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투라 프로젝트 신지혜, 질문에 질문하다 #6
성수동의 동네 책방 '낫저스트북스'에 들러 마음의 휴식을 누리기 위해 서가를 둘러보다가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록색의 친환경 용지로 만들어진 표지에는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책을 구입하고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는데요, 저자가 들려주는 친환경 라이프에 빠져들수록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질문에 질문하다'를 매개로 삼아, 우연히 눈에 띄어 반짝이던 타인의 삶으로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 인터뷰어: 도모 자스민(제스) / 인터뷰이: 나투라 프로젝트 신지혜(지혜)
제스: 먼저 인터뷰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와 인사 부탁드려요
지혜: 안녕하세요. 저는 요가 수련을 하고 요가를 나누고 있는 신지혜입니다. 그리고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고, 2020년에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라는 친환경 에세이를 쓴 이후로 환경에 관련된 글을 기고하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제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지혜: 사람과 지구의 건강을 위한 장을 만드는 사람.
제스: 현재 운영하고 계신 나투라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세요.
지혜: 나투라 프로젝트를 소개할 때 원헬스(One Health) 커뮤니티라고 해요. ‘원헬스’라는 말이 사람 그리고 동물, 지구(생태계)의 건강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2000년대 초반에 세계동물보건기구가 제안한 단어예요. 그 단어를 접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의가 되더라고요.
처음엔 2018년도에 원헬스 중에서 사람을 위한 야외 명상, 요가로 시작했는데 그런 것들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우리가 지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 클린 산행이나 플로깅, 이런 것들로 확장되어 갔고 또 거기에서 동물의 건강을 위한 기부활동 같은 것으로 계속 순환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다양한 활동을 하는 커뮤니티예요.
제스: 이제 새롭게 시작하시는 일들도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계시더라고요.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지혜: 처음에는 사람, 건강, 요가, 명상처럼 건강한 액티비티를 했다면 그다음에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행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헬스 관점에서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여행에서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해 내는 ‘로컬 리트릿’으로 제주도에 2박 3일 캠프를 가서 그 안에서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어요. 어쨌든 여행이라는 게 하루하루 내 습관들을 보게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일들도 조금 찾아서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제스: 요가 수업은 일주일에 몇 번 정도 있으세요?
지혜: 날씨에 따라 진행되는 것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꾸준히 하려고 해요. 제가 발리에서나 (해외에서) 야외 요가를 접하면서 너무 좋은데 왜 우리나라에는 없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태국의 어떤 곳에서는 거기에 거주하고 있는 요가 강사들이 도네이션으로 계속하는데, 알림도 안 하고 그 시간에 사람들이 그냥 모이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이걸 자주 노출시켜야 문화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비가 안 오면 맨날 가자 하고 겨울에 아주 추울 때 빼고는 한 200번은 했던 것 같아요.
제스: 야외 활동이 재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한 2~3년 전까지는 소셜 커뮤니티들이 각광받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코로나 이후로 거의 운영이 어려웠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혹시 그런 영향은 없으셨는지, 그리고 이제 완화되고 있는 시기에서 좀 더 활동을 기대하는 부분이 있으실지도 궁금해요.
지혜: 네, 맞아요. 일단 사람들 모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잖아요. 저희도 야외 활동을 많이 하는데 대면으로 만나는 게 힘드니 자연스럽게 많이 줄어들었죠. 대신 이제 조금 다른 방식으로 했어요. 예전에는 모여서 뭔가를 했다면 온라인 환경 독서 모임으로 전환한다거나 비대면으로 같이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인증하는 식으로 전환하면서 유지해왔고.
야외 활동이 재개되면서 그동안 참았던 것들을 하는 것처럼 다시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앞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2년 동안 큰 규모의 행사들이 많이 작아졌거든요.
제스: 설명 주셨던 것처럼 처음에는 야외 요가부터 시작해서 야외 명상이나 모여 계신 분들에 의해서 친환경 마켓이나 비건 포틀럭, 클린 산행 등 굉장히 다양한 활동들을 하셨고 저도 보면서 관심이 가더라고요. 여러 사람들의 시너지로 확장되어 왔던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지혜: 워낙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의견들을 많이 내줘요. 모일 때마다 ‘우리가 이런 걸 한번 해보면 어때요? 저런 걸 해보면 어때요?’ 이렇게 제안을 해주시더라고요. 클린 산행도 제 머릿속에서 나온 건 아니었어요. 참여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점점 확장돼 갔던 것 같아요.
책에도 썼지만 기억에 남았던 건 2018년도쯤 했던 비건 포틀럭 파티예요. 지금은 비건이 트렌드이기도 한데, 그때만 해도 비주류였어요. 비건 파티라는 자체가 생소하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많이 오는 거예요. 각자 1~2인분의 비건 음식을 요가원에 가지고 와서 스태프들한테 주고 요가를 하러 들어갔다가 나오면, 뷔페처럼 세팅해 놓고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먹는 자리였는데요.
깜짝 놀란 게 온갖 비건 협회의 회장님들이 다 오신 거예요. 그걸 보면서 ‘왜지?’ 생각했었어요. 왜냐면 그렇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또 그분들이 음식을 너무 맛있게 해서 한 20인분씩 싸오는 거예요. 그때 느낀 게 뭔가를 얘기하고 설득하고 싶어 했고…
저는 단순히 비건은 '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듣다 보니까 ‘내가 모르는 것들이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건강 측면에서 행사를 기획했다가 그 계기로 이제 천천히 비건을 지향하게 됐었어요.
또 이런 것도 있었어요. 작년에 제주도로 로컬 리트릿을 갔는데, 제주에서 자라나는 로컬 푸드로 만든 비건 음식을 먹고 산림욕 하면서 쓰레기 줍고 오름에서 요가하는 활동을 했어요. 그때 사람들이 했던 말이 ‘제주도에 와서 바다를 보지 않고 흑돼지랑 갈치를 먹지 않고 이렇게 즐겁게 여행할 수 있다니’라고 했을 때 되게 뿌듯했고 인상 깊었어요. 그게 첫 시작이었는데 그 이후로 리트릿 프로그램은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보고 있어요.
