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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이 Jun 19. 2024

출간 일주일, 저자의 심경 변화

(사회적 물의 일으킨 사람 아님)


제목이 왜 이렇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의 변명문 같은지 모르겠다.

(출간보다 출소가 더 잘 어울리는 제목)




 <어린이라는 사회>가 세상에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출간 직전, 나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고생해주셨는데 아무도 안 읽기’와 ‘5000만 독자가 읽고 날 도마에 올려 괴롭히기'를 번갈아 상상하며 고통받았다.


그리고 상상력이 극단으로 치닫기 직전에(이를테면 상상 속 17억 독자가 날 국제재판에 넘기기 직전에) 책이 나왔다.



책이 나온 날이던가, 나오기 전날이던가.

출판사에서 보내주시는 책을 누구에게 드릴지 리스트를 짰다.


일단 나. (당연함)

그리고 부모님. (우리 부모님은 내 출간 소식을 아직 모르신다. 분명 날짜를 말씀드렸는데 까먹으신 것 같길래 나도 딱히 말씀드리지 않음 (?))

프롤로그 소재를 제공해 준 친구 등의 이름을 주욱 쓰고, 일일이 연락하여 주소를 받았다.


그리고 퇴근 후 영접한


깜찍한 책......♡


서점에 표지 구경하러 가는 사람으로서, 일단 책이 예쁘단 점에서 아주 몹시 흡족했다.

그러나 자랑할 곳이 별로 없었다. 내 출간 소식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첫 계약 후 흥분 상태에서 여섯 명의 친구에게 이를 발설하긴 했다. 비밀치곤 꽤 많은 이들에게 자랑한 셈인데(...) 어쨌거나 여섯 권 더 팔았으니 완전 럭키세이잔앙


출간일에는 그중 한 친구와 소소한 출간기념회를 가졌다.

그 애는 책이 나오기 이틀 전부터 네이버에 내 책 이름을 검색했다. 미리 인기검색어로 올려야 한다는 거였다. 비록 내 책은 '올해를 빛낸 책'이 될 수 없겠지만 내 친구의 행동은 '올해를 빛낸 쓸데없는 행동'으로 길이길이 칭송받을 것이다.


"서점 가보자! 책 나온 거 보고 싶어."

난 친구를 만나자마자 푸다닥거리며 말했다.


"어허, 언니. 아직 오프라인 서점에 안 깔렸어."

친구는 근엄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인터넷에서 재고 확인 해봤지."

"대박..."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애는 나보다 좀 더 간절하게 나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는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린 <먼저 성공하는 사람이 소고기 쏘기> 협정을 맺은 사이이기 때문이다.

기특하고... 무서운 것...





다음날, 재고 검색을 한 후 퇴근하자마자 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발견한




말랑콩떡깜찍뽀짝한 내 책!!!!!



넘 귀엽잖앙!!!


이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내가 쓴 글이 책의 모양을 하고 서점에 있다니!!


난 최선을 다해 저자가 아닌 척, 우연인 척, 그러나 이 신간이 너무 흥미진진해 보여 견딜 수 없는 척 연기에 돌입했다.

책을 쓱 펼치고, 흐릿해진 안광을 끌어모아 재밌어 죽겠다는 듯 책장을 넘긴 거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책 앞에 서 있으면 아무도 다가오지 못할 거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고, 천천히 옆으로 비켜 섰다.


그리고 이번엔 눈동자를 조각피자모양으로 만든 채 옆을 째려보았다.


'거기 그 책... 재밌어 보이지 않나요..?' (부담)




그러나 아무도 내 책을 집어 들지 않았다.

난 수상해 보이지 않기 위해 책을 들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물론 멀리 가진 못했다.

신간 에세이 평대에 바늘을 눌러 찍은 컴퍼스의 반경 안을 오가면서, 난 3분도 넘는 시간 동안 내 책 쪽을 힐끗거렸다. 아무 말도 안했지만 주변 공기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티를 내고 있었으니, 누군가 날 봤다면 한눈에 신간 저자인 걸 눈치챘을 거다.


그러나 비비큐 치킨이라면 모를까, 이름 없는 작가의 첫 책이 분 단위로 팔릴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조용히 책을 내려놓고 버스를 타러 갔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교통카드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환승을 위해 카드를 손에 들고 다니다가 서점 평대 위에 그대로 두고 온 거다.

