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김치
농부의 딸은 땅이 주는 힘을 안다.
그 땅에서 자라고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산과 들은 삶의 일부였기에.
마법 같은 사람의 손길은 거칠거칠한 땅도 손길이 닿으면 보슬보슬해진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이고`를 내뱉어야 하는지도 저절로 알게 된다.
올해도 아빠의 배추는 풍년이다.
아빠의 염원을 알고 땅도 배추를 깊숙이 품어주었을 것이다.
땅은 매년 김장철이면 배추와 이별한다.
다 자란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흐뭇하면서 서운한 이별을 고한다.
내년에 또다시 품을 수 있는 배추 씨앗을 기다리며 말이다.
아빠의 배추, 앞으로 몇 년 동안 더 먹을 수 있을까?
고향의 맛, 아빠의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을...
시한부 같은 인생을 사는 우리는 매일 매년 망각하며 산다.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시골 가는 길은 시한부 인생을 느리는 유일한 나만의 방법이다.
더 자주, 더 많이, 마주 보며 밥 먹기 위해 피곤한 나를 일으켜 세운다.
펑튀기를 하듯 매번 하루를 한 달처럼 시골에서 가득 차게 보낸다.
훈훈한 집안의 열기는 얼어붙었던 모두의 마음을 잠시 녹인다.
엄마의 빈자리가 만든 겨울 왕국 2년 차,
진정한 사랑의 힘으로 조금 녹았나 했더니 아직 사랑이 부족한가 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
해답을 찾는 길은?
혹한 겨울 꽁꽁 언 손발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감각했다가,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어 속을 뒤집어 놓는 청양고추처럼 매웠다가,
눈물까지 쏙 빼놓는 매운 연기를 맡으면 불을 지피는 것 같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
어김없이 빨간 동백꽃은 피고, 따뜻한 봄이 오는 것처럼
희망의 불씨는 늘 존재한다.
꽃동산으로 가득해질 그날을 위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본다.
더 늦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