제스: 그러면 주로 참여하시는 분들도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계기로 처음 경험해 보는 분들도 많으신 거죠?
지혜: 그렇죠. 요가를 해보고 싶어서 신청하는 사람들도 있고 다 같이 모여서 캠프를 가고 싶어서 오는 사람도 있는데, 기본 수칙으로 제로 웨이스트에 8명이서 1.2L짜리 유리병 한 군데에 쓰레기를 모으기를 해요. 그러니까 남들을 의식해서라도 쓰레기를 만들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걸 통해서 내가 일상에서 의식하지 않았지만 쓰레기였던 것들을 많이 발견하고 대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이야기하는데, 지금도 잘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제스: 인터뷰 시작 전에 가볍게 여쭤봤던 건데 평소에 인터뷰를 하시면 주로 제로 웨이스트라든지 비건에 대한 주제로 많이 하실까요?
지혜: 네. 비건 질문이 생각보다 되게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제로 웨이스트, 환경적인 삶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을 많이 여쭤보세요.
제스: 비건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물어보는 거예요?
지혜: ‘고기 아예 안 드세요?’ 물어보기도 하고 ‘(비건 음식점) 어디가 맛있어요?’ 특히 청소년들이 관심이 워낙 높다 보니까 비건이나 옷 입는 거, 패션 문제가 되게 많아요.
제스: 좋아하시는 친환경 브랜드, 이런 건가요?
지혜: 네. 연령대마다 관심사가 다르긴 해요. 주부님들은 세제 관련된 거, 청소년들은 먹는 거, 입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 저는 30대니까 언젠가 한번 연령대로 나눠서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다르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조금 더 공부를 하고 말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예전에 어느 남고에 강연을 갔는데요. 대부분 선생님들이 과제로 내주는 식인데 여기는 자발적으로 온 애들이었고 꽤 많이 왔어요. 한 150명 정도 와서 강의가 끝나고 어떤 학생이 와서 물어보는데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따지듯이 말하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이 문제가 참 불공평한 거잖아요. 잘 사는 나라들이 못 사는 나라에 많은 부담을 지게 하고, 또 우리 윗세대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누리다가 지금 우리는 못 쓰잖아요. 앞으로 우리 다음 세대들은 산소세도 내야 되고, 예를 들면 해외여행 한번 갈 때도 많은 걸 보면서 갈 텐데… 사실 제 세대까지만 해도 크게 환경 의식을 하지 않고 저렴하게도 갔다 왔는데, 이제 다음 세대들은 이렇게 환경 문제를 의식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되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일들을 ‘이제 너네가 미래니까 잘해야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라도) 이걸 해야겠구나 싶어요. 실제로 독서 모임 같은 데도 고등학생들이 들어오더라고요. 그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고요.
제스: 독서 모임에서 다뤘던 책은 어떤 책이었나요?
지혜: 되게 많아요. 1년 1개월 동안 지난달까지 하고 정리를 했거든요. 적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 많을 때는 다섯 번까지 모여서 책을 읽었어요. 처음 시작은 제로 웨이스트, 제가 쓴 책이나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 이런 거 읽다가 나중에는 GMO(유전자 변형 농수산물) 관련된 책들. 그리고 환경 문제에 깊게 들어가서 바다 생물, 화학물질 등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 어떻게 환경과 우리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많이 생각하게 되고.
꼭 환경 분야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이 책을 읽다가 이런 책이 생각났어요, 같이 봅시다’ 하기도 하고. 들어왔던 분들도 되게 다양해요. 학생들도 있었고 농부도 있었고 목장을 하는 집안의 가족 구성원, 그러니까 축산업의 모든 것들을 알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는 게 굉장히 의미 있었죠. 그만둔 이유는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는데 이제는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싶었어요.
제스: 출간하신 책을 정말 인상 깊게 읽어서 어떤 계기로 책을 만드셨는지 궁금해요.
지혜: 일단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요, 이전에도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책에다 쓴 것처럼 발리에 갔던 시점부터 제가 나라마다의 요가 문화를 알고 싶어서 전투적으로 여행을 다녔거든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때는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한 의식이 없어서…
다니면서 여행 책자처럼 계속 정리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꼭 책을 내야지 생각했었는데 이제 동남아시아의 여러 곳을 돌고 와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게 현지 문화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한 거구나 하고.
그러던 찰나에 제가 기획하는 명상, 요가 프로젝트에 몇 번 오셨던 분께서 친환경 책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어요. 저는 그분의 직업적인 부분을 전혀 몰랐는데, 직접 체험해 보고 제가 하는 일들을 계속 지켜보면서 제안을 주신 거예요.
그때만 해도 저는 이제 막 공부하고 알아가는 단계고 어떤 실천들을 시도해 보는 단계여서 ‘제가 이걸 써도 되나요? 환경 운동가도 아닌데…’ 그랬고요.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동했던 건 (그분이 하신 말이) ‘직장 생활을 해도 부장님이나 팀장님이 얘기하면 잘 안 와닿는데 대리님이 말하면 잘 와닿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처음 시작을 응원하고 독려하는 마음으로 쓰면 어떻겠냐’고 해서 그러면 조금 부담 없이 쓸 수 있겠다 했죠.
제스: (책 속에서) 무너진 일상이 정상 궤도를 찾게 된 계기에 대해서 세 가지로 나눠서 어떤 일련의 과정들이 있었는지를 설명해 주셨는데, 그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크게 봤을 때 미니멀리즘, 발리의 풍경, 요가 철학,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까요?
지혜: 사실 제가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에요. 절대 그렇지는 않은데, 이전에는 과하게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거? 어떻게 보면 그 자체가 외부의 시선을 굉장히 많이 의식하는 거죠. 옷도 많아야 되고, 당시에 제가 코덕(코스메틱 덕후)이었거든요. 화장품도 옷도 많이 가지고 있고 집에는 물건들이 쌓여서 잠잘 데만 있고… 결국 집을 이사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살면서 좋은 삶이라고 믿었다고 하면 이제 물건들이 없어도 되는 용기가 생기면서, 흔히 말하는 현타가 온 거죠. 내가 돈 벌고 물건 사고 카드 빚 갚고… 계속 왜 그렇게 하면서 살지 하고 의문이 들면서부터 시작됐어요.
