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혹은 그루지야, 그리고 트빌리시
드디어 트빌리시(Tbilisi)에 도착!
렌트한 아파트의 주인 '마카'의 남편 '마코'가 친절히 공항에 마중 나왔다.
외갓남자가 이리도 반가운 적이 있었던가.
나와 제니에겐 무겁기만 한 캐리어를 가볍게 들고 자신의 차로 성큼성큼 걷는다.
그렇게 만난 죠지아의 트빌리시는 뜨겁게 우리를 반긴다.
그런데 너무 뜨겁다.
마카의 아파트는 무척 훌륭하다.
건물 외관은 아주 이중적이지만 말이다.
1944년에 지어진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운행되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그렇잖아도 오늘 고장 났다)
내부는 리모델링을 해서 현대식이지만 건물 자체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새벽에 화장실 갔을 때 나는.. 20년 만에 바퀴벌레를 죽이는 살충을 하고 만다. 윽..
가벼운 마음으로 장도 보고 동네도 둘러본다. 집 바로 뒤에 대형마트 '카르푸'가 있다.
카르푸 앞에는 이렇게 큰 수박과 호박을 파는 트럭이 있다.
세상에.. 이렇게 큰 수박은 처음 본다.
그러나 수박 장수는 동양여자를 처음 본 듯하다.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이구, 민망하여라~
카르푸에 들어오니 마트의 광경이 참 재미나다.
견과류를 특히 좋아하는 죠지아 사람들은 마트에서도 견과류를 자루에 가득 담아 놓고 판다.
재래시장이랑 뭐가 다르지?
특히 저 화덕! 마트에 떡 하니 화덕이 있어 빵을 굽는 아저씨가 신기하기만 하다.
사과들은 참으로 못생겼다.
우리나라에선 상품성 없다며 팔 수도 없는 비주얼이지만 농약을 쓰지 않으니 저렇게 생길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맛은 있다.
그렇게 장을 보고 돌아오니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
라면에 밥 말아서 마트에서 사 온 오이피클(우리나라 오이지와 맛이 같아서 신기함)과 절인 양배추를 반찬으로 먹으니 어느새 한 그릇 뚝딱이다.
역시 뜨거운 국물이 메스꺼웠던 속을 잘 풀어준다.
바야흐로 트빌리시에서 살기 시작이다.
몽둥이로 두드려 맞은 듯한 몸뚱이를 뜨끈한 누룽지로 달랜다.
집에서 아침식사로 늘 먹는 그 누룽지를 조금 가져왔다.
제니도 피곤하고 아플 텐데 먼저 누룽지를 끓여놓고 부른다.
아. 미안하구로.. 많이 먹어야지.
아홉 시 좀 넘어서 올드 트빌리시를 탐험하러 나간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 내려가는 계단이 근육통으로 힘겹다.
아침부터 무진장 뜨겁다.
그런데 어디를 찾아가야 하나?
눈길을 들어 먼 산을 보니 큰 교회가 떡하니 있다. 사메바 성당이다.
저 멋진 곳을 어떻게 간다지?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한 동물 보듯 보고 있다.
신기한 두 동물은 정류장에 서있는 아무 버스를 타고
'Is this going to Sameba?'
영감님, 할머니는 '사메바'를 알아들으시고 가르쳐 주시는데 조지아 말을 모르는 신기한 두 동물은 그제야 영어를 과감히 포기하고 손짓 발짓으로 그들과 소통한다.
그래서 얻은 정보는 이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가서 내려서 걸어 올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표정은 불친절해도 말을 걸고 소통을 하니
우리는 신기한 동물에서 다시 인간이 된다.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가서 내리니 산 위의 사메바 성당은 우리가 걸어 올라가기엔 무리로 보인다.
근처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물으니 할아버지 그냥 걸어 올라가라 신다.
손짓으로 '5분밖에 안돼~' 하시는 것 같다.
난감해하는 우리에게 구원의 기사(?)가 나타나시니 그는 바로 택시기사 할아버지이시다.
얼마냐고 물으니 엄지 검지 손가락을 비비고 가위 표시로 돈은 안 받을게.. 하신다.
그는 정녕 우리의 기사(knight)였다.
그렇게 귀하게 찾은 사메바 성당의 위용은 실로 대단하다.
오늘은 무슨 큰 날인지 성당은 수많은 인파로 꽉 찼다.
그들은 낯선 외모의 우리를 휙 한 번 쳐다보고 곧 그들의 성스러운 예배 의식에 다시 집중한다.
마이크를 든 젊은 남자가 제니한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가버린다.
그 옆엔 카메라맨이 있었는데..
아이고, 우리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것 같았는데 제니는 투어를 제안하는 남자인 줄 착각하고
'노~'를 한 것이다.
트빌리시 방송 탈 뻔했는데 말이다.
