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님. 영화 제목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엔 살인자 인생을 만나겠네요? 썩, 내키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살인이라는 단어만 본다면, 저도 딱히 나누고픈 인생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살인자가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나, 하는 점에 대해 예방 차원에서라도 알아 두어야 할 작품이에요. 어떤 예방이냐, 바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이야기죠. 비정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자는 의미인데, 그럼 제게 질문하시겠죠? '아니, 무비님. 비정상으로부터우리를 보호한다니요. 그럼 비정상이란 무조건 경계해야 할대상이라는 말입니까?'라고 말이에요. 그리고 대화가 깊어지면 논란의 여지가 더 많겠죠.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자는 겁니다.
오. 재밌습니다. 계속 이어가 주시죠.
어느 정도 정상적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나쁜 마음먹고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것에 대해 '대체 왜 그런 거야!' 원인을 따지고 죄를 묻는 게 당연하죠. 그런데요, 정상적이지 못한, 즉 비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살인을 무작위로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살인이라는 것조차 모른다면, 그 비정상적인 사람도 사회적 약자로 분류하여 우리가 보호해 줘야 하는 걸까요? 보호하던 사람마저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요?
굉장히 어려운 문제네요. 가끔씩 공포를 느끼면면역력이 높아진다고 하던데, 방금 묘한 공포가 몸에 퍼지면서 서늘하네요.
공포를 느낄 때 혈관이 수축되고, 혈관이 수축되면 피가 일시적으로 공급이 잘 안 되어서, 일시적으로 서늘함을 느낀다죠. 실제로 체온도 조금 내려간다는 데요, 이 공포라는 게 잔혹한 범죄 같은 현실에서 듣고 접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영적인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것도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소개할 작품은 아주 묘하고 특별한 공포가 등장합니다.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일반적이지 못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공포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혹시 이 영화가 원작이 있나요? 같은 제목의 소설이 있지 않나요?
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같은 제목 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입니다. 소설로 읽어도 굉장히 몰입감 넘치는데요, 영화로 보셔도 평생 기억에 남으실 겁니다. 18세기 유럽이 배경이죠. 파리인데요. 거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에서 점점 어느 생선 가게로 공간적 배경이 좁혀집니다.
영화<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스틸컷_NAVER
악취가 진동하는 생선가게에서 한 여인이 생선을 팔다 말고 천막 뒤로 가더니 혼자 아기를 낳죠. 생선을 자르던 칼을 들어 탯줄을 끊더니 그대로 생선 내장 더미 위에 아기를 버리곤 앞으로 나와 다시 생선을 팝니다.
시작부터 너무 강렬한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정말로 아기를 그렇게 버린 건가요? 자신의 아긴데?
이 아기가 다섯째 아기예요. 네 번째까진 그런 식으로 밀쳐두면 죽었기 때문에 감쪽같이 버릴 수가 있었죠. 하지만 오늘 이 아기 장 바티스트는 살아납니다.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행인들이 천막 안에 버려진 아기를 발견하죠. 허겁지겁 도망가던 엄마는 결국 붙잡히고 사형을 당합니다.
영화<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스틸컷_NAVER
너무 강렬한 이야기가 이어지네요.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이 아기는 태어나서 처음 울었던 그 울음소리 때문에 엄마를 사형장에 보낸 형국이네요.
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사형장에 보내더니, 이후로도 장 바티스트와 잠시라도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사고든 실수든 사망하게 됩니다. 반면 주인공 장 바티스트는 수없이 죽을 고비를 만나지만 그때마다 어떻게든 위기를 넘기게 되죠. 다섯 살 때까지 말은 못 했지만 냄새 맡는 능력은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죠.
그런 악취 속에서 태어났으니까, 냄새로 세상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을 테니 후각이 발달했겠네요.
그렇죠. 하지만 냄새 맡는 능력을 발휘 못 하다가 13세에 고아원에서 가죽 공장으로 팔려가는데, 16시간씩 노동하면서도 힘들기보단 더 큰 세상에서 더 많은 냄새 맡는 것에 행복해합니다. 그는 바람에 실려 오는 수십 킬로미터 밖의 냄새도 맡을 수 있었는데, 청년이 된 어느 날 처음 맡는 향기에 반해서 향기가 묻어오는 바람을 따라가요. 향기의 주인은 자두를 파는 미녀였는데, 그녀 등 뒤로 슬그머니 다가서서 숨을 들이마십니다.
무슨 짓이지? 여성이 너무 놀랐겠는데요. 낯선 남자가 불쑥 뒤에 와서 냄새를 맡는다니. 끔찍한데요?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죠. 하지만 장 바티스트의 눈빛을 보곤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아주 침착하게, '자두 사실래요?' 하며 자두를 내밀어요. 그러자 장 바티스트는 덥석 그녀의 팔을 잡아 자신의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죠. 결국 비명을 지르며 여자가 도망가는데요. 향기를 맡아버린 이상 이제 그녀가 어디 있든 찾아낼 수 있어요. 밤이 되자 바람에 묻어오는 향기를 따라 노숙하고 있던 그녀를 단박에 찾아냅니다. 이번에도 등 뒤로 가서 냄새를 맡는데, 음울한 음악이 깔리고 주인공의 호기심 찬 눈빛과 냄새 맡는 코가 클로즈업되면서 인상 깊은 공포의 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_NAVER
정말 섬뜩합니다. 소매치기나 강도도 아니고, 코로 다가와 냄새를 맡아 버리니,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서 더 당혹스럽습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죠. 마침 행인이 지나가자 장 바티스트는 얼른 그녀 입을 막아요. 행인이 지나간 뒤 보니, 그녀가 질식사해 있죠. 인생에서 처음으로 반했던 향기였기에, 주인공은 죽은 그녀의 체취라도 어떻게 저장할 수 없을까. 피부를 마구 쓸어 코에 가져다 대며 안타까워합니다. 그 순간 향기라는 것은 허공에 날아가는 것이지 영원히 저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절망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향수 발명가를 만나게 되는데요. 경쟁사와 같은 향을 만들어 내려고 연구 중이던 발명가 앞에 장 바티스트가 나타나 순식간에 그 향기를 만들어 주자, 향수 발명가는 장 바티스트를 키워주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더 많은 향수 제조법을 알기 위해 향수의 도시로 떠나게 되는데요. 그 도시에 장 바티스트가 온 이후로 미녀들의 나체 시신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그 도시 여인들은 대체 무슨 죄로 그런 악마에게 당해야 하는 거죠? 뭔가요. 장 바티스트는 전에 반했던 여인의 향기를 저장 못 했던 트라우마 때문에, 다른 미인들을 이용하는 건가요?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네. 그는 향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점점 온 세상을 사로잡는 향수를 만들고픈 야망을 키우죠. 그 향수를 위하여 미녀들의 피부를 이용합니다. 피부를 이용하기 위해선 그녀들을 살려둘 수가 없었던 거죠.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_NAVER
장 바티스트는 여러 명을 통해 고작 한 방울씩 얻어지는 향기를, 결국 한 병 가득 채우게 됩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도 지금까지 모든 베스트셀러 중 가장 장기간 베스트셀러여서 기네스북까지 올랐는데요. 소설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후각을 어떻게 시각적인 영화로 만들 것이냐, 논란도 많았으나, 영화 역시 상을 휩쓸었습니다.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스틸컷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바람에 묻어오는 향기가 사람을 어떻게 사로잡는지 잊히지 않는 그 장면 알려드리지 않을게요. 무서운 기대와 함께 정상이 아닌 비정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한 번 깊이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영상미까지 잔인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