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저번처럼 처방해주면 될까요?

by 연남동 심리카페
나에게 있어서 섬세함은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오르한 파무크, <내 이름은 빨강> 중에서


나에게 있어서도 나의 섬세한 모습이 좋은 모습이기 위해 단호함과 집념이 필요했다. 세상의 X들에게는.






나는 녹음된 통화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듣고 X에게 문자를 남겼다. X에게 죄송하다나 미안하다는 말은 넣지 않은 선전포고와 같은 말을 남겼다. 상황이 피곤해지고 골치 아파진다 하더라도.

아까는 갑자기 전화를 받고 당황해서 이야기를 못 드렸었네요. 저는 제가 보고 판단한 내용을 이야기를 드렸었던 것인데, 어찌 되었든 여자분은 당신과의 결혼을 선택하신 것 같으니 그 부분에 마음을 쓰셨으면 합니다. 저를 상대로 고소를 하겠다고 하셨는데 하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세요. 제 핸드폰이 자동으로 통화 내용이 저장이 되어서 만약에 저를 상대로 고소하신다면 저는 제 심리카페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협박과 영업방해로 바로 법적 조치에 들어갈 것입니다. 변호사와 이야기는 다 마친 상태입니다.




X에게 문자를 보내고 며칠이 지났다. 나는 X에게서 내가 보낸 문자에 대한 답장을 받지 못했다. 주말에 상담을 해주고 있을 때 카페에 와서 깽판을 치지 않을까, 상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을 미행하다가 사람이 없는 골목에 들어가면 나를 해코지 하지 않을까 염려했었는데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X는 나에 일상에 어떤 모습으로든 출몰하지 않았는데, 난 그래서 더 찝찝했다.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일상에, 그리고 나의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상처를 받고 허탈해진 것도 있고 많이 놀라고 지친 것도 있는 것 같았다. 예약 상담을 해주러 카페에 가는 길도, 예약 손님을 마주하고 상담을 해주는 시간도 나에게는 불편함과 부담감이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저번에 정신과에서 받아왔던 약도 다 떨어졌기도 했고 원장님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이럴 때 나에게 작은 안정감을 주는 분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언제 갔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랫동안 안 갔던 거 같다. 나는 논현동에 있는 Y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




일년만이네요.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차트를 보고 원장님이 내가 얼마만에 온 것인지 알려주셨다.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내가 처음 뵈었을 때보다는 나이가 들어 보이셨다. 어느새 10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나도 원장님도 처음 뵈었을 때보다 나이가 들어 있었다. 나는 잘 지냈다는 형식적인 말 대신 며칠 전에 있었던 X와의 일을 얘기해드렸다.


아직까지 별다른 일이 없었으면 그렇게 넘어간 거 같은데요. 잘 되었네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된 건지. 원장님은 지금까지 상담해오면서 이런 일을 겪었던 적은 없으셨어요?
왜 없었겠어요. 저도 있었죠. 일년치 상담한 상담료 내놓으라며 행패부렸던 사람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 진료 못받게 밖에서 소리 지르며 있었던 사람도 있었는 걸요.


나에게 원장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면 상담계의 유재석 같은 분이셨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주시고 따뜻하거나 위로해주는 말을 별로 하지 않으시는데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이해와 위로를 받게 해주시는 분이셨다. 세상에 유재석 욕하는 사람도 있더라라는 말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이유로 누군가를 흠집내려는 사람들은 있는 것이구나를 원장님 얘기를 들으며 새삼 느꼈다.


어쩔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들은 그에 맞는 대처와 대응을 하는 수밖에요. 그런 점에서 이번 일 잘 대처하고 대응한 거 같은데요.


나는 원장님에게 그동안 갖고 있던 생각을 물어보았다. 내가 너무 사람들에게 직선적으로 말을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굳이 적을 만들면서까지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과연 있는 건인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적당히 해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 말이다.


난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계속 했으면 좋겠는데요. 이번에 있었던 일로 하고 싶었던 대로가 아니라 다르게 바꾸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해왔던 거 아닌가요?



나의 이유...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뽑으라면 어찌되었든 원장님은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나에 대해 많이 아신다. 괜히 사서 위험한 짓 하지 말라는 말, 들어서 기분 나빠질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냐는 말, 이번 기회에 너도 그렇게 말하는 거 고쳐보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나에게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는 말은 생각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도 잊고 있었던 나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셔서 고맙게까지 느껴졌다.