그리고 발리에 갔을 때 2015-6년 때였는데 거기에 히피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워낙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지만 그때는 아시안이 거의 없었거든요. 히피들이 요가 매트 하나 들고 맨발로 다니는데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 거기 있을 때 저도 되게 행복했어요. 캐리어에 들고 간 물건, 옷은 반의반도 못 입고 왔고...
그런 걸 보면서 내가 진짜 행복한 게 집 안에 물건이 꽉 차 있을 때가 아니라 자유롭게 다니고 자연스럽게 있을 때를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물건들을 비울 수 있었고, 살 때도 많이 조심하게 됐죠. 거기서 자연, 환경 문제에 경각심을 갖게 되면서 변화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는 발리를 갔다 와서 요가 강사를 한 건데요. 요가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걸 넘어서서 철학 공부를 하면서 생각한 첫 번째가 도덕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 다섯 가지 그리고 개인적인 수행을 위해서 지키면 좋은 것들. 이게 엄청난 것이 아니라 ‘누구도 해치지 말아야 한다’, ‘진실돼야 한다’, ‘훔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얘기거든요. 너무 당연한 건데 요가를 하면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숙고를 해보기 시작한 거예요.
'폭력’이라고 하면 당연히 안 되지 했었는데 계속 숙고하다 보니까 그 범위가 되게 크다는 점. 내가 먹고 버린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하물며 나 스스로한테도 굉장히 많은 폭력을 가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을 계속 알아차리면서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이고 이 삶의 방식이 잘 가고 있구나 확신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딱 세 단계였던 것 같아요. 알아차리고,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요가, 여행, 자연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내 안으로 온 거죠. 진짜 필요한 건 옷, 화장품, 물건들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해야 되는 작업들이구나 생각했던 거 같아요.
제스: ‘알아차림’이라는 개념이 요가나 명상에서도 중요한 지점이잖아요. 그 차원에서 와닿은 걸까요?
지혜: 그런 걸 수도 있고요. 요가 자체가 움직이는 명상이라고는 해요. 그런데 사실상 전자기기에서 멀어져서 요가 매트 위에 2시간만 앉아 있어도 나에 대해서 엄청 많은 주의를 기울일 수가 있거든요. 우리가 그런 것들을 망치는 이유가 항상 미디어, SNS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까 정작 나한테 관심 가질 일이 잘 없잖아요. ‘알아차렸다’고 말하는 건,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아는 것 같아요.
제스: 책의 목차에서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그 자체가 곧 나를 돌보는 일이라고 표현하셨잖아요.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은 ‘그저 사는 대로 살아지기 전에 스스로 신념을 갖고 가면서 사는 일이 성장에 대해서 영감이나 안정감을 준다’고 말씀하셨는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은 무엇인가요?
지혜: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기보다는 첫 번째는 본질에 집중하는 게 가장 크고, 두 번째는 내가 알고 있는 거랑 사는 거랑 같았으면 좋겠어요. 세 번째는 삶으로 증명해 내는 것.
예를 들면 이런 건데요. 출간하고서 저에게 ‘친환경 라이프를 하려면 뭐부터 사야 되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근데 친환경 라이프의 본질을 생각해 보면 그게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물건을 안 사는 게 더 맞는 일이잖아요. 그럼 있는 걸 잘 쓰시고 다음번에 소비를 해야 할 때 그런 걸 따지면서 소비하는 것, 이렇게 말씀드리죠.
요즘에는 환경 활동을 많이들 하고 저도 하지만, 그러면 (신청하는 분들이) ‘플로깅 키트를 증정해 주나요?’ 물어보세요. 저는 쓰레기를 줍는데 앞으로 또 쓰레기가 될 걸 만들어야 하나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혼선이 와요. 제가 생각하는 본질에서 조금 벗어나서 하면 제 커리어적으로는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 생각하죠. ‘내가 머리로 알고 있는 거랑 사는 거랑 같아야 되지 않아?’라고. 거기서 조금 불편하면 본질에 맞는 방향으로 하려고 해요.
그러면 이제 주변에서 커뮤니티를 키우려면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얘기할 때, ‘삶으로 증명해 내는 게 제일 좋겠다’ 싶어요. 왜냐하면 조금 긴 시간이 들더라도 옳은 말을 하고 옳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마케팅적으로도 환경을 얘기하고 협찬 제안도 많이 들어오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득을 위해서 덜컥 받아서 하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조금 느리더라도.
제스: 이 책을 통해서 가장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 혹은 응원이나 독려를 하기 위해서 어떤 이야기를 꼭 담아야겠다고 생각하신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지혜: ‘환경에 좋은 게 결국 나한테 제일 좋다’는 것. ‘그냥 공부해!’라고 하는 것보다 공부를 해서 왜 좋은지를 얘기하는 것처럼요. 저도 하면 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느끼고 있고요. 과학적 데이터를 억지스럽게 드는 것보다 실제로 경험해 보니 어떻다,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이점이 있었다고 얘기하면 좀 더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았어요.
