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와 홀로 남겨진 집

by 연남동 심리카페

나는 심리카페에서 상담을 하기에 앞서서 어떤 것이 궁금한지에 대해 물어보는데, 생각해보니 그 말보다 먼저 하는 말이 있다.


여기는 소개 받고 오셨나요,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오셨나요?



내가 어느 정도로 어떻게 이야기를 드리는지 알고 오신 것인지 알기 위해서이다. 하얀 옷의 여자분인 B는 소개를 받고 온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어떻게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여쭤보았고 B는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눈물에 이성적이시라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주다보니 긍정적인 이야기를 못 들을 수도 있다고.


'눈물에 이성적이다'라는 말을 들으니 뭐랄까 좀 서운하게 느껴졌다. 나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 아닌데 라는 심정이었다.


눈물에 이성적이라는 말을 듣고 불편하거나 걱정되지는 않으셨어요?
아니요, 얘기해준 언니도 너무 좋았다고 다음에 혼자서도 가볼 거라고 얘기해줬어요. 무척 위로받는 기분이였다고 했거든요. 저는 빈말로 하는 말 듣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소개시켜준 언니도 그렇고요.


B의 얘기를 듣고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언제나처럼 '어떤 것이 궁금하신지,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드렸으면 하는지'를 여쭤보았다.

특별히 알고 싶거나 궁금한 것은 없어요. 아는 언니가 며칠 전에 저 만나서 이야기 나누다가 제가 걱정된다며 여기 얘기를 한 거거든요. 한 번 가보면 좋을 거 같다고. 그냥 하시는 대로 하시면 되실 것 같아요.


B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B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예약이 들어왔을 때 예약과 함께 메모가 남겨져 있었는데 잘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메모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 남자친구와 방문했던 사람이예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렇게 메모를 남긴답니다. 저는 지난 번 상담 때, 그 동안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하고 숨겨왔던 내면의 모습들을 선생님께서 알아주셔서 눈물이 많이 났었어요. 그 이후로 너무 감사했고 힘이 나기도 했답니다. 선생님과의 상담이 아직까지도 마음 속에 남아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드리고 싶은 부탁은 제가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동생이 있는데 작년 겨울의 저처럼 최근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요즘 많이 힘들어하고 있거든요. 며칠 전에 만나서 보니 웃으며 괜찮다고 하지만 너무 걱정되고 위태로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동생에게 이야기를 하고 제가 이렇게 대신 예약을 했답니다. 그때 제가 선생님을 통해 경험했던 것을 이 친구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세요. 선생님의 도움이 지금 이 친구에게 필요할 것 같아 이 친구를 선생님에게 보낼게요. 잘 부탁드려요.



위태로워 보였던 이유


B는 폴댄스를 한다고 했다.


저는 운동하는 거랑 춤 추는 것을 좋아해요. 요즘은 폴댄스에 빠져있죠. 여기 소개해준 언니가 저를 걱정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나는 폴댄스를 하는 것이 왜 걱정하는 이유가 되는지 물어보았다. 폴댄스가 위험해 보이고 걱정하게 되는 그런 것인가 싶었다.

폴댄스 자체는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제가 폴댄스를 할 때 고난이도의 위험한 동작을 하는 것이 문제죠. 언니는 그걸 걱정하는 거예요.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친한 언니가 B를 많이 걱정해주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들으니 염려가 되는 상태였었다.


폴을 잡고 회전을 강하게 걸다가 날라가서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바닥으로 바로 떨어지기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팔이 빠지기도 했고 한번은 일어날 수 없어 응급실에 갔더니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신기해 해요.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지.

B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었는지 민망해하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운동을 많이 하는 분이셔서 그런지 자세가 반듯하고 몸이 다부져 보였다.

그래도 저 폴댄스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어요. 전 정말 폴댄스를 하고 있을 때가 좋거든요.


폴댄스의 어떤 점이 좋은지를 물어보았다.

