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 줄불놀이, 전통소리 음악회
일교차가 커져 제법 두터운 겉옷까지 준비하고 학생들과 취재 같은 걸로 1박 하며 추억이 많았던
세계 문화유산 선비마을을 기대 속에 찾았다.
기억을 더듬을 겸 일행과 좀 떨어져 마을길을 도는 데 알 굵은 대추, 석류, 감나무들이 집집마다
축축 늘어진 몸매를 담장너머 구경시켜 준다.
"와! 이 동네 가을 맛집 맞네."
마음이 벌써 내년 가을에 와서 숙박할 좋은 한옥 하나쯤 봐 두고 싶어졌다.
길에 외국인 여행객이 30%를 차지할 만큼 하회마을은 이미 지구촌 유명 관광 명소인 것 같다.
원형이 잘 보존된 한옥과 초가로 이루어진 류씨 집성촌 마을이 옛 것을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눈에 띄어 1999년 이곳에서 그 유명한 생일상을 받은 후 영국인뿐 아니라 우리의 시각에도 제대로 조명된 마을...
내가 다녀간 것도 여왕 방문 바로 다음 해 여름이었는데 캄캄한 민박집 우물터에서 학생들과
서로 망을 봐주며 급한 샤워를 했고 꽤 무서운 재래식 용변을 봐야하던 깡시골이었다.
주인 어른이 솥뚜껑을 뒤집어 밤참으로 부추전을 부쳐 막걸리와 더불어 팔았는데 아이들은 더 크게
더 크게를 외치며 몇 번을 시켜 먹고 있었다. 지금쯤 학부모가 되어 있을....!
이제 마을 길들은 차가 다니도록 정비되어 있고 초가집 앞에 다양한 승용차가 서 있으니 좀 낯선 그림이긴 한데 사는 사람들은 또 편리해야 살겠지.
안동 길목으로 들어설 때 세계 탈춤 페스티벌 기간이기도 하여 축제 분위기를 띄우는
행사들이 많았다. 학생들이 동원되는 춤판은 늘 그렇듯 어찌나 활기차고 춤사위가 재밌는 지 보는 사람들을 다 웃게 만든다. 무형 문화재 전통 탈춤도 실내 공연장에서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이번 하회마을을 찾은 건 사실 밤에 강변에서 이루어지는 전통 선유 줄불놀이를 보기 위해서이다.
만송정 숲에서 건너편 부용대 산자락을 이어주는 여러 가닥의 로프를 따라 긴 짚불같은 것들이
칠흑 같은 밤 얼마나 아름답고 우아하게 강물 위로 떨어지는지 시끄러운 서구식 폭죽놀이와는 분위기가 완전 달랐다. 숯과 마른 쑥을 담은 수많은 봉지를 엮은 줄에 불을 당긴다.
불의 기운으로 액을 다스리고 행운을 빌어 가을 이맘 때면 뱃놀이와 함께 하던 선비들의 풍속이라는데
벌써 수백 년이나 되었단다.
저절로 보는 마음들이 차분해지던 사이사이 모래사장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큰 부름으로 강건너에 있는
부용대에서 불덩이를 떨어뜨리는 낙화타임이란 것도 있어 밤이 깊어 갈 수록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다.
입소문이 더 나면 이 가을 축제도 무공해 하회마을의 좋은 여건들과 더불어 엄청 붐비게 될 것이다.
이미 모래사장엔 다양한 음식트럭들이 들어서 요즘 핫한 먹거리들을 팔고 있고 커피를 찾는 긴줄은 아예 끊이지를 않았다.
헛제사밥만 떠올리고 왔던 나도 치킨꼬치에 커피같은 간식을 먹고 있었으니...
그런데 마음 한 켠은 이 상황이 왜 섭섭한지?
여행객들은 돗자리 같은 걸 준비하여 가족 단위로 놀며 저녁을 기다리거나 이맘 때면 볼 거리가 많으니
아예 민박을 하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도 밤이 깊어 올라갈 길을 걱정했지만 가져 간 옷들을
더 껴 입으며 가을을 제대로 느끼고 가는 여행이었다.
식전 행사였던 젊은 국악인들의 전통소리 음악회는 드문 기회여서 가을밤 운치있는 대금 소리는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