(책에서 언급한) 7R*도 그렇고 환경을 위해서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해야 된다고들 얘기하는데, 제가 바꾸고 싶은 부분이에요. 좀 더 우리 정서에 와닿는 건 ‘아나바다’라고 생각하는데,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그거만 해도 환경 문제에 있어서 장벽이 높다는 생각을 낮출 수 있다고 봐요. 저는 당근 마켓이 진짜로 좋은 환경 활동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웃음)
7R이라면 뭔가 있어 보이고 제로 웨이스트도 그렇지만, 결국 소비를 지양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쓰레기를 단순히 만들지 않는 거.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운동인데 무분별하게 만들어내는 쓰레기들은 대부분 포장재고, 그 쓰레기를 한 번만 살펴봐도 돼요. 그리고 공산품들을 제하는 생활에서 최소화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먹을 만큼만 가서 시장에서 장 봐오는 것 혹은 내가 있는 것들에서 찾아보는 거,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허들을 낮춰서 생각해 보고…
* 7R: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7가지 마음가짐 - Refuse(거절한다), Reduce(줄인다), Repurpose(다른 용도에 맞게 만든다), Reuse(재사용한다), Recycle(재활용한다), Rot(썩힌다), Rethink(다시 생각한다)
‘비건 식당은 어디가 맛있어요?’라는 얘기를 할 때는 저도 외곽에 살아서 비건 식당은 잘 없거든요. 서울에 나와야지 한 번씩 가요.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김밥 먹으러 가서 햄 빼주세요라고만 해도 비건이고 비빔밥 먹으러 가서 고기는 빼주세요, 하면 되는 거고. 약간만 생각을 유연하게 해보면 어떻게든 실천할 수 있다는 걸 꼭 얘기하고 싶어요.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그리고 아까 로컬 리트릿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이제 전반적으로 탄소를 줄이려고 하다 보면, 일단 운송 과정과 먹거리를 보관하는 데서 방부 처리라든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지역 안에서 먹거리를 찾고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을 찾아보는 거예요.
저는 환경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재밌게 풀어내려고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북극곰이 저렇게 죽어가는데 지금 고기가 넘어갑니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재미있는 거, 해외여행을 못 가서 슬퍼하는 것보다는 가까운 데를 찾아준다거나 제안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렵게 생각하기보다 그 안에서 찾아보는 재미들을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제스: 이런 얘기들은 뭐랄까, 저는 당연히 비기너가 맞지만 너무 초심자처럼 보일 것 같아서 일부러 못하는 질문인 것 같아요. 오히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요.
지혜: 네, 맞아요. 그리고 요즘에 느끼는 게 이 책을 낼 때만 해도 이런 이야길하면 바로바로 피드백이 왔는데 이제는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니까 저도 행동하는 게 더 섬세해지고 하드해지거든요. 그러니까 약간 공감을 못 받더라고요. 더 어렵게 생각하고. 그래서 다시 비기너의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흥미롭고 재밌게 풀어낼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제스: 제가 궁금했던 건 개인이 일상에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 무력감이 드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상에서 실천하고 노력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서 얻게 됐다 하는 점이 있을까요?
지혜: 일단 첫 번째로는 돈을 적게 쓰게 돼요. 가성비 좋은 거로 쓰고. 제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 중에 하나가 좋아하는 물건을 오래 쓰자, 물건은 한 기능에 딱 한 개면 충분하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제가 손톱깎이를 모았거든요?(웃음) 이제는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까 물건을 살 때 고민을 되게 많이 해요. 하나를 살 때 내가 이걸 얼마나 쓸 수 있을 것인가, 중고로 판매하거나 살 수 있는 것인가,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다 보니까 소비 자체가 줄고. 소비를 하고 나서도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기도 하고요.
탄소를 줄이는 생활습관을 하다 보면 사실상 돈을 많이 안 쓰거든요. 예를 들면 차 안 갖고 나가고, 자전거 타거나 걸어 다니니까 교통비도 많이 줄고 생활비도 많이 줄고… 그게 되게 큰 것 같아요. 2018년에서 2019년 넘어갈 때 혼자서 (가계) 통계를 적어봤어요. 만약 일 년에 100만 원을 썼다고 하면 다음 해는 30만 원을 쓰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서 기록해 놓는 게 재밌었어요.
또 하나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예전에 화장품을 워낙 좋아하니까 화장품도 먼지가 앉거나 하면 관리하기가 힘들잖아요. 이제 화장품이 없으니까 그것도 편하고 욕실 청소하는 게 품이 안 들어가서 좋아요. 이건 미니멀리즘 하시는 분들이 많이 할 법한 얘기인데, 저는 워낙 맥시멀리스트였다가 바뀌었고 일상에서 그만큼 에너지가 덜 들어가다 보니까 내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저한테는 아주 큰 장점이에요.
그리고 살아가는 데 명확한 기준이 있다는 거. ‘나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삶을 살 거야’ 하니까 삶의 기준이 명확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헤맬 필요가 없죠. ‘그래서 이건 어디서 어떻게 왔는데?’ 이런 것들을 따지다 보니까…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하는 것 같아, 다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면 요즘에는 ‘너는 호불호가 명확한 것 같아’ 라는 말을 듣는데, 왜인지 생각해 보니 명확한 기준과 삶의 방식이 생긴 거예요.
제스: 앞에서 어떤 계기로 비건을 지향하게 됐는지 말씀해 주셨는데 이 부분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시점인데요. 막상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주저하거나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렇게 먼저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거기에 공감해서 움직이게 되는 게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계속 실천하고 계시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지혜: 첫 번째는 아까 얘기한 비건 포틀럭 파티에 온 사람들을 보고 궁금해서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저도 ‘비건은 샐러드’라고 여겼는데 찾아보니까 그 안에 되게 많은 토픽들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모르는 세상이구나, 이런 것들이 있구나 했죠.
그 당시에 제가 혈안이 돼있던 건 플라스틱 안 쓰는 걸 병적으로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그러다가 <카우스피라시>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고 억울해서 비건을 시작했거든요. 그 감독이 저랑 약간 비슷한 성향이더라고요. 제가 그때 했던 게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고 3분 안에 샤워하기를 타이머를 맞춰놓고 했단 말이에요.
다큐에서 하는 말이 본인은 물을 아끼려고 2분 정도의 엄청 짧은 시간 안에 샤워를 한대요. 근데 그렇게 두 달 동안 샤워를 덜 해야 맥도날드의 불고기 버거 하나 먹을 때 쓰이는 물 소비량과 같다는 거죠. 그걸 보고 환경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서 완전 채식은 못하더라도 좀 줄여보자 해서 일주일에 하루는 채식하는 날로 하고, 이제 조금 더 늘려서 하루에 한 끼를 하는 식으로 조금씩 늘려나갔어요.