폴댄스는요, 다른 것보다 폴에 올라가면 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 순간에 온 집중을 하게 되요. 다른 것을 떠올리고 생각하고 느끼고 하지 않게 떨어지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아요. 다른 건 다 잊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아요. 폴댄스는 저에게 신세계 같아요.





사실 언니가 절 걱정하는 이유가 한 가지가 더 있어요. 자살 시도를 했었거든요. 며칠 전에 언니를 만났던 것도 그래서였어요. 언니가 그랬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서 왔었거든요. 절 보고 많이 울더라고요. 전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절 보고 울어주는 사람이 있어서요. 여기도 사실 언니가 원해서 온 거예요.


나는 심리카페를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과연 우리들 중 몇 명이나 건강하게 잘 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전혀 다른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살아내가는 모습을 접할 때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저는 고통 속으로 들어가요. 분명 제가 짝사랑 같은 걸 하지는 않거든요. 저한테 잘해주고 절 좋아해주는 사람들만 만나는데 제가 문제가 있거나 이상한가봐요. 그냥 자꾸 불안하고 초조해져가요.


B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살던 집에서 살고 있는데 예전과 달라진 점은 그 집에 혼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동생이 각자 다 뿔뿔히 떠났고 그녀만 가족과 함께 살던 집에 혼자 생활하는 중이라고 했다. 마치 빈 둥지에 살고 있는 것이었다.


저의 집에는 TV가 없어요. TV를 잘 안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 TV가 있으면 뭔가 가족과 함께 사는 집 같아서 없앴어요. TV를 보고 있다가 어렸을 때처럼 이 집에서 함께 TV를 보고 있던 장면이 떠오르면 걷잡을 수 없이 너무 외롭고 슬퍼지더라고요. 그 우울함이 너무 깊어서 TV를 없앴어요. 마음이 힘들어지지 않았으면 해서요.


지금 사는 집이 마음을 힘들게 한다면 다른 집으로 이사가서 생활하는 것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는데, 그러면 가족이 돌아와 다시 모일 곳이 없게 되잖아요. 제가 여기에 있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가족이 아닌 것이 되는 거 같아서 그럴 수가 없어요. 가족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가족인데.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면,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고는 부모님은 많이 바쁘셨고, 많이 싸우셨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동생을 챙기며 엄마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 방법을 모르기도 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 엄마, 아빠를 실망시켜드리거나 신경 쓰이게 해주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다고 했다. 칭찬과 인정,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동생을 많이 혼내고 통제했다고 했다. 동생이 잘못되면 안 되니깐 말이다.


그녀가 더 폴을 붙잡듯 폴에 빠져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은 가족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그녀에게 갑자기 통보식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각자 자기의 일을 그녀에게 허락을 받거나 동의를 구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 있는 사람이 놓이고 겪게 될 것을 고려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그녀의 가족은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도, 그로인해 아버님은 다른 곳으로 가고, 어머님은 간병을 해주는 곳에서의 생활하게 되고, 동생은 남자친구의 집으로 가서 동거를 하고, 그렇게 B만 집에 혼자 놔두고 떠나가는 일을 그냥 주어진대로 겪어야만 했었다. 잠시가 아닌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어떤 날은 그냥 집에서 아무 이유 없이 하루종일 울기만 했던 적도 있어요. 그냥 집에 있는데 서럽고 제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리고 텅 비고 정막하게 느껴져 무섭고 외롭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길 잃고 갈 곳 없는 어린 애가 울듯 방구석에서 울었어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지 않고 방에서만요. 나가면 더 혼자란 느낌이 들 거 같은 게 싫었어요. 또 그러다가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벽만 보고 있기도 하고요.


그녀는 가족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그녀를 집이라는 공간에 혼자 놔두고 떠나기 전에는 가족들과 함께였었을까? 이미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심리정서적으로 방치되고 단절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감정의 결, 상태의 결에 맞는 반응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 뿐만이 아니라 성인이 된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어린 아이였을 때에도, 성인이 된 지금도 심리정서적으로 교감과 공감을 나누고, 그녀의 감정의 결, 상태의 결에 맞는 반응을 해주는 사람이, 그런 사람과의 경험이 얼만큼 있었을까? 있기는 했을까?


