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죄책감 같은 미안함을 느꼈던 이유와 마음에 온
내가 죄책감 같은 미안함을 느끼는 이유
나는 심리카페를 하기 전에 놀이치료센터와 유치원에서 일을 했었다. 놀이치료센터는 성인들이 심리상담소나 정신과에 가듯 아이들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가는 곳을 말한다.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으로 아동 상담을 전공하고 있었던 나는 자연스럽고 운이 좋게 놀이치료센터와 유치원에서 일을 할 기회들이 있었다.
저 제주도에서 놀이치료 센터를 열 건데 몇 번 와서 봐주지 않을래요? 센터에 선배 타이틀 걸어놓고 가끔 오셔서 봐주기만 해도 효과가 분명 있을 거거든요.
그런데 그 제안들이 그닥 끌리지 않아서 흘려듣고 했었는데 인상적인 제안이 온 적이 있었다.
선배, 이번에 저 아는 선생님이 새로 놀이치료센터를 오픈했는데 좀 힘드신가봐요. 같이 운영을 할 사람을 찾던데 선배가 떠오르더라고요. 아동상담을 전공하고 있고 남자이고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고, 좋은 기회인 거 같은데 제가 연결해드릴까요?
나는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그리고 석사과정이었을 때 놀이치료 센터에서 인턴으로 일을 했었다. 놀이치료센터를 운영해볼 기회라고 하니 관심이 갔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 오픈한 놀이치료센터에서 부소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일주일에 이틀은 그곳으로 출근을 했다.
내가 운영하고 있었던 유치원과 새로 출근하게 된 놀이치료센터가 멀지 않아서 내 유치원에 다니는 학부모들 중에서도 내가 일하게 된 놀이치료센터를 다니기를 바랐던 분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일주일에 5일을 등원애서 생활하는 유치원에서의 모습과 놀이치료에서 진행하게 되는 시간 모두를 관찰하고 개입할 수 있는 점이 있어서 더 바라셨던 것 같다. 놀이치료 센터에서 아이를 담당 하는 놀이치료사와 유치원에서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서로 아이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게 연결해준 것이 특별했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잊히지 않는 한 어머니 Q가 있다. 바로 Q가 나의 이유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분이다. 난 이 분이 나와 상담을 하며 이야기해줬던 말과 그때의 표정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결혼하면, 달라질 줄 알았어요.
그래도 아이가 태어나면 달라질 줄 알았어요.
눈물을 글썽이며 했던 이 말과 실제로 유치원에서 보이는 아이의 부적응적인 모습,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가 너무 불쌍했다. 아이도, Q도,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아이와 '착한 아이 콤플렉스'인 채로 어른이 되어 있는 어머니. 둘 다 버림받고 싶지 않고,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눈치보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반면, 남편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Q를 너무도 잘 이용하고 있었다. 버림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 아껴주는 말을 미끼처럼 주면 문을 열어놓아도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학부모 참여 수업 때 보여주는 남편의 모습, 아이 등원 때 볼 수 있었던 남편은 모습은 참 주위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사랑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떤 표정,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면 상대가,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좋아하고 좋게 보일지를 너무도 잘 연구해서 갖추고 있는 사기꾼의 모습이었다.
Q는 남편의 그런 모습에 대해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하면, 아이가 태어나면 그래도, 뭐라도 달라질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가 '~을 한다면, ~만 하기만 하면'이라는 어떤 조건부 생각은 내가 갖고 싶은 것에 대한 바람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나 중심적인 생각인 것 같다.
남편의 뻔뻔함은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통해 더 알게 되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주말과 밤에 문자를 보내고 연락을 한다는 것이다. 왜 연락이 안 되냐, 애인이랑 있냐, 어디 같이 가지 않겠냐 등의 말들도 하면서 말이다. 워낙 매력 있는 외모와 싹싹하고 서글서글한 언변, 그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분위기가 발뺌을 하면 그만인 것처럼 보였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속태우는 것은 담임 선생님이였다. 사랑꾼이 아닌 사기꾼.
그 사람의 민낯을 드러낼 때가 되면 그 동안 좋게좋게 생각해오면서 넘어가고 받아주고 했던 자기 자신이 비참해진다. 그 모습을 한동안 Q를 보지 못하던 어느 여름날, Q의 전화를 받고 듣게 되었다. Q는 혼자 유치원으로 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 불성실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확인을 해주세요. 저보고 가정 살림과 양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책임했었다고 해요.
