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는 글을 공개 안 하는 이유
지금 확인해 보니, 2021년 9월 이후로 전혀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예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브런치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우선은 점점 글이 거칠어졌습니다. 아무리 시간을 두고 다듬어보려고 해도, 머릿속의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정제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호응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은 호응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 스스로가 그런 거친 글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는 음악이나, 책, 영화 등 제 감정을 표현할만한 작품들의 고갈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저도 변해갑니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딱히 세상 탓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어느새 제 자신이 그렇게 변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과거에도 제가 딱히 그런 작품들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태도는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금 이 브런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회에 대한 절망감? 뭔가 적절한 표현이나 설명을 찾을 수가 없는데, 사람과 사회 혹은 더 나아가서 인간의 '문명' 체계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때 사석에서 '이익과 이권'의 시대가 되었다고 한창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 후 벌어지는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그리 놀랍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놀라긴 합니다. 저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니까요)
그동안 뉴스도 거의 안 봐서,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언론의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았다고 해야겠습니다.) 모르는 일도 많지만, 제가 올해 주목했던 현상은 3가지입니다. 1. 축구 협회와 국가대표 감독 선임 문제, 2. 민희진 씨와 뉴진스 팬덤 그리고 마지막으로 뉴진스 자체의 문제 3. 비상계엄의 문제. 제가 보기에 이 3가지 일련의 사건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선동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주장'만을 하고, 이에 대한 상대방에게는 무한 검증을 요구합니다. 또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단어를 선점하고 사유화합니다. 그 '말'이 갖고 있는 사회적 약속은 무시합니다. 이건 커뮤니케이션이 아닙니다. 일방적이며 관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제 '대화'는 사라져 가는 것 같습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일상의 매우 소소한 영역까지 제대로 된 대화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사실 대화가 모든 사람들 간의 충돌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대화가 되고, 서로 간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면, 최종적으로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소수를 존중해 주는 것, 이게 제가 알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틀인데, 이게 맞는 것인가? 의심할 대가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차라리 제가 혼자인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혼자일 때,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대화가 없다는 것인데, 이제는 혼자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 결국 글을 쓰는 일도, 그것을 소소하게나마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제 글을 읽는 일이 두려워졌습니다.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