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마을 톨레도, 마드리드의 멋진 오늘
<톨레도>
쉰 부부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톨레도-마드리드이다. 세비야에서 마드리드까지는 500km, 고속열차 렌페로 2시간 40분이면 간다.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는 30분이 소요된다.
마드리드에서 2박을 할까 했으나 중세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톨레도 파라도르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싶었다.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 대개의 한국 여행객들은 서너 시간 코스로 사진 찍으러 오는 것 같다.
중세 마을답게 기념품 가게도 중세시대 기사들의 칼, 투구, 그리고 돈키호테 인형들이 많다.
칼을 보니 아들 생각이 난다.
그것도 어린 모습의 아들.
어릴 때의 이 넘은 어찌나 칼을 좋아하던지 맨날 칼 타령이었다.
참 많이 사주기도 했는데 없어진 칼들과 함께 아들의 유년기도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다른 부모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아이들이 옆에 있어도 말이다.
함박웃음을 짓던 아이들, 아무 근심 걱정이라고는 없던 아이들의 눈망울로 "엄마~~"라 부르며 내 품으로 뛰어 오던 내 어린아이들이 그리울 때는 좀 울적해지기도 한다.
지금은 그저 무덤덤하게 자기만의 울타리를 쳐놓고 지들 내킬 때만 들어오기를 허락하는 큰 녀석들이 되어 버려 간혹, 왕왕, 때때로 낯설다. 이 식히들이..
무튼 칼을 사고 싶어도 가져갈 수 없으니 돈키호테 기념품만 하나 고른다.
쉰 남자가 있으니 작은 거 하나 사는데도 괜히 신경 쓰인다.
쉰 여자는 눈치 따위 안보는 것 같아도 쉰 남자의 눈치 무지하게 본다.
남자들은 푼돈에 예민하다는 것을 살수록 더 알게 된다. 특히 쉰 남자는 천 원에 민감하고 백만 원에 둔감하다. 쪼잔한가 하면 통이 크고, 통이 큰가 하면 쪼잔하고..
여자와 남자는 서로의 뒤통수와 같아서 서로를 완벽하게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대성당을 가기 위해 파라도르를 나왔는데 여긴 성벽 밖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그래도 버스가 서는 곳까지 최대한 걸어 가보자며 호기롭게 나왔는데 잘못된 용기였음을 곧 알게 된다.
빠른 포기도 용기다.
얼마쯤 걸어 내려가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여기가 버스 정류장인지 물어보니 시티투어 버스가 서는 곳이란다.
시티투어는 9유로.
둘이면 18유로.. 아, 이런..
파라도르에서 택시 불러 타도 7~8 유로면 되는데.
다른 대안이 없어 18유로를 내고 시티투어버스에 오른다.
톨레도는 통일 스페인 이전의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다.
그러다 가톨릭 국토회복 전쟁으로 스페인이란 국가로 통일된 후 카스티야의 수도는 마드리드로 옮겨진다.
때문에 톨레도 대성당은 스페인 가톨릭의 본산으로서 의미가 깊다.
저 천정화를 어떻게 그렸을까.. 나는 다른 것보다 그게 궁금하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인생 역작인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리다 어깨와 등이 굽을 대로 굽었다고 하지 않는가. 톨레도 대성당의 천장화의 높이는 어마어마하다.
고개를 젖히고 그릴 때 어지럽지 않았을까, 물감이 온 얼굴에 묻고, 눈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화장실은 어떻게 갔을까.. 밥은, 물은..
천년의 고도 톨레도는 골목 하나하나가 다 옛 길 그대로다.
괜히 담벼락을 만져본다.
돌의 촉감으로 세월을 느껴본다.
중세의 기사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차고 말을 타며 따각따각 다녔을 길..
갑자기 이 동네엔 유령들이 많을 것 같은 느낌에 싸하다.
'소코트렌'이라는 장난감 같은 미니 열차가 톨레도 광장 주변을 다니는데 우리는 시티투어버스에 18유로를 써 버려서 그냥 자가 두발 운행을 하기로 한다. 투어버스는 내린 자리에서 다시 타려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마을로 들어오기 위해 비싼 편도 요금을 낸 것으로 치고 그냥 천천히 걸으며 고도의 숨결을 느낀다.
쉰 부부는 톨레도의 저녁 시간을 온통 파라도르에서만 보낸다.
파라도르 카페테라스에서 보는 톨레도 야경이 일품이라니 말이다.
뜨거운 스페인의 여름 낮은 밤이 있으므로 충분히 보상받는다. '내가 언제 뜨거웠느냐, 내가 그토록 너희를 지졌느냐' 싶게 밤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9시쯤에 시작되는 저녁식사 시간은 언제나 여유롭고 대화로 활기차다.
세비야, 코르도바에서 밤낮으로 걸어 다니며 수고한 몸뚱이들에겐 온몸을 물에 담그고 퐁당거리는 보상이 필요하다.
쉰 남자도 매일 배낭을 메고 다닌 어깨를 좀 쉬게 해야 한다.
수영장에서 본 석양..
