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송정옥'의 성공을 그대로 베낀 거대 프랜차이즈 '대청옥'이 등장한다. 그들은 '맛'과 '파사드'는 흉내 냈지만, 현서가 설계한 '7가지 증거'의 '진정성'까진 따라 하지 못한다.
"사장님! 사장님! 이거... 이거 좀 보셔유!"
한 달 만에 '송정옥'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태웅은 더 이상 '장인'이 아니었다. 그는 '경영자'였다. 낮에는 '송정옥'의 홀과 HMR 포장 시스템을 점검하고, 밤에는 '송정(松亭)'의 오픈을 위해 주방에서 새로운 코스를 개발했다. '캐시카우'와 '플래그십'을 동시에 지휘하는 CEO였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간다고 믿었던 그 순간, 박 여사가 호들갑을 떨며 태웅의 사무실(구 낡은 창고)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박 매니저님."
현서의 코칭 이후, 태웅은 박 여사를 '매니저'로 불렀다.
"밖에 줄... 문제 생겼어요?"
"줄이 문제가 아니여유! 이거!"
박 여사가 새빨개진 얼굴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강남 핫플 등극! 60년 전통의 '대청옥'을 아시나요?'
방금 올라온 유명 맛집 블로그의 포스팅이었다.
이태웅은 스크롤을 내리다 숨이 멎었다.
그곳엔 '송정옥'이 있었다. 아니, '송정옥'의 '껍데기'가 있었다.
'대청옥(大廳屋)'.
이름부터 '송정옥'을 교묘하게 베낀 그곳은, '송정옥'을 성공시킨 현서의 '긍정적 증거'들을 통째로 복사해 붙여넣기 한 듯했다.
가게 입구의 거대한 가마솥. (물리적 증거 흉내)
'3대째 이어온...'으로 시작하는 감성적인 스토리보드. (정보적 증거 흉내)
'곰탕'과 '수육'만 단출하게 적힌 메뉴판. (심리적 증거 흉내)
심지어 직원 유니폼과 입구의 웨이팅 태블릿까지. (인간적/사회적 증거 흉내)
"이... 이 자식들이..."
태웅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60년의 역사를, 차현서와 함께 피땀 흘려 만들어낸 '시스템'을, 거대 자본이 하룻밤 만에 '도둑질'해 간 것이었다.
"어쩐지... 요즘 우리 HMR 포장 용기 만드는 공장에서 자꾸 이상한 거 묻더라니! 걔들이 우리 거 다 베껴간 거여!"
"현서 님! 차현서 컨설턴트님!"
태웅은 당장 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미 '송정'의 공사 현장으로 가고 있던 현서를 다급하게 불러들였다.
30분 뒤, '송정옥'에 도착한 현서는 태웅의 분노와 박 여사의 울상이 뒤섞인 홀에서, 묵묵히 '대청옥'의 블로그 포스팅을 스크롤했다.
"고소할 겁니다." 태웅이 선언했다. "이건 명백한...!"
"사장님."
현서가 태블릿을 껐다. 그녀는 분노하는 태웅과 달리, 지독할 만큼 침착했다.
"이건 '도둑질'이 아닙니다. '벤치마킹'이죠.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 옅은, 그러나 차가운 미소가 스쳤다.
"아주... 멍청한 '벤치마킹'입니다."
"네? 멍청하다고요? 이렇게 똑같은데!"
"아니요. '형태'만 같죠. '철학'이 없습니다."
현서가 태블릿에 '대청옥'의 매장 정보를 띄웠다. 'OO 푸드빌'이라는 거대 외식 자본의 이름이 보였다.
"이들은 사장님의 '성공'은 봤지만, 사장님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릅니다. '답안지'는 베꼈지만, '풀이 과정'은 모르는 멍청한 학생이죠."
현서가 조목조목 짚기 시작했다.
"첫째, '가마솥'(물리적 증거). 사장님은 '진짜' 육수를 끓여 '냄새'로 고객을 불렀죠. 저들은? 저건 '전기'로 돌아가는 '가짜 솥'입니다. 김만 나오는 '스팀기'죠. 고객은 속지 않습니다. '후각적 증거'가 없는 '물리적 증거'는 '가짜'라고 광고하는 꼴입니다."
"둘째, '메뉴판'(심리적 증거). 저들은 '곰탕'과 '수육'만 파는 '전문성'을 흉내 냈죠. 하지만 저 블로그 포스팅 마지막을 보세요."
현서가 화면을 확대했다. '※학생증 제시 시 돈까스/제육 50% 할인'
"그들은 '선택과 집중'을 한 게 아니라, '돈까스'를 숨긴 겁니다. '전문가'인 척하는 '아마추어'죠. '심리적 증거'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치명적인 겁니다."
현서가 숨겨둔 '미스터리 쇼퍼(고객 위장 방문)'의 30초짜리 영상을 재생했다. '대청옥'의 홀이었다.
영상 속, '송정옥'과 비슷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손님 테이블에 뚝배기를 '쿵'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박 여사가 3주 전에 했던, 바로 그 행동이었다.
"그들은 사장님의 '유니폼'(형태)은 복사했지만, 사장님이 박 여사님과 나눈 '철학'과 '환대'(인간적 증거)는 복사하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매뉴얼'을 읽었지만, 사장님은 '자부심'을 입은 겁니다."
태웅은 그제야 깨달았다.
'송정옥'의 성공은 '가마솥'이나 '메뉴판'이 아니었다.
그 모든 '증거'들이 '60년의 진정성'이라는 하나의 철학 아래 완벽하게 조율된 '시스템' 그 자체였다.
"현서 님... 그럼, 우린 어떡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안 합니다."
현서가 태블릿을 껐다.
"저들은 '가짜 증거'로 고객을 속이고 있습니다. 고객은 '가짜'에 가장 먼저 배신감을 느끼죠. '대청옥'은 우리가 아니라, 고객의 '부정적 경험'에 의해 무너질 겁니다."
그녀가 '송정'의 도면을 펼쳤다.
"우리는 우리 일을 하죠, 셰프님. 저들이 우리의 '과거'를 흉내 내는 동안, 우리는 저들이 감히 따라오지 못할 '미래'를 만들면 됩니다."
22화에서 계속......
'형태'는 모방할 수 있어도, '철학'은 모방할 수 없다.
'카피캣'은 '왜(Why)'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기에, '디테일'에서 무너지게 되어 있다.
가짜 '가마솥'(물리적 증거)은 '후각'을 속이지 못한다.
숨겨둔 '잡탕 메뉴'(심리적 증거)는 '전문성'을 증명하지 못한다.
'매뉴얼'만 읽은 직원(인간적 증거)은 '진정성'을 전달하지 못한다.
진정한 '긍정적 증거'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철학'으로 일치될 때 완성된다.
'진정성'이야말로 그 어떤 거대 자본도 복제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해자(Moat)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