'저자가 아닌 척, 우연인 척, 그러나 이 신간이 너무 흥미진진해 보여 견딜 수 없는 척'을 하다가 기어이 실수를 했다.


환승 혜택을 포기하고 버스에 앉아 서점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방금 신간 에세이 평대 쪽에서 카드를 분실한 것 같아 연락드려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세이입니다."

"아, 분실물 접수되어 안내데스크에서 보관 중입니다."

"아하, 내일 찾으러 갈게요... 감사합니다."

크..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시민의식이란…


다음날, 다행히 카드는 바로 찾았다.

서점에 간 김에 또다시 책을 보러 갔다간 정신마저 놓고 올 것 같아서 그날은 바로 집으로 향했다.




내가 가장 오래,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 온 곳은 교사 커뮤니티다.


그동안 몇몇 선생님들이 드문드문 출간 소식을 여쭤봐 주셨었고, 어떤 선생님은 내 글이 꼭 세상에 나와야 할 것 같다며, 나 대신 출판사에 투고를(..?) 해주시기도 했었다.(너무 감사하다)


난 그곳에 가장 먼저 출간 소식을 알렸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세 분의 선생님께 책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삼백 여 분 중 세 분의 선생님을 무작위로 선정했는데, 세 분 모두 싸인본을 원하셨다.

내가 유명해지면 당근마켓에 팔겠다며, 친구도 싸인본을 요구했다. 왜 내 친구들은 다 나를 통해 본인의 이익을 실현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어이가 없지만, 최근에 '내 주변 다섯 명의 평균이 나'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친구들에 대한 비난은 참겠다.  


퇴근을 하자마자 매직을 들고 싸인 연습을 하겠다며 설쳤다.

싸인이 무엇인가.

대충 이름을 흘려 적는 것이 싸인이 아닌가.


이면지 한 장을 듬성듬성 채우고 곧바로 실전에 돌입했다.


첫 싸인이 이상했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주기로 했다. (미안)

두 번째 싸인도 이상했다. 이제부터 어쩔 수 없었다. 목록 맨 위부터 착착 성함을 적어나갔다.


할 때마다 서체가 다 달랐다. 뭔가 잘못됐다 싶어 긴장을 집어먹었더니 글씨가 휘갈겨 지지도 않았다.

손을 부들부들 떨고, 한 획을 그은 후에 3초쯤 심호흡을 하고서야 다음 획을 그었다. 숨이 흐트러지면 글이 흐트러진다던 서예교수님 말씀을 드디어 이해했다. 숨과 손가락이 엇박으로 움직이는 순간 글씨에 심박수가 고대로 드러났다.


"아, 싸인이 할 때마다 다 달라!"

난 매직을 들고 절규했다.


"괜찮아. 싸인본 두 권 받으시는 분은 없으니까 아무도 모르실 거야."

남자친구는 해맑게 받아쳤다. 가끔 보면 천재가 아닌가 싶다.


난 개성이 넘치는 싸인본 9권을 생산해 냈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무사히 보내드렸다.




며칠이 지나자 친구들에게 드문드문 카톡이 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들 재밌어 했다.

 

책을 읽다 말고 'ㅋㅋㅋㅋ'를 남발하며 보내주는 실시간 감상평은 받아볼 때마다 뿌듯했는데,

그 중에서도 '퇴근 준비하려면 책을 덮어야 하는데 못 덮겠다'는 말이 최고의 극찬이었다.


어떤 친구는 내용을 각색하고 이름을 바꾸느라 고생했겠다는 말을 전했다.

정확하다.

최-신 인기 이름 순위를 검색해 보기도 하고, 친구 이름도 갖다쓰면서 용을 썼다.

친구 어머님께서 책에 적힌 친구 이름을 발견하시고 아주 좋아하셨다는 후문이다.





그 외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


아주 아주 소소하게는, 브런치 유입 검색어에 내 이름과 책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거.


그리고

페페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들켰다는 거...?ㅎ....



이제 곧

너무 프라이빗해서 초대인원이 2명밖에 없는 팬미팅도 열린다.


그땐 무려 두 명 앞에서 싸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진짜 큰일이 났다.

그날 싸인의 비일관성을 들키지 않는 것이, 출간 일주일차 저자의 가장 시급한 목표다.







+)

6월 17일에 처음으로 붙은 베스트셀러 태그!!

턱걸이이긴 하지만, 원래 대학이든 베셀이든 문 닫고 들어가는 게 제맛..!!!!!

끼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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