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아 May 17. 2022

사랑을 걷어내고 사람만 보았다.

결혼, 사랑, 그 불안감에 대하여


오늘 미용실에 찾아온 손님은 이번 주 토요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예비신랑, 신부님이었다.

오전에 먼저 미용실에 들린 분은 신부님이셨고 지난번에 머리를 해드린 적이 있어서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번 주에 식을 올리기에 뿌리 염색을 하러 오셨다고.

누군가의 소중한 날을 위한 머리라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바르느라 계속 고객님의 옆을 지키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꽤나 하게 된 것 같다.

결혼식 얘기를 하다가 결혼 얘기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나에게 결혼 생각이 없냐 물으셨다.


미용실에 오는 고객님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적령기가 지나가는데 왜 결혼을 안 하냐고 정말 많이들 물어보신다.

보통의 내 대답은 “일을 더 배워야 할 것 같아서요”정도의 일 핑계로 얼버무리는 게 대다수이지만 오늘 고객님처럼 비슷한 나이의 사람, 나의 말을 적당한 시선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게 핑계가 아닌 진심을 내놓게 된다.


33살의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나도 20대 후반~30살까지는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었던 것 같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삶을 꾸려나가는 꿈을 꾸었고, 그 과정이 힘들고 버거울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겨나갈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사람들을 통해 결혼의 민낯을 마주하기도 하면서 결혼에 대한 마음이 딱딱해져갔다.


32살 때인가..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느낀 결혼이란 정말 현실 현실 현실 그 자체이고 사랑 같은 말랑한 감정들은 다 증발해버리는, 내겐 너무나도 무서운 것이었다.

내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사실 사랑, 그 설레고 뭉클하고 몽글한 것들은 결혼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알아서, 그런 감정 없이 산다는 것이 두려워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오후에 예비신부님의 예비신랑님이 또 뿌염을 하러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분의 한마디가 나의 결혼에 대한 생각, 그 뿌리를 흔들었다.

지금의 신부님과 결혼을 결심한 건 바로

“사랑을 걷어내고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라는 거다.


사랑은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껏 시시각각 변하는 사랑에, 그 감정들에 이끌려 조금만 상황이 변해도 상처 입고 아파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말랑한 감정들, 달콤한 말과 행동들만을 무한 되감기하며 현실을 도피하고 있었다.

내게는 사랑이란 감정이 사람보다 컸던 것이다.

누구를 만나도 사랑에 도취될 수 있는 상태를 쫓았던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이 조금 바래지더라도 내 곁의 사람이 바래지지않는 사람이라면 견딜만한 게 결혼인가 보다라는 타협점을 찾은 하루.

오늘 그 두 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또 똑같은 실수로 나를 사랑타령챗바퀴에 굴렸을 걸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기도 하는 하루였다.

한 번에 바뀔 순 없겠지만, 더 이상 사랑, 감정에만 편협함을 고치고 그 변함없고 괜찮은 사람이 내가 될 수 있게 단단해져야겠단 생각을 하며 퇴근길을 천천히, 가볍게 걸었다.











작가의 이전글 혼자여도 괜찮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