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름밤의 기억
월요일이 다가오는 주말 저녁이다. 간만에 산책을 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 발등이 퉁퉁 부었다. 잘못해서 넘어지셨나. 절뚝거리며 다니셔.” 전화를 받으면서 작년과 증상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일이면 아빠가 좋아질 수도 있으니 걱정 마시고 푹 주무시라고 말씀드린다.
다음 날 새언니가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와서 한시름을 놓았다. 문제는 엄마이다. 엄마는 아빠를 돌보겠다고 하시며, 주간보호센터를 가지 않으신다. “아픈 아빠를 혼자 두고 어떻게 발걸음이 떨어지냐. 내가 얼음찜질도 해주고, 물도 떠다 주고, 화장실 갈 때 부축도 해주어야지.”
마음 같아서는 ‘엄마도 도움이 필요한 환자인데, 누가 누구를 돌봐. 제발 엄마부터 챙겨’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우리집은 주간보호센터를 가시지 않으면 식사도, 운동도, 활동도 어려운 치매 가족이다. 아빠를 향한 엄마의 마음이 사랑인지, 50년간 부부의 인연을 맺은 정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발을 디디는 것조차 힘든 아빠를 돌보기 위한 가족들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침과 저녁을 나누어서 아빠의 약과 식사를 챙길 사람을 정했다. 우선 5일간 약을 먹고 병원에 다녀오신 다음에 치료 경과를 지켜보기로 한다. 나는 화요일부터 부모님 댁에 방문했다. 편찮으신 몸으로 집에만 계시니 입맛이 없으실 것 같아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빠의 식사와 약을 챙겨드린다. 그 다음은 엄마이다. 이미 드셨다고,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는 엄마를 달래서 식사를 한다. 엄마 핸드폰에는 요양보호사님 통화 기록도 고스란히 남겨있다. 아빠를 돌보다가 엄마까지 편찮으시면 안 된다고, 요양보호사님이 매일 전화도 해주시는데 내일은 가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셋째 날부터 엄마는 주간보호센터에 가셨다. 물론 나의 역할보다는 손수 방문해주신 요양보호사님의 역할이 더 컸다. 어쩌다가 한 번씩 방문하여 잔소리만 늘어놓는 자식보다 긴 일상을 나누며 함께 생활하는 요양보호사님의 설득이 빛을 발했다. 치매 가족에게 그 분들은 자식도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시는 빛과도 같은 존재이다.
다행히 아빠도 병원에서 치료 경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조금은 마음을 놓고 집으로 돌아간다. 한낮의 뜨거웠던 열기가 조금은 식어 시원한 바람이 서로의 몸을 스친다. 남편과 손을 잡고 걸으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마지막까지 서로를 챙겨주는 50년차 부부를 떠올린다.
“오빠는 내가 나중에 병들고 아프면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돌봐야지.”
“오빠 몸도 힘들 텐데. 왜?”
“내 부인이니까.”
잠시 우리가 부부라는 생각을 잊었나 보다. “나도 그럴 거야”라고 2년차 부부는 조용히 속삭인다. 오늘따라 마주잡은 두 손이 참 따뜻했다. 오늘은 행복한 여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