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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May 15. 2020

함께 산다는 것

[스물 아니고 마흔] 두 번째 이야기

몇 년 전에 느닷없이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짧고도 긴 외출, 1박 2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검고 작고 다리가 짧은 강아지는 2개월 된 닥스훈트였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기에, 나는 아연실색하였다. 무엇보다, 강아지라는 생명이 곁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함께 살고 있는 이가 상의 없이 혼자 작당을 하고 데려온 강아지였다. 강아지가 눈을 떴는데 눈망울이 얼굴의 반은 되는 듯이 컸다. 눈가에 덕지덕지 낀 눈곱과 거칠한 털, 피죽도 못 얻어먹은 듯 바싹 마른 몸이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꼬리는 또 어찌나 길고 팔랑이는 지... 한마디로 어좁이에 얼큰이 스타일이었달까.


그동안 우리 집엔 여러 생물이 살았었다. 햄스터나 거북이, 품종을 알 수 없는 일명 똥강아지도 있었다.


각기 다른 엄마에게서 왔다는 햄스터는 강한 놈이 약한 놈을 구석으로 자주 몰았다. 약한 놈이 우리를 탈출해서 집구석 어딘가에 숨어 지냈는데, 나는 그 작은 생물이 어딘지 징그럽고 비위생적이란 생각에 잡아서 우리에 넣고 홀가분해했었다. 어느 날, 약한 놈은 피투성이가 되어 물려 죽어 있었다. 약한 놈이 필사의 탈출을 한 것을, 나는 죽으라고 우리에 넣은 꼴이 되었다. 비참한 죽음을 내 눈으로 보고서야, 약한 놈이 밤마다 비명을 질러댔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무지함은 죄다.

거북이는 함께 지낸 지 수년이 되었는데, 어느 날 스스로 탈출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보긴 했는데 도통 찾을 길이 없이 6개월이 지났다. 이삿날을 앞두고 짐을 정리하던 어느 날, 수개월 만에 그 녀석을 발견했다. 물도 없이 먹이도 없이 수개월을 어찌 생존할 수 있었을까. 불로장생 같은 거북이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똥강아지는 오래전에 있었다. 훗날 어머니의 기억으로는, 길을 잃은 아이나 노인에게 집을 찾아주는 일이 잦았던 아버지에게 누군가 고마움을 표하려 준 선물이었을 것이라 했다. 대여섯 살 된 자식들이 좋아할 것이 생각나서, 아버지는 품에 강아지를 넣고 왔다. 엄마는 어디서 똥강아지를 주워왔느냐며 펄펄 뛰었는데, 평소에 집에 먼지 하나 없어야 했던 어머니의 성격상 출처불명의 강아지는 균 덩어리와 같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야 말았다. 어느 새벽 강아지는 마구 토를 하더니, 화장실 한편에 이상한 변을 보았단다. 자세히 보니, 눈에 뵈는 기생충이 변 덩어리와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것을 차마 치우지 못하고 바가지로 덮어놓은 채 밤새 그 앞을 지키고 있다가 아침에 아버지가 일어나자 당장 저 강아지를 버리지 않으면 이혼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그날로 우리 집에 강아지란 녀석은 다시 발 붙일 수 없었다.


그로부터 30여 년 후, 안방 한 곳에 담요를 켜켜이 깔고 쿨쿨 자고 있는 닥스훈트를 보게 된 것이다.


강아지는 아무 데나 쉬를 하고, 나무 의자를 갉았다. 짧고 검은 털은 이불과 베개, 심지어 겉옷 속옷 할 것 없이 콕콕 박혔다. 밤에는 배가 고픈 건지 놀고 싶은 건지 허공에 대고 헛짖음을 하는데 말릴 길이 없었다. 한동안은 참 괴로워했다. 내 집 내 인생도 정리되지 않는 이 삶에 웬 새 생명이란 말인가. 이 친구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아무리 뜯어말려봐야 별 소용이 없었다. 개는 개일 뿐이구나, 체념이 들 때 3~4개월쯤 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이란 것을 나가게 되었다.

목줄이 익숙지 않은 녀석은 먼저 앞서며 속도도 방향도 그야말로 멋대로였다. 어린 강아지였기에 끈을 잡아끌지는 않았다. 길가에는 먼저 지나간 개들의 체취가 곳곳에 묻어 있었고, 그 냄새를 맡느라 이 녀석은 열심이었다. 어찌나 열심히 맡아대는지, 그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러더니 개들이 먼저 일을 본 곳에 소변을, 그리고 대변을 따라 보았다.

사람이 아니라, 동종인 개들의 체취나 행동을 모방하며 강아지는 점차 강아지답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하루 한 번의 산책으로도, 집에서 변을 보는 일이 거의 사라졌고, 장난감을 가지고 10분 던지기 놀이를 해주자 헛짖음이나 신발 물어뜯기 등도 점차 사라졌다.

외출을 할 때는 일부러 크게 인사해줬다. 어쩐지 혼자 남을 것이 불쌍해서, "바이 바이" 손인사를 하고 간식을 주었다. 돌아와서도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작은 간식을 하나 더 주었다. 그러자 집에 사람이 없더라도 짖거나 문 앞에서 기다리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했다. 내가 할 행동에 미리 사인을 주고 그것이 불길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결과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자, 강아지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건 좀 손이 가는 일이다. 그가 나와 비슷하다고 느낄 때보다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될 때가 많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왜 그런 불편한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모를 때가 더 많다. 처음엔 화가 나서 뭔가 행동을 해야 하지 않나, 할 때도 있었다. 일종의 파양 같은 것들. 저 강아지가 좀 문제견이 아닐까, 진단을 받고도 싶었지만... 그냥 두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아지가 좋아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를테면 산책, 냄새 맡기, 강아지 친구 만나기... 그의 진지하고 열성적인 모습, 뭔가를 배워가고 느껴가는 모습이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일부러 내게 고통을 주려고 문제행동을 한 것은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처럼 이빨이 나는 시기에는 뭐든 긁어대고 싶을 뿐이다. 계절이 변하면 털이 빠지는 것은 각질이나 머리카락이 빠지는 사람처럼 세포 활동을 하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헛짖음이나 끙끙거림도 스트레스나 불안감 때문일 수 있다.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함께 경험을 공유해나가면,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생기고 그러면 그들도 훨씬 안정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점점 이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이 녀석은 내가 싫다고 표현하는 것들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는 것 같았다. 내가 일을 하거나 쉬고 싶을 때는 장난감을 가지고 오는 대신 담요 깔린 의자에 자신도 앉혀 달라고 조른다. 그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거나 널브러져 자면서, 내 일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일이 끝나고 나면, 벌떡 일어나서 이방에서 저 방으로 나를 쫓아다닌다. 기회를 틈타 옆에 앉아 있으려 한다. 그게 다다.




옆에 있고 싶어 하는 것.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게 전부다.

이 녀석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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