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었나요?'라는 제목, 주인공이 부모님을 향해 한 말이라는 거 아시나요?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실화이기에 더 안타까운 것 같아요."
혜아: "선배, 만약 부모가 은석이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해주었어도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민준: "글쎄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그저 말 한마디가 아니니까, 그런 일까지는 안 저지르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었다는 것은 그럴 수 있는 감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부모라는 것을 말해주니까요. 그런 감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부모라면 은석이가 굳이 그런 일을 저지를 필요가 없었겠죠. 은석이는 섬세하고 여린 아이여서 부모로부터 겪어야만 했던 마음의 괴로움과 외로움이 많았을 거예요. 그리고 대부분 참고 숨기려 했었겠죠. 자기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나 분위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요. 자기만 가만히 있으면 시끄러워질 일이 없으니까 부모에게 제대로 말하고 맞서지 못했을 거예요. 그랬을 모습을 생각하면 은석이가 참 안쓰럽고 불쌍해요."
- 도인종, <메이데이 메이데이> 중에서
시끄러워질 일이 없을 선택만 하게 되는 분위기 속에 있는 건, 시끄러움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일까? 어쩌면 그런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든 나의 진짜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논현동 원장님을 만나고 온 날 밤 9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사촌형이었다. 괜찮으면 술 한잔 하자며 주소로 문자를 찍어줄테니깐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예쁘게 하고 오라고 했다. '예쁘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고급 술집인 거 같아서 좋은 옷을 입으려고 옷장을 열어보았는데 뭘 입어야 할지 눈에 들어오는 옷이 없었다. 나는 모르겠다 하고 심플하게 입고 찍어준 주소로 운전해 갔다.
신기한 인테리어의 입구의 술집이였다. 입구에 서 있는 직원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사촌형 이름을 대며 물어보니깐 "아, 회장님이요?"하며 깍듯하게 반응을 하며 자켓에 있는 마이크에 뭐라뭐라 말을 하더니 가게 안으로 나를 안내해줬다.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길을 잃을 것 같은 곳이었다. 나는 어떤 방문 앞에 섰고 나를 이끌어간 사람이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사촌형이 방의 중앙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밖에는 음악소리로 시끄러웠었는데 형이 있는 방 안은 조용했다. 차분한 분위기의 공간 형과 어떤 남자분 한 분과 여자분들이 있었다. 사촌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쪽에 와서 앉으라고 하고 나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술을 따라주면서 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나를 소개해주었다.
얘는 진짜 내 사촌 동생. 우리랑 달라. 얘는 작가거든. 작가.
앉아 있던 여자들이 흥미롭다는 듯 미소지으며 물었다.
작가요? 어떤 작가요?
소설을 써서 상도 받았다고, 책도 내고.
맞기는 맞는데 사람들의 시선과 흥미가 나를 향하는 자체가 민망했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술을 마셨다. 사촌형은 나에게 저번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고, 문자를 보냈는데 그 이후로 반응이 없는 상태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 일단은 두고 보자구나. 그쪽에서 어떤 액션을 취하면 우리는 그에 따라 바로 대응을 하면 되니까. 나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어서 일을 맡겼었는데 대응을 잘해주더라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 생기면 바로 맡기는 것으로 하고, 알았지? 이건 풀지 못할 일, 해결하지 못할 일은 아니니깐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아.
응, 고마워. 형
너도 잘 알고는 있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행동을 해야 하는 거 알지?
나를 보며 부드럽지만 힘이 있는 말을 해주니깐 정말 마음이 놓여졌다. 뭐랄까 내 뒤에 언제든 출격할 해결사와 전문가가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를 사람들 앞에서 아주 가깝게 소개해주는 것도 너무 고마웠다. 사촌형과 나의 관계는 글쎄, 가까운 것이라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오묘한 관계이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고 만나기도 했었고, 지금도 매년 산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이다 보니 먼 관계는 아닌데 이렇게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처음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자집이였던 사촌형네는 그닥 우리와 이해관계가 있지 않아서 더 편하게 연락하고 어울리는 사이였다. 특히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우리 어머니와는 가까운 사이였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두 분이 결혼하시기 전 데이트할 때 엄마도 두 분 사이에 껴서 같이 놀았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커서 신문을 통해 사촌형네 호텔이 몇 백억에 매각되었다는 기사를 보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자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형네는 대대로 사업가 집안이였고, 우리는 대대로 교육자 집안이였다. 어쩌면 그래서 더 편히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작가세요? 어떤 소설을 쓰셨어요?
옆에 앉아 있던 여자분이 나에게 물었다. 소설을 쓴 것은 맞는데 그렇게 알려지고 그런 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옆에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촌형이 내 소설에 대해 대신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이모 통해서 얘 소설 나왔다고 얘기 듣고 직접 서점에 가서 사서 봤잖아. 정말 내돈내산을 했었다니깐.
내 책이 서점에 있었어? 다행이네.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물었다.
어떤 내용이예요?
뭔가 밝지는 않은 이야기였어. 첫 문장이 누가 사라졌다고 하면서 시작했었던 거 같은데 맞지?
