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둘이 보내는 시간들

by 미경

남자친구 C와 데이트를 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무렵 나는 그의 집으로 이사 들어갔다. 그는 시내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고, 두 명이 함께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크기라서 데이트할 때 많은 시간을 그의 집에서 보내다가 결국 함께 지내기로 결정했다. 호스텔에서 지낸 지 꼬박 1년이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호스텔에 지낼 때는 매일 같이 쏟아지는 새로운 얼굴들을 익히고 관계를 유지하느라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컸다. 친한 그룹 친구들과 함께 지낼 때는 아무래도 그룹 밖의 사람들에게는 소홀히 했는데, 친구들이 떠나 내 그룹이 사라지고, 특히 내가 다양한 호스텔 이벤트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부터는 아무래도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 오가면서 눈인사라도 해 두어야 나중에 이벤트에 참가하라고 홍보할 때 편했다. 혹은 반대로 이벤트에 참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과는 아무래도 계속해서 인사를 하면서 지냈기 때문에 주방이나 라운지 룸 같은 공용 공간을 이용할 경우 사람들과 인사하고 알은체하느라 바빴다.


물론 이렇게 알게 된 사람들과 좋은 친구가 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 하지만 호스텔의 특성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어야 삼 개월 지내다 떠나가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과 조금 안면을 트다 보면 떠나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걸 일 년 가까이하고 있자니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는 것도, 어차피 금방 떠날 사람들을 반가이 맞이하는 것도 모두 피로한 일이 되었다. 특히 C와 만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C를 알아가는 데에 대부분의 정신적 에너지를 쓰고 있었고 그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호스텔 생활이 주는 피로도가 더욱 크게 체감되기 시작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다가 C와 단 둘이 지내자니 조금은 염려되었다. 하지만 호스텔을 떠나고 싶은 마음 동시에 C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C와 함께 지낼 결정을 하며 가장 기대했던 것은 식사를 잘하는 것이었다. 사실 C와 데이트를 하며 함께 요리를 해 먹으면서 몸도 마음도 호스텔에서 지낼 때보다 더 편하고 덕분에 소화가 더 잘 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C에 집으로 옮겨 간 직 후 아주 크게 한 번 체해 하루는 완전히 굶고 삼일 이상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C가 혼자 살던 공간에 내가 들어감으로써 C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커서 인 듯했다. 그 부분에 대해 C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C는 물론 나와 함께 지내게 된 것을 기뻐하고 앞으로의 나날들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해진 나는 이내 잠을 아주 많이 자기 시작했다. 긴장이 확 풀리면서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는데, 최소한 10시간 이상은 자곤 했다. 그렇게 늦잠을 자도 밤이 되면 잠이 잘 들었고 아침이면 또 느지막한 시간에 개운하게 일어났다. 한 번씩 허기가 져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날들이 있었다. C는 이게 내가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던 10년 치 배고픔이 한 번에 올라온 것이라면서 기뻐하며 먹을 것을 계속 가져다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음식을 준비해 먹고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내다 푹 자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아주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휴식이었던 것 같다. C덕분에 그 휴식의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보낸 지난 삶에 대해 많이 돌아보았고, 그러면서 든 생각들에 대해 C와 나누었다. C는 항상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고, 또 위로해 주었다.




C의 집으로 이사 간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 C는 휴식이 필요하다며 대학교 입학하면서 시작해 거의 구 년을 일 하던 약국 일을 그만두었다. C의 퇴사 직후 우리는 호주 본토 남쪽에 있는 섬 태즈메이니아로 떠나 2주 반을 캠핑카로 함께 여행했다. 낯선 섬, 좁은 차 안에서 함께 먹고, 자고, 이동하며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많이 친해졌다. 추위에 떨기도 했고, 불편함에 인상을 찡그리기도 했고, 피곤해 예민해지면 언성을 높이고 눈물까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더 잘 알아갔다.


태즈메이니아에서 돌아온 후에는 서핑을 하기 위해 해변을 많이 찾았다. 그는 십 대 때 한 두 번의 서핑 레슨을 받았을 뿐 제대로 서핑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늘 서퍼가 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마침 내가 경험이 많은 서퍼이기 때문에 그를 도울 수 있었다. 우리는 중고 서핑 보드, 중고 웻슈트를 사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해변도 알아냈다. 매트리스가 놓이곤 했던 나의 차 뒷좌석에는 이제 서핑보드 두 대가 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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