되게 신기한 게 계속 신경을 쏟고 있으니까 환경 문제를 넘어서 그다음부터는 동물권으로 넘어가요. 평소에는 ‘플렉시테리언’을 하다가, 사람들하고 모이면 그냥 먹곤 했었는데 동물권으로 넘어오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그게 안 되거든요. 그때까지 한 2년 정도 걸렸어요. 2020년 지나서부터 아예 고기를 안 먹기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분명히 탈이 나니까 그냥 제 속도를 기다렸거든요. 어쨌든 내가 익숙한 것에서 조금씩 변해 나가려면 마음이 정해져야 가능하잖아요. 만약에 나는 먹고 싶은데 계속 먹지 말라고 하면 숨어서라도 먹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니까.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계속 촉을 세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마음이 변하고 식생활도 변하게 됐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저희 남편도 고기를 진짜 좋아해서 연애 초반에 몸이 안 좋다고 하면 고기를 먹어야 되나?라고 말했었거든요. 지금은 고기를 거의 안 먹어요. 한 번도 강요한 적은 없지만 제가 했던 건 환경 다큐를 틀어놓는다거나, (웃음) 맛있는 비건 음식점을 데리고 가거나. 우리가 알고 있는 비건은 뭔가 까다롭지만 사실상 대체할 수 있는 것들도 많거든요.
그런 식으로 이제 선택지가 생기는 거죠. 예전에는 ‘당연히 좋은 날에는 고기 먹으러 가야지’라고 했는데 지금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육식 소비를 좀 줄일 수가 있으니까요. 대신 친구들을 만나면 삼겹살을 먹고 온다거나, 그때는 저도 강요하지 않고 이제 그 사람을 기다려주는 거죠.
제스: 남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공감돼요. 제 주변에도 비건이라든지 친환경 라이프를 지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중에 본인처럼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경멸하게 되거나, 나는 열심히 실천하는데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충분히 공감이 되는데, 그런 지점들도 있었을까요?
지혜: 네, 둘 다 공감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무해’라는 단어를 늘 경계하거든요.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는 첫 번째가 비건 지향하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때. 그 말인즉슨 그는 우월하고 나는 미개해서 고기를 먹는 것처럼 따지는 상황에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는 그냥 저 사람 안 볼래 했거든요.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 내가 지금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비건에 관해서 타자화의 개념을 많이 얘기하잖아요. 동물을 타자화해서 그들의 아픔, 고통도 느껴야 된다고. 그런데 저는 왜 사람한테는 그렇지 않은지 물음표가 많았어요. 이 모든 과정에서 누구도 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게 가장 기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누군가한테 말을 할 때 상처가 된다거나 상대방이 불쾌하다면 그건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는 무력감을 느끼면서 ‘나만 이렇게 손해 보고 있어’ 하는 것도 사실 나한테 되게 안 좋은 거고요. 그래서 시청각적으로 자극적인 자료를 보여주는 게 직방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지만 모두가 그렇지도 않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옥자>를 보고 나서도 돌아서서 한 이틀 있으면 또 잊어버리고 그랬어요.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거.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무언가를 계속 아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제가 접근하는 방식은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본인이 체험해 보면 알아서 찾게 되는 것처럼,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면 햇빛을 비추듯이 긍정적인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무력감을 느낀다고 생각하면 되게 허탈하죠.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저는 종이컵을 안 쓰려고 하는데 앞에서 종이컵을 막 버리면…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지금 내가 이렇게 쓰고 있는 게 남을 위한 게 아니고 나를 위한 거다. 종이컵은 다 화학 처리한 걸 텐데 저게 뭐가 좋겠어하고 나한테 좋은 것들을 계속 생각하는 거죠. 이걸 함으로써 돈이 절약되고 내가 건강해졌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면 된 거야,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크게 휘둘리지 않게 되고요.
그런 모습을 봐야 사람들도 따라간다고 생각해요. ‘왜 고기 먹어, 플라스틱 쓰지 마’ 하는 사람은 피하고 싶잖아요. 예를 들면, 제 남편이 채식을 하고 채소의 비중을 늘렸더니 피부가 좋아지고, 샴푸 바를 썼더니 머리가 안 빠진다는 거예요. 그럼 남편한테 친구들이 ‘요즘에 머리가 자꾸 빠져, 탈모가 왔나 봐’ 했을 때 자연스럽게 ‘샴푸 바를 써봐-‘ 이런 식으로 가는 게 훨씬 좋겠구나… 그게 더 자연스럽고 더 좋고요.
저도 가끔 감정 조절이 안 돼서 SNS에 이건 너무 심한 것 같다-이렇게 올리면, 우선 언팔이 나옵니다.(웃음) 무조건 떨어져요. 굳이 그걸 의식하거나 제가 막 흔들리진 않지만 좋아요가 다른 것보다 없네? 하는 글들은 너무 진지하고 환경에 대해서 딥한 얘기를 쓰면 오히려 반응이 없고요. 일상에서 내가 이렇게 먹고 있다, 이게 나한테도 좋고 환경에 더 좋을 거다 하면 사람들이 ‘저도 따라 해 볼래요’ 이런 반응들만 봐도 분명히 더 잘 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를 하고 싶다.
제스: 점점 방향이 바뀌었다고 말씀을 주셨는데 기후 위기에 대한 의식 때문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작업들이 확장되면서 세워진 목표일 수도 있을 테고요. 앞으로의 일에서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실까요?
지혜: 이렇게 환경 문제가 악화된 이유는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것들을 너무 많이 생산하고 취하고… 인간의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들에 의존하고 집중하게 되고요. 그러지 않으려면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면서 느리게 하는 일들이나, 여행을 갈 때도 고생스럽게 대중교통을 타고 오면서 그 안에서 자연과의 연결감을 느끼고… 어떤 친환경 물품이 아니라 환경적인 삶의 방식을 알려주는 일들을 해야겠다.