무책임. 우리는 Q에게 담임선생님에게 남편이 연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원에 그러한 사실을 알렸으니 더는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얘기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었었다. 그랬던 사람이 무책임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참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없는 순도 100% 뻔뻔함으로 느껴졌다. 그는 찐이였던 것이다.
Q와 그 남편은 결국 이혼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남편이 Q를 상대로 걸고 넘어갈 것은 모두 걸었던 것이다. Q는 결혼 전에도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었다고 말을 했었는데, 과연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 유무로만 알았지 어느 정도까지 그런지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알았던 거 아니었을까? 그런 것보다 자신의 결핍을 충족시켜주는 것에 더 주의가 쏠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얼마나 미안함이나 창피함이나 부끄러움 같은 것이 없으면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다. 싹싹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과 무언가 이상한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면 후자가 진짜 모습, 그 사람의 민낯인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싹싹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는 처음부터 너무도 한결 같은 모습을 일관성 있게 보여줬던 것이다. 최소한의 공감과 교감을 나눈다면 불편해서 그렇게 못하고 안할텐데 스스로 자신의 뻔뻔함과 이중적임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한 여름 땡볕에 서류를 들고 원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던 모습이 난 여전히 선명하다. 참 많이 지쳐있었고, 참 깊게 주눅 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불쌍했고, 그런 시간을 겪지 않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었다.
그때의 그 마음과 감정은 그 이후로 접하게 되는 X 부류의 사람들을 더 주의깊게 보고 파악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카페에서 해주고 있는 그림검사도, 변형시킨 문장완성검사도,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와서 계속 보여주는 모습들에 대한 관찰도 X 부류의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을 분별해내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심리카페를 하면서 4천명 정도의 사람들을 그림검사를 바탕으로 상담을 했었다. 그 안에는 X 부류의 사람들도 참 많았다.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 반응, 패턴들이 자꾸 쌓여간다. 나도 그들의 모습이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반복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다른 곳에서 접하게 되는 내용과 그 결이 다른 이야기를 접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피상적이고 무턱댄 희망적인 이야기는 못하다 보니깐 말이다.
나는 나의 시간의 경험이 좀 신기하게 되어 있다. 어릴 때 다르게 자랄 수 있다면 다른 삶을 살텐데라는 생각으로 공대에서 아동학과로 편입을 하고 이쪽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을 하다보니 본질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애당초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관계가 있었다고. 그런 시간을 겪거나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탁상공론을 펼치는 사람들처럼 참 이상적인 생각, 분석적인 말을 잘 꺼낸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불편하다.
저도 이런 제가 안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하면서 계속 스스로에게 말해주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요. 저도 이제 그만 괜찮아지고 싶어요.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에 지쳐가요. 어디가 시작점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의 제가 너무 서글퍼져요.
이 세상에는 날 이해해줄 사람, 나의 이야기를 꺼내도 될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저에 대해 제가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저를 알아줘서 속으로 정말 많이 놀랐었어요.
요즘 혼자 있을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루 종일 울고 힘들어하고 있어요. 왜 이러는 건지 그 이유도 알 수 없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조금만 뭐가 잘 되지 않으면 손이 떨릴 정도로 심하게 불안해하고 예민해져가고요. 뭐가 힘든지는 모르겠는데 힘들어요.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선생님을 찾아왔어요.
내가 심리카페를 하면서 접하게 되는 반응들이다. 그런데 이 모습들이 나에게는 예전에 나의 모습들이기도 하고, 내가 접했던 분들의 모습이기도 해서 이성적으로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섬세하고 좋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X로 인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보게 된 연남동 심리카페의 시작 과정은 참 투박하고 밥벌이로써 적절하지 못하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이성적이지도 분석적이지도 계획적이지도 않아서 그런지 내 생각과 방식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나대로 너무 지쳐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두 거점 라이프,
월요일에 제주도 퇴근,
목요일에서 서울로 출근
그러다 우연치 않게 제주도를 가게 될 일이 생겨졌고, 나는 혼자 제주를 가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한 것이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생활하는 것이었다. 나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되니깐 연남동 내 카페에서 하는 대로 제주도에서도 상담을 해주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연남동 심리카페를 만들 때에도 3개월 정도를 찾아 다녔다.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기 전까지는 시작할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서울에 있는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아 다니다가 지금의 연남동 심리카페 장소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처럼 나는 X와의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매주 주중에 제주도에 가서 내가 상담을 해줄 만한 공간을 찾아 다녔다. 제주도는 서울만큼 예쁘고 좋은 카페들은 많았지만 마음에 딱 드는 그런 곳을 찾지 못해서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큰 기대 없이 찾아갔던 카페가 있었다. 핸드폰의 지도를 보면서 찾아갔던 곳인데 처음에 그냥 지나쳐 갔다. 걸어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순간 뭐지? 핸드폰의 지도 상에는 내가 카페를 지나간 것으로 나오는데 카페가 있었나 싶었다.
