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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Oct 18. 2017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서 동료로

교실 문을 넘어서

늦은 밤, 다급한 연락이 왔다. 동료교사(이하 A)의 도움 요청이었다. 방금 학부모에게 민원이 들어왔는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상황을 악화시킨 것 같다고 했다. 상황을 들어보니 학부모들 사이의 다툼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았다. 혼란에 빠진 선생님께 어떻게 대처할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중요한 지점을 강조하였다. 당장 다시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수습해야 했기에 자세히 알려드리지는 못했다. 고작 16분의 통화가 끝이었다.


다음날, A가 찾아와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연락처를 아무리 뒤져봐도 마땅히 연락할 곳이 없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생각이 나서 친한 사이가 아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했어요. 짧은 통화였지만 복잡한 상황을 간략히 정리해주고 대처방법도 알려줘서 큰 도움이 됐어요. 정말 신기하게도 선생님이 말씀한 대로 학부모와의 통화가 진행되더라고요. 선생님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나에게는 비교적 익숙한 사건이었지만, A에게는 처음 겪는 난관이었다. 그런 A에게 경험자의 조언은 짧더라도 천금과도 같았을 것이다.



A는 작년에야 발령받아 경험이 많지 않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A만 그럴까?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저경력 교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아니,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같은 학교에 고경력의 선생님들이 많지만 쉽게 말을 걸기가 어렵다. 그래서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이 좋아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을 때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그 상처를 떠안은 채로 교직생활을 보낸다. 그런 경험을 겪은 이들에게 학교란 직장에 불과하다.


2학기가 되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저경력 선생님들의 교실을 찾아간 것이다. 그냥 놀러온 거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다독여주니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교사에게 학교는 외딴섬처럼 느껴지곤 한다. 분명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의지할 데가 없다.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은 없지만 다른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게 쉽지 않다. 자신의 교실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만들어낸 장벽일 뿐이다. 먼저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변한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서 소통할 수 있는 동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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