으로 나오는 건
모니터를 통해 나오는 건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건
뭐라고 하든 어쩔 수 없잖아?
일단 한 번은 걸러낸 것들임에는 틀림없는 걸.


검증으로 걸러내든,

교정교열을 하든,

원고 수정을 하든 아무튼.
걸러지지 않은 처음 그대로는 아니니까.
기획되고 제작되어 최종적으로 수정된 건 사실이니까.

 
하긴 뭐.

이런 것으로 진짜와 가짜를 찾는 자체가 말이 안되는구나.


그렇다면.

진짜로 진짜인 건  뭐고,

진짜로 가짜인 건 뭐지. 

또 생각 해볼까?
아, 귀찮은데.

좋아.

딱 하나만!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가장 처음.
그러니까 태초.

태초에 있던 것.
자연.
사람의 힘으로 도무지 어찌 할 수 없는 것.
그것.

그게 진짜지.

바로 그런 게 진짜지.


진짜로 진짜인 그 것.

그 것을 보기 위해서는
진짜.
그냥 진짜 다가가는 거 말고는 없어.
진짜.
내가 직접.
실제로.


휴우.

어렵겠지?
어렵지.
나 처럼 겁 많은 사람에겐 더 어렵지.


“진짜를 만나는 것.”
  


허례허식에 가득 찬 사람은 많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럴싸한 잰틀함 속에서
그럴 듯한 포장안에서
내 인생보다
세상 속 흐름을 사는 사람들은 많지.

그러니까,

진짜 사람.

진짜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내 용기가 필요하겠지?


진짜를

진짜로 찾기 위해선

용기가,
내게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용기가!
용기가 필요한 거야.
용기.......

  


그래.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장 우선적으로 용기 내야하는 건 뭐지?

가만, 우선적이라고? 그 우선은 또 무엇으로 가려낼 수 있지?

용기 내야할 것이 이토록 많은데?
당장 내 앞에 닥친 작품에 조차 용기를 내야하니까.

근데,
뭐지?
뭔가 좀 이상하지않아?
대체 나, 지금 여기 서서 뭐하는거지?
아, 뭐야, 길 가운데서.

정말, 휴.
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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