응,
역시 나는 얼버무리며 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피했다. 뭔가 민망했다. 그때 웨이터로 보이는 분이 노크를 하고는 무언가를 들고 들어왔다. 사촌형도 방 안에 있던 여자분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뭐지? 하고 웨이터가 들고 온 것을 테이블에 내려 놓을 때 유심히 보았다.
아니, 유심히 볼 필요가 없었다. 떡볶이였다. 그것도 길거리에서 파는 떡볶이를 포장해서 바로 갖고 온 것이였다. 테이블 위에는 비싸보이는 양주들이 놓여 있고 비싸보이는 안주들이 있는데 길거리 떡볶이가 생뚱 맞으면서 재밌게 느껴졌다. 사촌형도 여자분들도 나무 젓가락을 뜯고는 서로 먹으라고 하며 있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떡볶이를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먹으며 천진난만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정도 떡볶이를 먹고 나자 사촌형이 나에게 물었다.
너 종이랑 연필만 있으면 심리 같은 거 볼 수 있다고 했지? 우리 종이랑 연필 갖다 달라고 해서 심리 봐달라고 할까?
여자분들은 형의 이야기를 듣고 떡볶이가 들어왔을 때보다 더 신나하며 좋아했다.
네, 우리 봐달라고 해요. 종이랑 연필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잠깐만요 준비해달라고 할게요.
내 옆에 있던 여자분이 방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아까 떡볶이를 가지고 들어왔던 남자분이 이번에는 종이랑 볼펜을 갖고 들어오셨다. 그런데 종이를 보고 나는 웃겼다. 나는 카페에서 A4 용지에 그림을 그리게 하는데, 여기에는 그런 종이가 없다보니간 남자분이 구해오신 건, 테이블 위에 세팅용으로 놓는 좀 큰 종이들이였다. 뭐, 종이 뒷면은 아무것도 프린팅 되어 있지 않으니깐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기는 했다.
나는 카페에서 진행하듯 종이를 나눠주면서 어떤 그림을 그려달라, 이번에는 또 어떤 그림을 그려달라. 하면서 진행을 했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며 재밌게 느껴졌다. 그림검사를 바탕으로 상담을 하다하다 이젠 이렇게 출장 나와서까지 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의 분위기는 급 진지해져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들과 몇 가지 질문들을 하고 형 옆에 앉아 있던 여자분 것부터 그린 그림을 받아 어느 정도 호기심을 채워줄 만큼의 해석 비슷한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형 것에 대해서도. 서로 재밌다는 듯 까르르 웃으며 맞네, 아니네 이야기를 하면서 재밌는 놀이거리,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분의 그림을 받아 그려준 그림을 하나 하나 보는데 그림의 내용들이 순간 멈칫하게 만들었다. 호기심과 재미로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분위기를 내 옆에 앉아 있는 여자분이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프라이빗한 내용들로 인해 여자분에게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집중되게 만들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은 적당한 말들로 적당히 그럴싸한 해석들을 이야기 해주고 적당히 넘어 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형이 잠시 밖에 나갔을 때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여자분에게 말을 건넸다.
사실 그림의 내용들이 많이 좋지 않으세요. 요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여자분은 알고 있었다는 듯, 그리고 배려해줘서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많이 안 좋아요? 그럼 난 어떻게 하면 좋아요?
장난스럽고 가볍게 말을 했지만 장난스럽고 가볍게 말을 한다기보다 분위기와 내가 불편해지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보이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나는 어떻게 말을 해주는 것이 좋을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형이 들어왔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분이 사촌형을 보고는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회장님, 작가님에게 상담 받으려면 작가님이 있는 카페로 가면 되는 거예요?
사촌형은 여자분의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을 했다.
왜? 가서 상담 받게? 얘기 잘 들어줄거야. 연락해서 한 번 가봐.
오케이~
여자는 웃으며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며 내 연락처도 입력을 해갔다. 그러면서 정말 가도 되죠? 라고 말을 했다. 나는 오셔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예약제로 하기 때문에 항상 열어놓고 있지 않아서 미리 예약을 하시거나 연락을 주셔야 한다는 말도 혹시 몰라 얘기해주었다.
오늘 내가 갑자기 불러서 불편하진 않았니? 형도 너 오기 전에 접대를 했었거든. 그래서 편하게 술 마셨으면 해서 너한테 연락했던 거였어.
괜찮아. 그러지 않아도 저번 일로 고마워서 언제 내가 술 사려고 했는데 오늘 형이 샀네. 다음에 내가 살게.
형은 나에게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늘 너 옆에 앉아 있던 A. 대단한 사람이야.
왜?
나이가 어린데 마담을 하고 있거든. 게다가 명문대 클래식 음악 전공을 했더라. 알고 지낸지 꽤 되었는데 사람이 참 매너있고 당차고 깔끔해서 좋더라고.
차는 한강 다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창 밖으로 보이는 불빛들을 보며 형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뷰보다 내 귀에 들어온 형의 말이 나를 집중시켰다.
사람이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고 부드럽게 진지해. 너처럼.
한 문장의 말이었는데 난 앞 부분도, 뒷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부드럽고 진지한 사람이라는 말과 나처럼이라는 말. 두 표현이 모두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