B가 자신과 사귄 남자친구들이 자신에게 잘해주고 좋아해줬는데 자신은 자꾸 불안하고 초조해져 갔다는 말에서 과연 그동안 만났던 남자친구들이 공감적이고 교감적인 사람들이었는지, 구애행위로 B를 대했던 것인지 살펴보게 되었다. 공감적인 것과 공감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공감적인 표현을 하는 데에 있어서 상대의 기분과 감정, 마음 상태에 대한 아무런 느낌이 없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상대를 먹잇감으로 생각하면 된다. 내가 갖기 위해 필요한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보이는 공감적인 모습은 공갈빵 같다. 그럴싸해보이지만 안은 텅 비어 있다.


B 역시 그동안 접했던 모습들이 공감과 교감은 빠져있는 구애행위 아니였을까? 누군가 자신에게 잘해주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사람이 시연하는 구애행위를 접하고 있어서 불안하고 초조해졌던 것은 아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에게 공감적인 것과 그냥 자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공감적인 표현을 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B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물었다.


선생님은 많이 감성적이고 공감적이신 거 같은데 누군가의 눈물에 이성적인 이유가 있으신 건가요? 혹시 지금 이야기해주신 것들과 관련이 있는 건가 싶어서요.





누군가의 눈물에 이성적인 이유


지금의 나는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고 운다고 해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나지는 않는다. 우는 모습을 드라마 연출을 위한 인공눈물 넣듯이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그 뻔뻔함에 화가 나기도 한다. 누군가의 눈물에 이성적인 이유가 있느냐고? 구애행위인지 아닌지, 공감적인 것인지 공감적인 척 하는 것인지에 대한 분별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고?


나의 눈물은 심리카페에서 내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감정적으로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려 하는 점도 있다. 하지만 좀 더 뿌리 깊은 이유는 가짜 눈물 연기에 놀아나고 싶지 않아서이다. 종종 같이 온 상대에게 절절하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며 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자기 중심적으로 감정을 터트리고 그것으로 상대를 핸들링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민낯에 대해 상당히 깊게 보고 깨닫게 된 이후로 난 아무 눈물이든 눈물만 흘린다고 해서 감정을 이입하지 않는다.






2014년 어느 가을날,

나는 유치원을 운영하며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였다.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있지 않다보니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결혼 상대를 만나곤 했었다. 그러다 M을 만나게 되었다. M은 음악을 전공했고, 홍대에서 실용음악 학원을 운영하며 연주 공연을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이후로 문자와 통화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M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다며 대화를 하다가 M이 울면서 사실 자신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갖고 있고 그래서 약도 먹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지금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보여지고 생활하는 이미지, 소개 받을 때의 프로필과는 분위기가 다른 모습이었지만 나는 M이 안쓰러웠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M은 자신이 많이 불안하고 우울해지곤 하는 것에 대해 울먹였고, 나는 M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나도 불안장애를 갖고 있었고 지금도 때에 따라서 신경 안정제 약을 먹기도 한다고 이야기해주며 안심시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모습과 나의 이야기, 나의 사연이 M이 덜 속상해하고 덜 힘들어 할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괜찮았다.


다음 날 점심, 그날은 무척이나 날씨가 화창했었다. 나는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고 전화를 보니 결혼정보업체 매니저 번호였다.

회원님, 매니저예요. 뭐 좀 한 가지 확인을 했으면 해서 연락을 드렸어요.


나는 어떤 것인지 물어보았다. 매니저는 조심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혹시, 회원님 정신과 약 드시는 것이 있으세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당황해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무슨 말, 어떤 반응을 해야할 지 떠오르지 않았고 그냥 멍했다. 무언가 창피한 것인지, 당혹스러운 것인지, 뭔가 턱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 때문에 그런지 매니저에게 물었다.