신성한 예배당에 짧은 바지 차림의 개념 없는 내가 분위기를 흐리는 것 같아 사메바 성당을 나선다.
성당 아래 마을의 집들은 참 낡고 오래되어 보인다.
어느 집 대문에서 인형 같은 예쁜 여자아이가 웃어준다.
불쑥 그 집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을 들여다보니 배가 엄청 나온 아저씨가 웃통을 벗은 채로 있어서 부리나케 패스=33
모자도 안 쓴 나의 얼굴은 뜨거운 태양에 제대로 구워져 간다.
그런 내가 안쓰러운지 저기 그늘의 의자에서 쉬어가자는 제니..
그늘의 돌의자라 아주 시원하다.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문득 맞은편 산을 보니 성벽이 보인다.
아! 저곳은 "나리칼라 요새"인가?
오늘.. 우리 이 산 저 산 다 올라가 보는겨?
트빌리시의 태양은 여전히 뜨겁다.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인상 좋아 보이는 젊은 기사님이시다.
지도를 보여주며 "나리칼라 요새로 출바알~" 하기 전에 보니 미터기가 없다.
"얼마?"라고 물으니 다섯 손가락을 펴더니 곧 열 손가락 다 편다.
노, 노..
손가락 다섯 개로 흥정하니 뚱땡이 기사는 일곱 개를 편다.
그래, 7 라리로 가는 거야~
그렇게 올라 간 나리칼라 요새는 정말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뜨거워도 계속 둘러보게 만드는 신비함..
천년 전으로 돌아간 듯 오래된 성곽은 참 신기하다.
저기 맞은편 산엔 좀 전에 올랐던 사메바 성당이 보인다.
트빌리시도 한눈에 다 보이고..
이제 내려가서 뭐 좀 먹고 쉬어야지 이러다 일사병으로 쓰러지겠다.
조금씩 나눠 마신 물이 없었다면 이렇게 돌아다닐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내려오니 올드타운의 카페들이 우리를 반긴다.
세계테마기행의 왕애청자인 남편이 알려준 조지아 전통 음식 '힝칼리'와 '하차푸리'를 주문한다.
힝칼리는 우리의 왕만두 같은데 군만두, 찐만두 두 종류가 있다.
종업원이 뭐라 뭐라 하며 가더니 한참 있다 나온 것은 군만두 힝칼리다.
정말 우와~~ 할 정도로 맛있다.
야채 하차 푸리도 싱싱한 토마토, 오이, 올리브가 푸리 안에 들어가 있는데 싱싱한 샐러드가 화덕에 구운 빵속에 담겨 있는 비주얼이다.
그렇게 든든하게 먹고 천천히 걷다 보니 오래된 성당을 또 만난다.
마침 결혼식인지 아리따운 신부와 신랑이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우리도 축하를 해주며 성당 밖에 잠시 서있다 돌아선다.
숙소에 돌아와 쉬면서 작정하고 하루를 기록한다.
와이파이가 잘 안 되는 나라여서 포스팅 하나 하기가 너무 어렵다.
해는 지고 저녁도 먹을 겸 야경을 보러 푸니쿨라를 타러 나간다.
아파트에선 그냥 길 따라 쭉 올라가면 되겠거니 했지만 확인 삼아 지나가는 청년한테 물어본다.
걸어서는 멀다며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면서 우리가 택시를 잡으면 바가지를 씌우니 자기가 대신 잡아주겠단다.
그렇게 택시비를 흥정했는데 기사 아저씨는 푸니쿨라 승강장에 데려다주는 게 아니라 아예 산 정상의 '므타츠민다 공원'까지 데려다주신다.
덕분에 산악마을 므타츠민다까지 덤으로 구경했다.
제니와 나는 므타츠민다 공원에서 출출해져 핫도그를 주문했다.
옆에 있던 총각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본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해놓고 한국을 모를까 봐 여기에서 많이 봤던 에어컨 실외기를 떠 올리며,
'I am Samsung and she is LG'
라고 농을 치니 자기는 Panasonic이고 지 친구는 Sony란다.
ㅎㅎ 유머를 받아치는 센스쟁이 같으니라구..
다시 택시를 타고 내려오면서 젊잖아 보이는 기사 아저씨에게 내일 '므츠케타'를 갈 건데 혹시 요금이 얼마냐고 물으니 15 라리란다.
예상보다 엄청 싸게 부르시네.
'아저씨, 내일 우리 여기서 11시 30분에 만나요'
라고 하니 흔쾌히 오케이 하신다.
자, 내일 므츠케타 교통편까지 아주 싼 가격에 예약도 했으니 간단한 짐을 싸고 푹 잠드는 일만 남았다.
오늘은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행복하다.
죠지아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의 마음이 충분히 와 닿는다.
내일은 므츠케타로!