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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선생 Jun 27. 2023

일기장을 공유해보겠습니다.

스탑하는 날


오늘은 '스탑'하는 날



우리는 달리는 차 안, 뛰어내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멈추고 싶은데, 멈춰지지 않는다. 어떻게 멈춰야 할 지 감도 안 오는 그런 시간. 어쩌면 알고 있지만, 회피하고 있는 불안과 자기혐오가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나에겐 그런 시간들이 불청객처럼 자주 찾아온다.


불안감이 찾아오고, 일이 코끼리 발에 깔린 것처럼 압박으로 다가오고, 가끔은 정체도 알 수 없는 우울이 도져 스스로를 갉아먹고

이러한 시간들이 반복되다 보면, 저 아래로 점점 침잠하는 느낌이 든다. 결국 종착역은 잠으로 도피하거나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것이다. 오늘이 그러했다. 그래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친구에게 위로해달라는 카톡을 보내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는 걸까?

들 나 같진 않을 텐데. 항불안제를 털어놓아도 도저히 스스로를 채찍질하거나 미워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내가  그래서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선물할 수도 없는 내가 참 초라하고, 볼품없이 느껴지고 만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잘'해내야 한다는, 내가 나를 향해 주는 선이  너무나 괴롭다. 

 

두시간에 14만원, 나름의 거금을 주고 상담을 받았던 심리 상담센터에서는 자신은 '직면'을 잘 하게 해주는 심리 상담사라며

내가 이런 시선을 갖게 된 건, '결핍' 떄문이라고 했다. 물론 결핍은 유년시절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나는 천천히 유년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어린 시절, 아이가 생존하기 위해선, 어른들에게서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초등학생 때 곧잘 전교 1등을 하는 아이였고, 강박장애와 불안장애가

발병한  중2 전까지 그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땐, 내가 원하면 뭐든 이룰 수 있는, 의지가 오롯이 통하는 시기였던 거 같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압박으로  불안증과 강박장애게 되면서, 성적 등수가 떨어졌고,  

어렸던 나는 그 한계를 인정하기 힘들었다. 당연히 말이다. 완벽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나, 점점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잃어가는 나.... . 스스로를 비하하기 시작하며 교를 사랑했던 난, 언젠가부턴 학교로부터 늘 도망치고 싶었다. 담 선생님은 성인이 되어 지금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내게 그 결핍을 지닌 어린아이 존재가 강하게 남아 있기에  그런 불안장애를 갖게 된 거라고 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는 나를 다독이지 못했기 때문에 ㅡ 먹고 살 수 있는 수단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성인이 아닌, 어린아이의 사고와 관점등장한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상담선생님의 이 말씀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는데 다시금 곱씹어봤을때 실제로 놀랍게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던 거 같다. 행복을 포기하고, 무엇이든 성취해 내라라고 그 어디에도 내놓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물건이 되라고  심지어 내 무의식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성취해야 하고, 잘 해야 하고 그것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스스로가 생긱하기에도 참 어리석다.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글자로 적고 보니 놓인 글자들이 몹시 바보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편으론 스스로를 어여쁘게 보고싶다.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살기 때문이다. 숨이 가쁜 고통이 불청객처럼 들이 닥치는 오늘 하루도, 살려고 한다.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그리고 몇 안되는 소중한 사람들의 온기와 행복을 느끼기 위해, 아직 내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감정은 날씨와 같다. 불안의 열차가 지나가고, 우울의 비구름이 사라지면, 이런 깨달음이 내게 은근한 어투로 속삭인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심을 버릴 때, 정지할 수 있다는 걸 알잖아.  그리고 그때 주변 사람들의 숨결, 온기.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말이야.  어쩌면 우주가, 나를 둘러싼 세상이 내가 괜찮아지길, 응원해 주고 기다려주고 있을 수도 있어.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을 두고, 우스운 감상이라고 냉소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 켠 희망이 샘솟는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어린아이의 시선은 무척 권위적'이라고 하셨기에 것을 줄여나가고, 어른의 시선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말이 쉽지, 어렵다. 그리고 고통스럽다.


 아마도 아직 어렸던 날 둘러싼 어떤 어른들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혹은 어른들의 목소리에 지나치게 반응한, 나의 생존기제였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자기 확신과 믿음이 없는 아이, 무엇이든 쉽게 비관하는 사람으로 자라나 버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은 꼭꼭 저 밑으로 숨긴 채 우울함을 느끼면, 그것을 연약하다고 치부하고, 작은 실패를 하면 지나치게 스스로를 비판하고, 비관하는 그런 조금은 가여운 ‘어른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건 마땅히 슬퍼할 일이고, 마땅히 연민할 일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삶이고, 중간 중간 힘든 문턱들이 존재한다는건 그만큼 고통스러운 영혼을 억누르며 살아온 증거이니까.


 하지만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엔 나를 한 방향으로만 내모는 것, 나를 향한 엄연한 폭력을 행사하는 수많은 어른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열을 해내고도 하나를 더 하지 못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들.

우린 왜 다른 사람에겐 결코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너무 쉽게, 여과 없이 저질러 버릴까?

‘이 정돈 충분히 할 수 있지, 왜 못해. 남들 다 하는데. 이것도 못하면 죽어야지. 어떻게든 해낼 거야. 할 수 있어.‘

마치 전쟁터나가는 군인처럼 마음을 꽁꽁 밧줄로 동여매며 숨도 못 쉬게 만들며, 그게 당연하듯. 물론 나 조차도 그걸 알면서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자괴감을 느낀다.

 

그래서 밤낮없이 열이 올라있던 세상의 수많은 마음들에게, 그리고 나의 마음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저 나 자체로 충분하고, 그렇다고 말해줘도 된다고. 지금 현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 사람이라고, 너는 그런 사람이니 부디 의심하지 말라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감정은 큰 새와 같아 결국 지나가니, 죽을 것처럼 불안해도 죽지 않아 괜찮고, 우울해도 그 우울에 수몰되지 않을 만큼 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린 변화할 수 있다. 변화는 좋은 것이다. 나쁘게 느껴지는 마음의 변화라도 결국은 성장으로 다다르는 지점이 될 것이니 그저 아주 자연스럽게 조금씩 날 받아들여 보기로 한다.


다만 정지해야만 여유가 생길테니 조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치열하고 아프게 살아왔던 나를 바라볼 것이다. 관찰하다 보면  연민이 생길 테고, 그 연민으로부터 작은 사랑이 샘솟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가장 아프게 느껴지는 부분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언젠가 자기 사랑이란, 거대하게 느껴지는 것에도 다다를 있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소중한 사람에겐 꺼낼 수 없는 잔혹한 말을, 우리 자신에게 결코, 허용하지 않길 바라며 오늘 하루 불안하고, 우울했던 모두의 삶과 마음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며..  


이글을 마친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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