다시 돌아가서 보니 카페 입구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입구 같았다. 이런 곳에 이런 입구가 있다고? 그런데 그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정말 감탄사가 나왔다.
우와, 와, 이렇다고?
정말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였다. 카페는 오래된 한옥을 손봐서 만든 분위기였는데 인위적인 느낌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음료를 마시며 카페 안을 보면서 결심했다. 이곳이다. 사실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결정은 났었다. 이제 사장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남았는데 내 결심과 결정보다 사장님의 허락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내 결심과 결정, 바람이 뭐가 중요한가 사장님이 안 되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데.
나는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서 다음 주에 준비해서 다시 오기로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로 가서 나에 관한 자기소개서 같은 것을 준비해서 출력하고 그 다음 주에 다시 찾아갔다. 나는 사장님에게 준비해 온 것은 건네며 여기에서 상담을 해도 괜찮은지를 여쭤보았는데, 사장님의 반응을 보고 두 번째로 '와,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말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냥 바로 그렇게 하세요. 얘기를 안 해주시고 하실 수도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시니 고맙죠. 상담 손님들에게 여기 오시길 안내해주실 때는요...
30대의 남자 사장님이셨는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바로 그래도 된다고 얘기해주셨다. 나도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와서 뭘 제안을 하면 경계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허락을 해줄 수도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렇게 나는 "마음에 온"이라는 카페에서 주중에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목요일부터 월요일은 연남동에서, 화요일과 수요일은 제주도에서, 그렇게 나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생활하는 일상을 만들었다.
2022년 12월 21일, 제주시의 한 호텔.
창가쪽에 잘 세팅된 테이블과 호텔에서 볼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있고, 젊은 청년들이 나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전 신청을 받아 진행을 하는 것이지만 신청한 사람들이 많아서 동시에 세 분씩 해드리는 방식으로 짧게 상담을 해드리는 시간을 만들어드리고 있다. 행사 진행을 맡으신 분들이 나는 상담에만 집중할 수 있게 사람들을 안내해주셔서 감사했다. 나도 호텔이라는 곳에서 그림검사를 바탕으로 고민 상담을 해드리는 것이 처음이라 참 신기했다.
이런 기회가 생긴 건 한달 전 쯤 걸려온 전화에서 시작된다. 나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생활하는 시간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지루해지지 않고 매주 새롭고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1년만 해야지 정도였었는데 얼만큼 더 할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월요일 저녁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해 제주 집에 들어가던 참이었다.
여보세요.
연남동 심리카페 사장님이시죠?
한 여자분이였다. 어떤 일 때문에 전화를 주신 건지 여쭤보자,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 제주도에서도 상담을 해주고 계시다는 것을 보았어요. 저는 공연 기획일을 맡아서 하는 회사인데요. 이번에 제주도에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크게 행사를 진행하는데 혹시 심리카페에서 해주시는 그림검사를 바탕으로 해주시는 상담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너무 흥미로워서요.
전화 주신 분은 회사 대표님이셔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제주 in 청년 브릿지 데이>라는 행사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대표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는 것에서 나는 더 하겠다고 대답해주었다. 어쩌면 '마음에 온' 사장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면 오픈 마인드로 맞아주는 모습 말이다.
그렇게 나는 하기로 했고, 그날이 오늘이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그림들과 포인트 되어지는 질문을 하면서 간단한 고민 상담을 해드리는 거라 지치기는 하지만 참 인상적이고 좋았다. 그리고 오늘은 '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자 발표가 있는 날이여서 더 마음이 쓰이는 날이었다. 나는 기획된 시간동안 신청해주신 분들의 상담을 해드리고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해보았다. 혹시 브런치에서 연락이 온 것이 있을까 하는 바람으로 핸드폰을 켜보았는데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이 있었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클릭해보니, 발송자가 브런치팀으로 되어 있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온 메시지였다.
<마음에 온> 카페 사진
<마음에 온> 카페 사진
2021년 <제주 in 청년 브릿지 데이> 상담 사진
2021년 <제주 in 청년 브릿지 데이> 상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