10년의 시간이다. 원장님과 만났던 시간이. 최근에는 1년에 한 번 정도 약을 처방받으러 와서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는 사이로 지내고 있지만 처음은 그렇지 않았다. 불안장애로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을 때 원장님이 쓴 불안장애 관련 책을 읽고 좋게 느껴져서 원장님을 찾아왔었다. 그렇게 찾아온 것을 시작으로 4개월 정도를 매주 와서 개인 상담을 받았었고, 몇 개월이 지난 후에는 원장님이 진행하던 집단치료 프로그램에도 참가했었다. 나는 약간 인턴십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한번 받아보고 싶다고 했고, 원장님도 나에게 도움이 되실 것 같다고 해서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3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매주 여러 모습의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8명의 사람들과 불안장애 치료에 관한 내용을 듣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었다. 다양한 나이, 다양한 직업,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불안장애 모습을 바로 접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여전히 불안장애를 겪고 있고 때로 많이 불안해지거나 긴장하게 될 때면 불안장애 약을 먹기도 한다. 원장님이 무능하다고 느껴졌었다면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집에서 가깝지도 않은 논현동까지 원장님과 대화 나누기 위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던 나는 불안장애와 관련된 것이라며 많은 것들을 찾아 들었었다. 전공이 아동상담이다 보니깐 여러 전문과 과정을 신청해서 밟기도 했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MIT 박사가 명상과 요가를 바탕으로 만든 MBSR 지도자 과정이었다. 마음챙김을 기반으로 한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Mindfulness-Based Stress Reducion)의 약자인데 실리콘 밸리의 명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종교가 불교도 아니었고, 명상을 해본 적도 없던지라 MBSR 지도자 과정에 나를 적응시키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마치 공대에서 아동학과로 편입하고 학교를 다닐 때처럼.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세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교육비가 참 비쌌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비싸다고 느껴진다. 두 번째로 인상에 남는 건, 8명 정도 인원이 과정을 밟았었는데 매 시간마다 원장님에게 질문하고 질문했었고 원장님은 매번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인 답변만 주셨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심리학적 베이스가 강했고, 원장님은 명상적 베이스가 강해서였을 수도 있고, 성격의 차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은 지금도 가끔 활용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바로 건포도이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원장님이 건포도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건포도 하나를 명상을 하듯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한 시간 동안 먹었다. 말이 물처럼 흘러가듯 말해서 다시 이야기를 하면, 작은 건포도 하나만을 갖고 그 건포도 하나를 한 시간 동안 먹은 것이다. 그 작은 건포도를.


나에게 있어서 마음챙김이라는 것, 그리고 MBSR은 그 작은 건포도 하나를 한 시간 동안 먹는 것과 같았다. 어떤 한 대상을, 극강의 집중된 순간안에서 붙잡고 아주 깊이 음미하는 것 말이다. 무언가를 깊이 있게 음미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정도를 넘어선 깊은 음미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 시간 동안 건포도를 만지고 냄새 맡고 조금 베어 물고 씹고 쪼개고 누르고 과즙이 나오는 찰나의 순간을 붙잡고. 아주 미세할 정도의 변화를 감지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 감정이 들어올 틈이 없는 극강으로 집중된 경험을 했던 것이 뭐 대단히 많이 알고 있다는 듯 질문하고 분석하고 질문하고 반론을 펼치고 있던 그때의 나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다.


너무 많은 생각과 분석에 붙잡혀 있어서 실제하는 순간에는 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내가 살고 있고 밟고 있던 것들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너무 정갈하고 맛있는 장인이 만드는 수준 높은 한 정식 같다고 해야 할까.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떡볶이, 샐러드를 좋아해서 딱 그 과정을 마스터하는 것까지만 하고 내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내가 논현동 원장님을 계속 찾아가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고 보면 능력이 있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제거해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불안장애를 겪고 있지만 원장님을 찾아간다. 나에게 좋은 기운과 영감, 안정감과 유연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해결책을 받는 것보다 더 특별한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쉽게 만날 수 없기 때문에 특별하다.


약은 저번처럼 처방해주면 될까요?


나는 요즘 기분이 너무 안좋은데 우울증 약을 먹어보는 건 어떨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먹어보고 싶으면 처방해주면 되는데 불안장애 약처럼 먹으면 바로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먹어야 효과를 느낄 수가 있는 거여서 사용법이 좀 달라요.


나는 꾸준히 먹어야 효과를 느낄 수 있다는 말에 그러면 괜찮다고 했다. 우울한 것은 맞는데 그렇다고 약을 먹을 필요가 있어서라기보다 호기심에 겸사겸사 한번 먹어볼까가 더 컸었기 때문에 우울증 약은 받지 않기로 했다.


나는 딱히 정신과 약에 거부감도, 의존성도, 그리고 효괴도 그렇게 있는 편도 아니여서 그냥 타이네롤 정도로 생각한다. 불안장애 약도 나는 불안함이 없어진다기보다 그냥 조금 덜 불안해지고 둔탁해지는 정도가 다였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심적으로 힘들어 했었는지도 모른다.


효과가 없고 어쩔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듯 나는 심적으로 많이 무너져버리게 된다. X로 인한 놀람과 상처, 두려움과 무서움이 어느 정도 사라지자, 난 깊은 회의감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원장님과의 시간은 무언가 생각해보고 싶고 찾아보고 싶은 기분을 줘서 고마웠다. 무언가 해보고 싶지 않게 만들면서 해결책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을 제시하는 사람과 제시해주는 해결책은 없지만 무언가 해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 그 차이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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