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에 처음 들어가 살기 시작할 때 나는 막 만 나이 37세가 된 시점이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올 수 있는 나이의 한도가 나라마다 다르지만 만 30세에서 만 35세, 그리고 나 역시 만 21살 되던 해 호주를 찾은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인 직업이 결정되기 이전인 20대 초반에 여유 시간을 내어 여행 겸 호주에 잠시 살러 온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호스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나이는 20대 초반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한국에서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온 E나,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다가 온 C는 사회생활을 하다 온 만큼 20살은 훌쩍 넘은 나이였지만, 각 만 27, 만 28살로 아직 20대 중후반에 지나지 않은 나이였고, 이렇게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가 인생의 항로를 다시 짜기 위한 방편으로 호주에 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30대 초반보다 어린 나이였다.
처음부터 나는 호스텔에서 살기에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기 시작했고, 다행히 동양인에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갖고 있는 데다, 사람을 만나 사귈 때 한국과 같이 나이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어울려 지내는 데에 큰 부담이 없었다. 내가 처음에 속해 있던 그룹은 나중에 E의 남자친구가 된 영국인 R이 21살로 가장 어렸고, 에콰도르에서 온 두 친구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한 친구는 4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었으니, 정말 다양한 나이대로 이루어져 다채롭고 좋았다.
그렇게 나이를 잊고 지내다가도 내가 여자로서 이성애게 매력을 어필하고 싶다는 순간이 올 때면 늘 자중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텔에 살고 있는 20대 남자애들에게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내가 예뻐 보이려 노력한다면 주책이라는 생각이 들어고, 그에 앞서 늙은 내가 여기 같이 살고 있는 20대 여자애들에 어떤 상대가 될 리가 없으니 헛물켜지 말자는 마음이 올라왔다.
요즘 한국 20대 친구들이 다들 얼굴도 예쁘고 더 잘 꾸미니 모두 정말 예쁜 게 사실이지만, 특히나 호스텔에 같이 살던 한국인 여동생 E와 C는 누가 봐도 정말 예쁘장하고 매력적으로 생긴 친구들이었다. 둘 다 호스텔에 사는 동안 무수한 남자들이 관심을 표시했으며, 호스텔에 살기 시작한 지 채 몇 주 지나지 않아 호감을 주고받는 남자가 생겼고, 결국 연애 관계로 잘 발전되어 호스텔을 나가 둘 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셰어하우스로 옮겨갔고, 또 현재까지도 호주 내에서 함께 잘 지내고 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나이도 너무 많고 외모도 특출 나지 않으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함께 사는 호스텔에 몇 달을 지내도 호감을 주고받는 상대 하나 찾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었고, 호스텔에 살고 안 살고를 떠나 이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B와의 관계의 늪에 빠져 힘들어하다 한국인, 영국인 커플 E와 R이 살고 있던 셰어하우스를 찾아 한참을 하소연하고 E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호주인 남자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었다. 나이도 너무 많고 예쁘지도 않은 내가 무슨 연애냐라고 저어하고 있을 때,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E가 그게 무슨 상관이냐, 연애하는데 나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나를 다그쳐댔고, E보다 6살이나 어린 R은 E의 말에 십분 동의하면서, 네가 연애를 하려고 마음을 먹지 않았을 뿐이지 한번 마음을 먹고 상대를 찾으며 분명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불을 댕겼다. 둘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가 조금 나 며칠 뒤 다른 한국인 C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볼까 고민 중이라고 했더니, C는 잘 생각했다며 요즘 데이팅 앱 '힌지'가 진지한 연애 상대를 만나기에 괜찮다고 들었다며 나에게 추천했다.
그렇게 데이팅 앱을 설치했고, 데이트를 원하는 상대의 나이를 설정할 수 있었다. 일단 가장 많은 사람들의 프로필을 보고 비교해서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넓은 범위로 설정했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아, 25살부터 내 나이 부근까지 설정했다. 그렇다고 20대를 만나는 것을 선호했던 것은 아니고, 이야기가 조금 통하려면 30살은 넘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프로필을 보고 데이트를 하고 싶은지 아닌지 결정할 때 대부분 30살 이상의 남자를 선택했다.
그러던 중 25살 영국인 남자와 둘 다 서로 호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살, 12살 연하라니 심지어 E와 C와도 몇 살이나 어리고 데이트를 할 엄두가 안 났는데, 그가 나에게 매우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했다. 외모도 그다지 어려 보이지 않고 굉장히 섹시해서 나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영어가 서툰 티가 나지 않게 메시지 하나하나도 상당히 신경 써가면서 보냈다. 곧 첫 번째 데이트를 했다. 런던에서 왔다는 그는 영국 억양이 과하게 섞이지 않은 아주 또박또박 잘 들리는 영어를 차분하고 멋진 톤으로 구사했다. 대화는 잘 흘러갔고 나보다 12살이 어리지만 대화 소재나 어투에서 전혀 나이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 간에 좋은 분위기도 느껴졌다.
첫 데이트 후 계속해서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그는 내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정말 즐거웠다고 나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했고 계속해서 애정 어린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 번의 데이트를 더 했고 데이트 자체는 역시 재미있었지만, 결국 그 이후에 사이가 소원해져 더 이상은 만나지 않았다. 인연은 끝났을지언정 나는 정말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나보다 12살이나 어린, 누가 봐도 훤칠하니 잘 생기고 섹시한 남자가 나를 데이트 상대로 선택하고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고 나를 보고 예쁘다, 아름답다, 매력적이다 찬사를 보내는데, 그제야 지난날 E와 R이 연애를 포기하고 있던 나를 격려하며 해주던 말이 실감 났다.
호스텔에 같이 지내던 여자 친구들은 내가 데이트를 시작했다는 것에 대해 함께 기뻐하고 설레어했다. 특히 같은 데이팅 앱 힌지를 이용해서 데이트를 하고 있던 30살의 아르헨티나 친구 A는 자신의 데이트 스토리를 공유하며 서로 연애 상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나도 한참이나 젊은 남자한테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나는, 호스텔 안에서도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꼈고, 아주 화려한 옷은 아닐지언정 편한 옷이 아닌 내 마음에 드는 예쁜 옷을 입고 지냈으며, 자세도 조금 더 당당하게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스텔 안을 오갈 때 갑자기 잘 모르는 처음 보는 남자들이 먼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 더 밝은 표정이 되었고 고개를 들고 다녔더니 사람들과 눈을 더 많이 마주치게 되었고 미소 깃든 인사를 더 많이 나누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