사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식주잖아요. 근데 우리는 삶을 일하는 데에 너무 많이 쓰고 있고, 일하느라 잘 못 먹고 잘 못 자고 사랑하는 사람하고 시간을 못 보내고... 어떻게 보면 꼭 그게 미덕인 것처럼 몰아가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잘 생각해 보면 그 과정들에서 정작 중요한 걸 많이 놓치고 있고, 그런 것들을 알 수 있는 시간이나 일들이 중요할 것 같아요.
나아가서 나는 어떤 일을 해야 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요즘에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서 밀키트가 많이 나오잖아요. 근데 정작 중요한 건 밀키트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음식을 고르는 일, 그 음식 재료가 나한테 오는 과정(을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요리하는 과정, 그걸 음미하면서 먹는 과정. 거기에 포커스가 맞춰진 비즈니스들이 활성화되는 게 앞으로 궁극적으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이 이게 더 가치 있는 삶이고 우리가 집중해야 되는 삶이라는 의식이 생길 것 같아요. 그런 일들이 앞으로 정말 많아지면 좋겠어요.
제스: 그러면 요가나 명상을 가르쳐주는 입장에서 단순히 동작을 알려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라든지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많이 티칭을 해 주실 텐데 그때 가장 중요한 맥락으로 생각하고 강조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지혜: 나라는 사람을 존중하는 거죠. 사람들마다 각각 가지고 있는 본질이 있잖아요. 근데 우리가 어떤 부분을 대상화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요가를 할 때 그걸 언제 많이 느끼냐면 흔히들 멋진 몸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수강생들이 와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선생님, 저는 손이 발에 닿지 않는데 요가할 수 있나요?’ 내지는 셀럽이 매체에 나와서 손으로 서는 자세나 거꾸로 서는 자세를 하면 또 몰려와서 ‘몇 개월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얘기하세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요가도 경쟁하듯이 대하고 내가 그런 것들을 닮아가야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사실 자신을 알아가는 도구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한테는 그게 요가고, 또 어떤 사람들한테는 분명히 다른 게 될 수가 있겠지만요.
근데 그러다 보면은 실패하죠. 왜냐하면 내가 가진 본질이 있으니까. 저 사람은 타고나길 유연해서 그렇게 잘할 수 있지만 사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긴장되어 있는 삶을 살아왔고 내 몸의 재질 자체가 워낙 텐션이 높을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이 손을 발끝에 닿는 것에 계속 집착하면 나를 자꾸 꾸짖게 되는 거예요. ‘왜 이거밖에 안 되지? 내가 지금 요가를 몇 달을, 몇 년을 했는데 너무 창피하다’ 여러 가지 마음이 들거든요.
그래서 제일 많이 얘기하는 건 이게 과정이라는 거. 그리고 내 컨디션, 내 몸을 존중하고 수용하자. 거기에는 어떤 평가를 하지 말고. 보통 ‘나는 진짜 안 되나 봐’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지만 그게 아니라 ‘내가 지금 힘들구나’ 하고 앉아 있는 나를 돌아보는 것. 그다음에는 내가 머물러야 할 곳을 스스로 선택하고. 안 되는 걸 숨을 참으면서 하는 것보다 내가 기분 좋고 적당한 날에 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느껴지는 곳에서 머무는 선택을 하고. 거기에는 사실 되게 많은 용기가 필요해요.
제가 요가 강사를 하게 된 것도 그런 점이 좋았던 게 있어요. 왜냐면 저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는데 성악이라는 것 자체가 과정이 무시되는 분야 중에 하나거든요. 열심히 연습했는데 무대 위에 올라가서 한 번 잘못하면 그간의 노력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혼자서 너무 속상하고 자책하고…. 저는 그런 것들을 극복하지 못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던 것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가를 했을 때 그냥 이게 과정 중에 하나라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니까 못해도 괜찮다. 오늘만 할 것도 아닌데요, 내일도 또 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큰 울림이 있었고 되게 많이 위로를 받았고. 그래서 나도 좋은 위로를 주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스: 저도 사실 이 부분을 여쭤보고 싶었어요. 정신적인 수련을 하거나 신체적인 단련을 하면서, 이전에는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게 어떤 것이었고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궁금했는데 방금 말씀하신 걸로 설명이 된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앞에서 말씀하신 것 중에 사람들이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고 했을 때 본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일과 연결했을 때 일을 하면서 중심에 두려고 하는 가치나 신념을 꼽아본다면 무엇일까요?
지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면 의미, 재미, 성장, 세 가지였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 하나를 뽑으라고 하면 아무래도 의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미충이라는 얘기를 되게 많이 듣거든요.(웃음) 무슨 의미를 그렇게 많이 갖다 붙이냐고들 하고, 저는 의미 없는 건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성장에 대한 욕구도 큰데 특히 요즘에는 내적으로 계속 성장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예전에는 ‘나 그거 사고 싶어, 돈 모아서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싶어’ 그런 것들에 꽂혀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그 안에서 뭔가를 더 배우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적인 성장과 내 삶에 군더더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재미는, 재미없는 일을 못하더라고요. 의미 없고 재미없는 일을 못해서 퇴사를 빨리 한 거예요.(웃음)
제스: 그러면 회사 생활을 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지점도 그 부분이었을까요?
지혜: 네. 그러니까 비전이 없다? 의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까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 비전이 없다. 그리고 비전이 없으니까 내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것이 참담했다고 해야 될까요? 내가 여기에 있어서 뭘 하지? 하고…
제 주변의 누군가는 최고의 가치가 돈이거든요. 돈이 되면 하는데, 저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이게 의미가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한테 영향을 주지 않는 일에 대해서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제스: 이전 인터뷰가 해주신 질문이 지금 나누는 얘기들이랑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을 왜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이에요.
지혜: 일단은 아까 말했던 세 가지의 의미, 재미와 성장이 다 있는 일이고.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머리로 생각하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가슴에서 우러나서 하는 일이 일치하는 것. 그게 되게 큰 것 같아요. 이전에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나의 비전이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제 삶이 누군가 봤을 때는 뭘 저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나 싶을 수도 있고 다 다르겠지만 저한테는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좋은 삶, 그리고 지향해야 하는 삶이랑 마음에서 추구하는 삶이랑 일치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하고 있어요.
