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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맘 Aug 14. 2017

영국에서 엄마로 살아보기 #12

영국의 주택 생활

영국의 주택 생활


새로 이사한 주택에서 우리는 매우 즐거웠다. 1층은 거실과 주방과 식당과 전실, 그리고 정원이 있었고 2층은 침실 3개와 욕실이 있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신나게 뛰어다녀도 그 어느 누구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고 밖에서 놀고 싶으면 언제든지 뒷마당 문을 열고 뛰어나가서 정원으로 나가면 되었다. 그 어떤 야외보다 안전한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이웃으로 오게 된 우리에게 한인 민박집 사장님은 딸기 묘목도 심으라고 주셨고 한국의 지인 분이 상추와 깻잎 씨도 우편물로 보내주어 작은 텃밭에 아이들과 심었다. 아이들은 딸기에 물을 주는 것을 꼬박꼬박 챙겼으며 비가 오는 날이면 커다란 민달팽이와 지렁이가 여기저기에서 나와서 나는 기겁을 하였지만, 아이들은 그런 달팽이와 지렁이를 보고 깔깔거렸고, 봄에는 정원 여기저기에 핀 노란 민들레를 뽑아 나에게 선물이라고 건네주기도 했으며 가을에는 정원 군데군데 피어오르는 독버섯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살펴보기도 했다.


매일 이렇게 쭈구리고 앉아 자연을 관찰한다.



지수네가 귀국하며 주고 간 트램폴린과 모래놀이 기구는 사시사철 정원에 놔두어 아이들은 심심하면 뛰어가서 트램폴린 위에서 뛰거나 조용히 모래놀이에 집중하곤 했다. 날씨가 좋을 때면 가끔 남편의 외국인 동료들이나 친한 한국인 가정을 불러 야외 바비큐를 하기도 했고, 우리와 친한 베르나르도네와는 부활절 때 이스터 에그 헌팅을 우리 정원에서 두 해 꼬박 함께 했다. 널찍한 주방 바닥에서 아이들은 마치 앤디 워홀이라도 된 듯 거침없이 물감놀이를 했고, 한 달에 한 번씩 전실에서 남편과 두 아들들의 머리를 내가 직접 이발 해 주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트램폴릭 덕분에 다른 곳에 나가 놀 이유가 없었다.


그 이에도 몇 가지 보너스가 있었다. 하나를 꼽자면, 새벽에 일어나 가족의 아침을 차려주려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으면 창문 밖으로 동이 트는 모습이 보인다. 매일 보는 풍경이었지만 매일 보는 그 풍경이 매일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느 날은 나 혼자 감상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그 황홀한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방으로 뛰어 올라가 카메라를 가지고 다시 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새벽마다 보던 가슴 벅찬 풍경


또 다른 어느 가을 아침이었다. 큰 아이는 학교 가고 난 뒤였지만 그 날은 남편이 늦으막히 나갈 예정이라 여유있게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우리 집 담장 위로 아름드리 늘어진 나뭇가지 위에 다람쥐 한 마리가 앉아있는 모습이 주방의 창문 밖으로 보인다. 둘째 아이에게 나무 위의 다람쥐를 보여주고 싶어 남편이 아이를 안아들고 살금살금 뒷문으로 나가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재우야, 쉿! 다람쥐 보여?”      


아주 소곤소곤 이야기했는데도 다람쥐는 인기척에 금세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지고 만다. 다람쥐를 더 볼 수 없어 아쉬워하며 둘째가 말한다.     


“다람쥐야, 우리 아빠는 착한놈이야!”     


멀리 나가지 않아도 바로 집 뒤뜰에서 이렇게 다람쥐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그 순간 자체가 축복의 시간인 듯 했다.     


아름드리 나뭇잎 아래 다람쥐(청솔모?)가 숨어 있다.


맨체스터는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영하 이하로는 거의 내려가는 일이 없다. 대체적으로 일조량이 많지 않고 살을 에는 추위는 아니지만 으슬으슬 추운 기운이 일 년 내내 있다고 보아도 될 정도로 서늘하다. 한 여름에도 항상 긴팔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고 맨체스터에 거주하는 동안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사용 해 본 적이 없다. 비는 수시로 오락가락 하지만 영하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어서 눈이 오는 날도 드문데, 눈이 온다고 하더라도 살짝 길거리만 덮을랑말랑 하다가 쌓이지 않고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우리가 있던 마지막 해에는 그래도 소복이 눈이 내린 적이 몇 차례 있었다.      