감히 인생 장면이라 말한다.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한참을 시원한 밤공기와 아름다운 야경 속에 앉아 있었다.
<마드리드>
파라도르에서 여유 있게 체크아웃을 하고 12시 22분 기차로 마드리드에 도착하니 12시 55분이다.
마드리드 아토차 기차역은 정말 넓고 크다.
마드리드 숙소는 바쁘게 마드리드를 돌아다니고 잠만 자고 갈 것이라 의도적으로 저렴한 숙소를 예약했다. 중심가에 있지만 메트로로 가려면 두 번 갈아타야 한다. 그러나 절대거리가 3킬로 밖에 되지 않아서 택시를 선택한다.
젊은 기사에게 주소까지 보여주며 이비스 호텔로 가자고 하니 이비스 호텔에 내려는 준다.
그런데 체크인이 안된다. 내가 예약한 이비스는 이 이비스가 아니란다. 이비스가 두 군데라니.
어쩐지 시내에서 좀 멀리 간다 싶었다.
아, 마지막 날에 이런 오점을 남기다니. 쳇.
다시 택시로 중심가에 있는 이비스로 갔다. 마드리드의 높은 물가에, 중심가에 있는 호텔임에도 65 유로면 참 저렴한 편이다.
가격 대비 방도 깨끗하고 욕실도 괜찮다. 시끄럽다는 단점은 대놓고 비밀이다.
마드리드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심정적으로 딱 하나였다. 프라도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에 줄 서주는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쉰 남자였다.
아, 이럴 때 든든하다.
쉰 여자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줄이 줄어들기만 기다리면 된다.
다행히 줄은 곧 줄어들었다. 왜냐하면 6시 이후는 무료입장이라 그 시간대에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공짜에 욕심은 있었으나 긴 줄로 시간을 낭비하며 복잡함 속에서 그림을 감상하기 싫었다.
당당히! 거금 16유로를 내고 들어갔다.
고야, 엘 그레코, 무리요, 루벤스, 벨라스케스 등 딱 다섯 명의 작품들만 집중해서 본다. 이 넓은 프라도에서 욕심은 금물이다.
미술관 안내도를 보며 선택한 작가들의 전시실을 빠르게 찾고 감상해도 보는데만 두 시간이 훌쩍 간다.
마드리드의 초번화가는 푸에르타 델 솔이라 부르는 솔 광장이다.
이 곳엔 솔 광장의 마스코트인 곰 동상이 있다.
얼떨결에 발견하곤 사진을 찍는데 별 감흥은 없다.
마요르 광장엔 위풍당당한 돈키호테의 동상이 있다.
해를 등지고 금방이라도 달릴 것 같은 돈키호테 동상은 어찌나 멋진지.
마요르 광장 근처의 산 미구엘 시장은 또 얼마나 자유로운 분위기인지.
산 미구엘 시장에 가다 우연히 발견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370년 전통의 레스토랑이자 세르반테스부터 헤밍웨이까지 문인과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카페 보틴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저녁 영업시간이 시작되려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해서 들어가진 못했으나, 그래, 이것만으로도 마드리드여, 충분히 고맙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던 친구이자 동생과 마드리드에서 또 만나자 약속했다. 그녀와는 세비야에서 또 우연히 만났다. 그 수많은 골목들 중 으슥한 골목에서 말이다. 여행 중 마주칠 수 있는 우연은 인연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며 건배를 하고, 저녁값은 그녀가 계산하게 했다.
쉰 부부는 내일 택시 타고 공항에 갈 돈만 딸 막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헤어지기 전에 친구와 나, 남편과 나는 Sol 광장의 Ground 0라는 스페인의 시작점에서 발을 마주하며 사진을 남긴다.
인생의 2막이 새로 시작되는가 싶은 기분이다. 쓸데없구로..작은 것에 의미 두고 그러지 말자, 쫌.
이제 세 문장으로 15박 16일의 쉰 부부 스페인 여행기를 닫는다.
정순아, 반가웠어!
여보, 사랑한데이!
아디오스, 에스빠냐!
<Epilogue>
항공은 캐세이 퍼시픽을 이용했다.
7월 30일 여행 시작할 때는 홍콩에서 약 10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홍콩 공항 안에서 바로 마카오로 들어가는 배를 타고 마카오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당일 여행을 했다.
지금은 8월 14일 밤 12시 30분, 비 내리는 홍콩 공항에 있다. 02시 20분에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라 아침 7시에 홍콩에 도착하여 거의 20시간의 스톱오버 시간이 있어 공항버스 타고 침사추이를 잠시 다녔다.
홍콩엔 비가 오다 그치기를 반복했고 예의 끈적하고 후텁한 날씨 그대로다.
우리에게는 별 새롭지도 않은 곳이고, 무엇보다 지난 보름 동안 복잡함과 소음으로부터 떨어져 있었기에 홍콩의 번잡함은 고스란히 피로감으로 몰려온다.
공항으로 일찍 들어와 라운지에서 샤워도 하고 푹 쉬며 무료로 점심, 저녁, 야식까지 먹었다.
덕분에 여행기도 마무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