제스: 대표적으로 하고 계신 분야 외에도 계획하고 있는 새로운 일이나, 아니면 지금 당장은 여건상 시작하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부분이 있으세요?
지혜: 지금은 소담 소담한 행사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다양한 분야에 계신 분들과 뜻을 합해서 친환경 행사를 크게 기획해 보고 싶어요. 뉴질랜드의 어떤 섬에서 열리는 친환경 행사*가 있는데, 행사에 지원되는 모든 물품과 먹거리는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로컬에서 자라나는 것들로 제공이 돼요. 행사장 설치물 같은 경우도 인위적인 게 아니라 자연물로 만드는 그런 행사를 늘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요. 근데 혼자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뜻이 맞는 분들과 언젠가는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제스: 축제 같은 분위기로요?
지혜: 네. 축제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농사를 짓는 게 제 꿈 중에 하나거든요. 머지않아 계획하고 있는 일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관해서는 과정을 많이 잊고서 결과적인 것들을 쫓다 보니까 물건을 많이 사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 과정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항상 말하기를 5년 안에 하겠다고 얘기하고 있어요.(웃음)
생태적인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친환경적’이라고 표현하면 그 주도권이 사람한테 있는 것 같잖아요. 저는 생태적인 삶이라고 하면 공존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공간을 만들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느린 과정들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루미네이트 페스티벌(Luminate Festival) - Golden Bay, New Zealand
제스: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거기서 또 새로운 생각들이 연결되는데, 어쨌든 그 활동들을 이끌어가는 건 본인이시잖아요. 아무래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거든요. 꾸준히 힘을 내고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원동력을 꼽아볼 수 있을까요?
지혜: 오면서 그걸 많이 생각했어요. 첫 번째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게 커요. 그걸 언제 느끼냐면 제가 요가 수업할 때도 사람들 이름을 잘 외우거든요. 인상착의나 어디가 안 좋았다, 이런 걸 되게 잘 기억하는 거 보면 사람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거. 그리고 두 번째는 생태적 감수성도 크지 않나. 두 개가 같이 모이니까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계속하고, 체력이 좋은 것도 있어요. 체력이 좋으니까 크게 지치지 않는 것도 있고.
제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게 본인에게는 일로써 다가오는지 아니면 작업 혹은 일상 중의 하나인 지도 궁금해요.
지혜: 그 경계가 크게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덕업일치 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고 ‘워라밸’이라는 말이 잘 안 와닿거든요. 되게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요.
제스: 혹시 내가 사람들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혹은 지금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지혜: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나 생각이 들 때 저를 보면서 저렇게 살아도 잘 사는구나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사실상 제가 회사 생활을 제대로 안 해봤기 때문에 어떤 일을 시도하는데 큰 거리낌이 없다고 요즘 많이 느끼거든요? 일의 체계도 크게 없고, 그 체계를 잘 모르니까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예요.
근데 그게 누군가 봤을 때는 신박하네, 재밌겠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제가 하는 일들을 계속 쫓아와주시는 분들, 흔쾌히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건 제가 그런 두려움이 많이 없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해요. 옆에서 보면서 너처럼 살아도 되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좋아 보인다고 얘기해 주시거나 부럽다고도 하니까 더 잘 살아야겠다 싶어요.
제스: 하시는 얘기를 들으면서 추측해 보건대 2018년도에 이제 본격적으로 지금 하는 일들을 시작하셨다고 했을 때, 그 이전에는 지금의 모습을 쉽게 상상하지는 못하셨을 것 같은데 혹시 앞으로 5년이나 10년 후의 일도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사실 저는 그런 그림을 잘 못 그리거든요.(웃음)
지혜: 제가 요가 강사를 준비할 때는 자존감이 바닥이었어요. 무쓸모한 인간이라고 생각을 하다가… 저 같은 경우는 음대를 나왔으니까 토익이나 흔히들 말하는 스펙이라고 하는 게 하나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당시에 온갖 것들을 배웠어요. 뭘 먹고살아야 될지 몰라서 자영업을 할 수도 있으니까 조리사도 해보고, 자격증이 진짜 많아요. 그런 것들을 하면서도 힘들었는데 요가 강사를 했던 거는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발리에 가서 한 거거든요?
제스: 어떤 영화였어요?
지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동안 노래하는 거 말고 열정을 다해서 길게 했던 게 요가밖에 없어서 요가 여행을 한번 가보자… 갔더니 60명 클래스 중에 아시아인은 저 하나였는데 제가 제일 잘하는 거예요.(웃음) 우스갯소리로 맨날 얘기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뭘 해도 다 잘해요. 제가 성악할 때도 국제 콩쿨에서 1,200명 중에 8명이 수상하는데 반은 한국 사람이고, 요가원에 가도 대부분 못하는 동작을 너무 잘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때는 저도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많이 따질 때니까 스스로가 ‘나 너무 못하네, 요가 강사를 해도 되나? 체대 나오고 무용과 나온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발리의 요가 성지인 우붓에 가고 나니까 ‘내가 괜찮구나, 들어가서 요가 강사를 준비하자’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서, 그때 알았어요.
그동안 제가 혼자 하는 일이 많았잖아요. 요가, 성악도… 혼자 하면서 남들이 하는 과정들을 못 봤는데, 생각보다 제가 기본적으로 탑재된 근성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꾸준히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일단 있었고.
2016년 당시에 제 꿈이 탄천에서 요가 수업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헬스장에서 수업 하나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제가 꿈꾸던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꿈꾸는 5년 뒤의 삶이 있겠지만, 제가 지닌 근성과 정직함을 생각하면 그 이상의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고 삶의 만족도도 더 높아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제스: 처음에 요가 강사를 하셨을 시점에는 자존감이 낮았다고 하셨는데 지금 제가 들은 바로는 자존감이 굉장히 높으신 것 같거든요. 그게 개인적인 수련이라든지 아니면 커뮤니티라든지 이런 생활 습관을 가지시고 하면서 많이 바뀌신 것일 걸까요?
