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앱 '힌지'로 만난 우리

by 미경

데이팅 앱 '힌지'에서 진지한 관계를 맺을 확률이 높은 이유는 힌지에 가입하는 데에 굉장한 품이 들기 마련이다. 원조 데이팅 앱인 '틴더'의 경우 아무 사진 한 장만 업로드하면 가능할 정도로 가입이 굉장히 쉬웠는데, 덕분에 큰 노력 들이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룻밤 상대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도 했다. 반면, 힌지는 사진도 최소 5장은 올려야 하고, 나이와 성별은 물론, 자신이 어떤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이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으로는 어떤 것이 있고, 데이트 스타일은 어떠하고, 어떠한 사람을 어떠한 목적 하에 만나고 싶은지에 관해, 정말 너무할 정도로 꼬치꼬치 깨물어서 가입하다가 진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입해서 상대방들의 프로필을 보다 보면, 그래 이 사람들도 이 귀찮은 절차를 모두 마친, 누군가를 조금은 진지한 마음으로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겠지라는 어느 정도의 신뢰가 생겼다. 또 한 가지 좋은 것은, 자신이 짧은 만남의 상대만을 찾는지, 긴 만남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는지, 혹은 인생의 동반자를 찾는지 앱을 이용해 만남을 갖는 목적이 명백하게 구분되어 표시되게끔 해놓아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했다. 내 경우는 긴 만남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람을 찾고 있다고 선택했던 것 같다.




이렇게 이용자들에 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힌지는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들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새벽 4시, 이른 시간에 일어나 일을 나가는 룸메이트 하나가 출근 준비를 하다가 소리를 좀 내는 바람에 자다가 깨었고, 잠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도 깨어 버리고 핸드폰을 들어 힌지에 어떤 사람의 프로필이 새로 올라왔나 간단히 확인하려고 앱을 열었는데 힌지에서 추천이 들어와 있었다.


호주 사람이고 나이는 26살, 11살 아래였다. 첫 사진은 눈 쌓인 산 아래 멋진 호수를 배경으로 해 겨울 옷을 입고 찍은 상반신 사진, 차분한 인상에 웃는 모습이 굉장히 선 해 보였다. 다른 사진은 자기 집에서 거울에 비친 전신을 찍은 사진, 키가 크고 체격이 듬직해 보였다. 마지막 사진은 두 손을 다 들고 점프하며 공중에 떠 있는 사진, 위트도 어느 정도 있어 보였다. 직업은 약사, 약사가 되기까지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말인데 어느 정도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 같았다. 지금 갖고 있는 인생의 목표는 스페인어 배우기, 다른 문화에 관심도 있어 보였고, 좋아하는 데이트는 함께 오래된 명작 영화들을 연이어서 보기,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취향도 통할 것 같았다. 여러 면에서 잘 맞을 괜찮은 사람 같아 대화를 나누고 싶어 '좋아요'를 누르고 잠이 들었고, 오후 즈음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예쁘다며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물어봤고, 부산에서 찍었고,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언젠가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추천하는 장소가 있는지 물어봤다. 차분하고 천천히, 넓은 시간 간격으로, 하지만 둘의 대화의 참여도는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며칠간 메시지가 오갔고, 커피를 좋아하는지 물어봤다. 플랫화이트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사실 그건 나와 커피 한 잔 하기 위한 교묘한 수작이었다며 같이 카페를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호주의 카페는 철저히 사람들의 아침을 열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는데, 보통 새벽 6시에 문을 열어 오후 1시를 전후해서 문을 닫곤 한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너무 이르지 않게 만나 카페에 같이 가서 대화를 할 충분한 시간이 나오려면 오전 10시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가 일을 쉬던 어느 수요일 오전 10시 브리즈번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끝단을 바지 속으로 깔끔하게 넣은 회색 티셔츠와 적당한 통의 일자 청바지, 남색의 모자를 쓴 그는 사진보다 훨씬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 보였다.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는 편이었어서 긴장이 풀리고 평소에 생각하던 주제들에 대해서 말을 엄청 많이 쏟아 놓았다. 정오쯤 되자 야외 테이블 밖에 없던 카페에 해가 너무 강하게 들어와 덥고 눈이 부셔 앉아있기 힘들었는데 그가 나가서 좀 걷자고 했다. 브리즈번 시내 중심가에 있던 우리는 다리를 건너 강 건너편 미술관으로 향했고 가는 내내 이야기를 이어갔다. 미술관에 도착해 들어가서 관람하며 이야기할까 하다가, 그러면 어느 정도 소리를 죽여 이야기해야 하므로 그냥 강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그는 최근에 읽은 책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이안 감독의 영화 '음식남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나에게 평소 어떤 감각을 주로 사용하며 생각하는지, 시각 이미지를 활용한 상상을 많이 하는지 물었고, 그 질문은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퍽 마음에 들어서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두 시쯤 되었을까, 네 시간에 걸쳐 수다를 떤 우리는 배가 고파져 강을 다시 건너 시내로 돌아가 대만 음식을 먹었고, 그날 저녁에 마리오카트 토너먼트 이벤트 진행을 해야 했던 나는 호스텔로 돌아가 좀 쉬어야겠다며 4시쯤 헤어졌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으로 나갔지만 6시간이나 함께 있었고, 결국 우리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함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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