1월의 추운 어느 날 밤이었다. 아이들 방에서 나는 여느 때처럼 아이들과 함께 침대에 누워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을 재우려 했다. 침대 옆 창밖을 보니 진눈개비인 듯, 비는 아니고 그렇다고 눈도 아닌 무엇인가가 흩날리고 있었다. 어려서 한국에서 함박눈이 내리던 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던 기억과 뚝섬 유원지 눈썰매장에서 신나게 놀던 기억, 스위스 융프라우 꼭대기의 스노우 펀 코너에서 한 여름에도 눈 덮인 산에서 눈 놀이를 했던 기억이 또렷한 현우는 맨체스터에도 그런 함박눈이 쏟아지기를 기다렸다. 창 밖에 내리는, 눈인지 비인지 정체를 알지 못하는 그 것을 보고 눈을 꼭 감고 기도한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쌓여있게 해 주세요.”     


현우가 그 기도를 할 때, 나는 속으로 설마 눈이 쌓여있을라고, 라며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내리다 곧 녹아버리고 말겠지라며. 여기는 맨체스터니까. 그런데 깊은 새벽, 우리 방 창 밖으로 내려다보니 정말로 눈이 녹지 않고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현우의 기도가 들어졌나보다.      


창 밖으로 보이는 어둠 속의 가로등에 비추이는 노란 불빛 아래 눈이 내리는 그 고요한 풍경은 자고 있는 나의 감수성을 건드렸다. “아, 여기는 유럽이구나,”라는, 그 동안 한 번도 자각하지 않고 살던 그 사실도 함께 느끼게 해 주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 마당 한 가득 쌓여있는 눈을 보고 현우는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른다. 학교에서도 정규 수업 대신 밖에서 눈 놀이를 했다. 집에 와서도 집 앞 골목을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기도 하고, 아직 아무도 눈을 밟지 않은 뒷 마당에서 두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발자국을 내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푹신한 눈 밭 위에 마음껏 쓰러져본다. 이렇게 많이 쌓인 함박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재우의 표정은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였고, 눈을 손으로 만질 때 마다 소리를 지르며 까르르 웃음을 참지 못한다.  



     

사실 그 집은 좋은 집이라기보다는 2차 대전 직후 지어졌다는 70년은 된 낡고 오래된 집이었다. 아무리 새 카펫과 새 페인트로 새 단장을 했다고는 해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낡고 오래된 냄새가 난다. 카펫 아래 마룻바닥은 삐그덕 소리가 나고 화장실 불을 켤 때도 스위치가 아닌, 우리 예전에 시골 가서나 볼 수 있었던 줄로 잡아당겨야 불이 켜지는 전구였으며 2층에서 샤워를 하면 아래층 천정으로 물이 새고 TV 연결 케이블이 없어서 그 집에 사는 내내 TV 한 번 못 보고 살았던 아주 오래된 집이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행복 지수는 신식 아파트에서 살 때 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월세는 두 집이 동일했으나 우리의 행복 영역은 집의 크기만큼이나 넓어졌다. 카펫 때문에 내가 우려하던대로 아이들에게 없던 아토피가 생겼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지만 그것을 덮을 만큼 마음의 행복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집 자체는 아무리 낡았어도 우리 아이들의 어려서의 추억과 깔깔대던 웃음소리가 고스란이 남아 있을 것 같은 그 집과, 집 앞에서 보이던 조용한 영국 동네 풍경이 지금도 가끔 그리워진다. 나른한 봄날, 느릿느릿, 그러나 재빨리 도망치던 옆 집 고양이의 그림자도, 눈 내리는 새벽, 창문 밖으로 보이던 꽤나 낭만적이었던 고요한 그 풍경도, 아이들 학교 데려다주고 돌아오며 혼자서만 느끼던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이 덮인 하늘 아래 마음껏 들이켜 마시던 그 신선한 공기도, 모두 나가고 난 뒤 홀로 앉아서 기도하던 그 구석 방도. 모두.       


by dreaming m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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