지혜: 내 기준이 생긴 게 큰 것 같아요. 자존감이 없다고 느낄 때는 주변 사람에게 흔들리는 거잖아요. 나를 판단하는 눈빛, 평가 그리고 사회적으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직급으로 나뉘는 거. 사실 저는 지금 직급이라고 할 게 없거든요.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애매모호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딜 가도 어떤 일을 하는지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줄여주세요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듣다 보니까 나름 정리한 거거든요.
(예전에는) 주변에 많이 휘둘리고 내 초라함을 감추기 위해서 옷으로 뭔가 치장했다고 하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게 내 기준으로 따라가니까.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한테는 이게 중요해라는 기준이 명확하게 있으니까 주변의 말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나아가서 조금 더 사람들을 포용하게 돼요. 예전에는 싫은 소리를 하면 그냥 안 볼 거야 이랬다면, 지금은 물론 멈칫하게 되지만 거기에 대해서 오해면 오해다 풀어내고 그 사람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힘이 많이 생겼다고 느껴요.
그런 걸 연상할 때 연결성이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자연과 연결되고 사람과 연결되고… 요가 자세들이 자연물에서 많이 나오는데요. 나무 자세, 까마귀 자세, 뱀 자세 등 동물, 식물 이런 것들의 함의를 많이 따르고. 그건 내가 그들의 위치에서 모두가 동등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대요.
그러니까 한 그루의 나무가 돼서 이해를 하고 또 까마귀가 되면 까마귀의 입장에서 이해한다고 하는데, 사람들을 볼 때도 그런 연결성이 생겨요.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은 물론 당황스럽죠. 하지만 잠깐 생각해 보면 저 사람도 인정받고 싶구나, 나도 저런 마음이 있으니까 저 사람도 사랑받고 싶구나… 우리가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표현 방법이 다른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같이 반응하는 게 아니라 이해를 하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저걸 같이 녹여내고 싶다. 연결된다는 게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자존감이 높으면서 사실상 내가 별게 아니라는 생각도 해요. 자존감이 높다는 게 내가 최고야 이런 마음이 아니라… 예전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 인스타그램 대문에 ‘우주의 먼지’라는 걸 보고 박수를 쳤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 자연물 중에 하나인 거예요. 그냥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니까 하고 싶은 걸 해도 눈치가 안 보이고, 나는 나대로 당연히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누군가를 환멸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는, 많은 생명 중에 하나이다. 이 두 개가 동시에 있어요.
제스: 저는 바다에서 누워서 수영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때 느끼는 감정이 이런 거예요.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다 반짝이고 너무 아름답고 나는 그냥 우주의 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
지혜: 잘할 필요가 없잖아요.
제스: 근데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오, 그래… 하면서 그게 뭔지 정확히 공감을 못하더라고요. 우울한 건가? 이런 식으로.(웃음)
지혜: 너무 심각해지죠. 어떻게 보면 앞으로 그런 인문학적인 소양 내지는 예술적인 것들이 진짜 필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효율성, 결과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바라보니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각하는 모든 것들을 자꾸 잊어버리잖아요. 사실 그게 살아나면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스: 저는 여행을 갔을 때 손에서 뭔가를 다 놓아버리고서 들판에 해가 지는 풍경, 맨발을 스치는 바람, 이런 감각을 느끼는 순간들이 의외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요. 야외에서 했던 활동 중에서 그 장소와 더불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 어디일까요? 꼭 요가가 아니더라도 (미디어와)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 가장 와닿았던 순간을 꼽아본다면요?
지혜: 진짜 그런 순간들이 더 오래 남는 것 같아요. 일단 첫 번째는 제주도 오름. 사람들이 많이 아는 데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앓음 앓음 알고 있고, 사방이 다 오름인 데에서 요가를 하는데 멀리서 구름이 막 몰려오고… 꿈같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리고 지난달에 갔던 백패킹. 해변 청소하고 아침에 요가를 하는데 서해에서 일출이 아니라 해무가 있는 데서 하는데 색다르고 엄청 좋았어요.
제스: 오늘 말씀 나누면서 저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제스: 다음에 인터뷰하실 분한테 던져보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지혜: 지금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최대한 (환경에) 무해한 방식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환경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지금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메시지를 입에 담을 수 있을지.
제스: 각자 하고 계신 일의 분야에 따라서 답변하기 좀 어려운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더 확장해서 개인의 일상, 삶으로 확장해 본다면 어떨까요?
지혜: 좋아요. 아까 기후 위기 관련해서 일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라는 질문은 어떤 분이 질문해 주신 거예요? 되게 반가운 질문이었어요.
제스: 그분은 원래 언론계 쪽에서 계속 일을 해오셨던 분인데 최근 몇 년 동안은 미디어오리라는 단체에서 여러 가지 주제의 다큐를 만들면서 환경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세요. 지혜님을 만나게 되면서 이 질문을 꼭 드려 봐야지 생각했어요.
지혜: 감사합니다. 요즘 제일 많이 생각하는 부분인 거 같아요. 앞으로는 어떻게 넘어갈까, 또 워낙 지금 그런 시기이기도 하고. 저도 많이 걱정되면서도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신지혜 작가는 직접 실천해온 친환경 라이프를 담아낸 책에서 '한 명의 완벽한 실천보다 여럿의 잦은 지향이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을 만든다는 믿음'을 진정성 있게 전해줍니다. 모두가 친환경을 얘기하지만 그 길이 멀게만 느껴질 때 혹은 길 위에서 다음 발걸음을 고민하게 되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용기내어 한 발짝을 먼저 내딛은 이의 응원이 가 닿기를 바라며 인터뷰이가 남긴 질문을 던져봅니다.
무해한 방식으로
일을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인터뷰이 신지혜 @나투라프로젝트
인터뷰어 자스민 @domo
사진 김규형 @keembal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