이번에 만나신 M님이 자기 매니저에게 회원님이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이라며 만남 연결시킨 것에 대해 컴플레인을 걸어오셔서요. 내용 확인차 연락을 드렸어요.


나는 어젯밤 울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여리고 약한 M의 모습과 오늘 오전에 자신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서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을 자신에게 어떻게 소개해줄 수 있냐고 컴플레인을 걸며 만난 카운팅 횟수를 복구해달라고 따졌다는 M의 모습이 번갈아가면서 떠올랐다. 분명 다른 모습인데 같은 사람이 보인 모습이라고 한다. 이게 지금 가능한 것인가.


나는 정신과 약을 먹은 적이 있고, 지금도 필요하면 먹기도 한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매니저는 별다른 말 없이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따. 나는 내가 서 있던 보도블록에 걸터 앉아 고개를 떨구고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았다. 어떤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퓨즈가 나가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M에게 문자를 보냈다. 매니저를 통해 듣게 된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나는 바로 답장을 하는 M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미안함이 없으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바로 답장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오빠는 여기에서 한 번 만나는 것이 부담이 없으시겠지만 전 비싼 돈 내고 만나는 거예요. 그리고 문제가 있는 거 미리 안 밝혔잖아요. 비겁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저한테 미안해 해야죠. 불량품 속이고 파는 거랑 같은 행동을 하신 거잖아요.


누군가의... 음... 누군가의 약한 부분, 아픈 부분, 힘든 부분을 이렇게 표현하고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반응을 할 수가 있다고? 이런 건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나 할 법한 거 아닌가? 내가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과 약을 먹기도 한다는 것이 숨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고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이렇게 취급을 하는 M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데 M의 진짜 민낯은 1년 뒤에 보게 되었다.


나는 그날 눈물에는 자기중심적인 눈물, 감정적이고 감상적인 눈물, 도구적인 눈물, 타인의 기분 감정에는 감응을 하지 않는 눈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흘리는 눈물이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에도 감응을 하는 사람임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더 큰 깨달음은 2년이 지난 어느 가을 날의 밤이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받아보니 M이였다. 울고 있었고 그때 미안하다고 했었다. 그때의 기억은 선명했지만 아무런 감정은 없었다. M이 어떻게 지내냐고 해서 연남동에서 카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반가워했었다. 그때 기억이 났다. M이 홍대에서 음악 관련 학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카페에서 만나기로 하고 며칠 뒤 M이 카페에 놀러 왔었고 며칠 뒤 전화를 해서 줄 것이 있다며 카페에 있냐고 물었다. 잠시 후 M이 카페에 왔고 도시락을 나에게 건네면서 집에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도시락만 주고 갔다. 도시락을 열어보니 드라마에서 볼 법한 과일들과 김치볶음밥이 답겨 있었다.


나는 도시락을 먹으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코스프레를 하는구나. 어쩌면 2년 전에 내가 겪었던 일보다 그날 정성스럽게 만든 김치볶음밥이 담겨 있던 도시락이 나에게 X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분별하게 된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감성적인 모습의 연출을 하며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해.


종종 심리카페에서 커플들 상담을 해드리다보면 X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본다. 어떨 때는 막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를 어필하거나 호소하는 연출들을 한다. 상당히 감성적이고 여리고 공감적인 사람인양. 하지만 그림검사의 그림이나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그리고 살아오면서의 모습들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보게 될 때, 그러한 그들의 민낯을 함께 온 사람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할 때가 있다. 처음 X가 X의 그녀와 왔었을 때처럼.


그럴 때 나는 죄책감 같은 미안함을 느낀다. 헷갈리게 만드는 그들의 모습이 사실 헷갈릴 것이 없는 참 한결 같고 일관된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내가 그렇게 X의 그녀에게 X와 같은 사람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어 했고, 그렇지 못했을 때 죄책감 같은 미안함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나는 X의 그녀가 부디 X와의 관계를 끝내길 바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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